-
-
완벽주의자들 - 허용오차 제로를 향한 집요하고 위대한 도전
사이먼 윈체스터 지음, 공경희 옮김 / 북라이프 / 2020년 4월
평점 :
절판
엄마가 결혼할 때 사셨던 세이코 시계는 아직도 건강하다. 디자인도 심플하고 너무 예뻐서 일하러 갈 때 종종 그 시계를 차곤 한다. 사실 시알못이라 뭐가 좋은 시계고 나쁜 건지는 잘 모른다. 그런데 그동안 세이코 시계를 몇 번 수리하면서 아주 오래되었고 믿을만한 시계라는 건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지금이야 시계란 악세서리, 시간은 휴대폰으로 확인하는 시대다. 시계라는 기계와 시간이라는 개념이 귀하거나 값비싼, 구하기 힘든 어떤 것이 아니게 되었다. 이런 시대를 열기까지의 역사를 흥미롭게 정리한 책이 있다. [완벽주의자들]. 이 책은 시계로 시작해서 시간으로 마친다.
베이킹을 하다보면 0.05g까지 재야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럴 때는 전자저울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 맛있는 먹거리를 성공적으로 만드는 건 전적으로 정밀한 계량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완벽주의자들]이라는 책은 말한다. 정밀성이라는 개념은 필요에 따라 의도적으로 발명된 것이라고.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달성하기 위하여, 편집증적인 외곬수들의 몰입과 기술이 ‘정밀성’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완벽주의자들]은 이 정밀성 탄생의 원류를 ‘시계’로 잡았다. 정밀한 시계가 많은 선원과 선박들을 구하고 정확한 항해를 가능하게 하는 놀라운 기능을 발휘하면서 사람들은 보다 더 정밀한 세계로 나아간다. 사이먼 윈체스터는 ‘보다 더 정밀함’을 위하여 허용오차 제로를 향해 나아갔던 지난 수백년의 역사를 소설처럼 써내려갔다.
[완벽주의자들]이 제일 마지막 장인 <10장 균형의 필요성에 대하여>에는 ‘세이코’ 시계가 등장한다. 뱃사람들의 항해를 위하여 정밀함의 세계로의 진입을 알리는 마중물이 되었던 시계는 1900년대 일본에서 제국의 ‘시간’을 상징하는 존재로 자리매김한다. 저자는 세이코 시계라는 인위적 정밀함과 대비되는 자연미가 동시에 숭상되는 일본을 예로 들며, 정밀함이라는 기술이 우리의 세계를 낫게 하지만 그 기술만이 전부가 아님을 이야기한다.
오늘날 인류는 흔히 매끈하게 마감된 경계선, 완벽한 베어링, 공학계만 아는 평평함의 수준에 감탄하고 집착하지만, 자연의 질서 역시 똑같이 중시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자연이 세상을 장악해서 정글의 새파란 풀이, 어린 푸른 대나무가 모든 발명품을 휘감아 덮을 날이 올 것이다. 그땐 허용 오차가 영국 실링의 두께이든, 양자의 직경보다 작든 아무것도 상관없어진다.
정밀하지 않은 자연 앞에서는 모든 것이 비틀대고 아무것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정밀하다고 해도.
407쪽
이렇게 모든 꼭지를 마감한 후에 맺는 말에서 이 책은 시간과 현대의 정밀성의 관계를 이야기한다. 시간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시간의 계측 여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우리가 시간을 어떻게 계측하는지에 따라 우리의 세상, 심지어 중력까지도 달라진다. 시간은 자연이고 정밀하지 않다. 그것을 자신의 용도와 목적에 따라 계측하려는 사람들이 이 정밀하지 않는 시간 때문에 정밀한 기계를 만들어낼 뿐이다.
단순한 교양서, 역사서인줄 알았는데 기술만 이야기한 책이 아니다. 우리가 정밀함을 구하는 이유는 정밀하지 않은 자연 속에서 살아나가기 위한 것 아닌가. 여기까지 읽고 나면 이 책의 머리말에 있는 이 말이 굉장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과학의 목적은 무한한 지혜의 문을 여는 게 아니라, 무한한 실수에 한계를 긋는 것이다.
-베를로트 브레히트 - <갈릴레오의 삶>(1939)
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