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죽을 때 무슨 색 옷을 입고 싶어?
신소린 지음 / 해의시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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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눈이 부시게]가 그랬고 [디어 마이 프렌드]가 그랬다. 나이가 몇 살이든 지금 우리는 저마다의 노년을 생각해봐야 하는 것 아니겠냐고. 그런 질문을 들게 하는 작품이 최근들어 부쩍 눈에 띈다. 노인인구 비중이 부쩍 증가하면서 노인의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역시 함께 시작되었다. 물론 그 전에 노년의 삶에 대하여 고찰한 문학 작품이나 영화 같은 것들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처럼 이렇게 대중적이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늙고 누구나 노인이 된다. 이 자명한 사실이 요즘처럼 커다란 소리로 울림을 주는 시대는 이전에 없던, 우리가 처음 만나는 시대이다.

 

 그 전에는 보통 ‘노화’를 방지하는 그러니까, 늙음을 지연하거나 거부하는 형태로 우리는 늙음을 다루는 문화를 생산하고 소비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 방향이 매우 달라졌다고 느낀다. 늙음을 거부하는 건 무의미하다. 보톡스나 영양제 따위로 늙음은 지연되지도, 숨겨지지도 않는다. 시간과 노화의 관계는 너무나 정직하다. 하루가 가면 하루만큼 늙는 법이다. 우리의 하루하루만큼 우리는 늙어간다.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가는 저마다 다를지라도 결과는 대동소이하다. 나는 노인이 되어간다.

 

 아직 젊은 내가 ‘나는 노인이 되어간다’라고 해봤자 실은 크게 체감되지 않는다. 기껏해야 무릎에 난 상처가 20대에는 이틀 만에 아물었다면 30대에는 두 배의 시간이 걸린다는 정도. 사람이란 경험의 존재라 무엇이든 체감해보지 않으면 도무지 그것을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느끼지를 못한다. 늙음이 얼마나 나의 세상을 바꾸는지를 체감하는 건 그것이 내 아버지나 어머니의 문제, 내 할머니의 문제 등으로 치환될 때다.

 

 신소린 저자는 [엄마는 죽을 때 무슨 옷을 입고 싶어?]를 쓴 동기를 이렇게 말한다.

 

처음에는 엄마에게 좋은 마지막을 선물해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 책은 ‘엄마에게 선물한 죽음’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쓸수록 뭔가 뒤바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오히려 제가 선물을 받았거든요. 죽음으로 삶을 완성하는 데는, 보내는 사람이 아니라 떠나는 사람의 인생에 중심을 두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거죠. 그렇게 내가 선물하려 했던 죽음에서 ‘엄마가 원하는 죽음’으로 화두가 바뀌었어요.
‘엄마는 죽을 때 무슨 색 옷을 입고 싶어?’라는 질문은 이 책의 화두를 꺼내는 동시에 더 많은 질문으로 이어지게 해주었어요.
- 프롤로그 <엄마의 행복한 장례식> 중에서

 

할머니의 치매를 간호하는 엄마와 이야기하면서 노인과 늙음과 노년의 삶을 구체적으로 대면하게 된 신소린 저자는 우리가 저마다 도착하게 될 그 끝점에 대해 쓰게 되었다. 그 끝점에는 할머니가 가장 먼저 그리고 그 다음에는 엄마와 이모들이 그리고 그 다음에는 자신이 당도하게 될 것이다. 어차피 당도할 끝점이라면 저자는 생각했다. ‘엄마가 원하는 죽음’으로 끝점을 장식하게 하고 싶다고.

 

 엄마가 원하는 장례식, 엄마가 원하는 끝은 무엇인지를 엄마와 이야기하면서 어느새 그 속에서 오고가는 소망과 바람, 기대 등은 엄마만의 것이 아닌 할머니의 것, 엄마와 이모들의 것 그리고 저자의 것으로 확대된다. 저자는 죽음과 노년의 삶을 준비하는 태도를 이 작은 에세이집에 뭉클하게 녹여냈다.

 

40대인 나는 작은 글씨가 안 보이기 시작했다. 70대 엄마는 계단을 오르내리는 게 힘들다고 한다. 90대 할머니는 5센티미터 문턱에 걸려 넘어지셨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노화가 불편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 생활 터전이 젊은 시절에 멈춰 있기 때문은 아닐까? 젊음이 정상이고 늙음은 그렇지 않다는 식의 부정적인 뉘앙스를 담고 있는 공간이나 디자인은 조금만 주위를 둘러봐도 널려 잇는 것 같다.
우리가 평생, 어쩌면 죽을 때까지 공부하고 이해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모두가 지나온 젊음이 아니라, 다가오는 늙음일 것이다.
100세가 되면 어떤 것들이 필요하게 될지 궁금해진다.
34쪽. 1장> 황천길 될 뻔한 ‘5센치’ 효도

 

 늙음도 공부해야 한다는 이 말이 참 좋았다. 누리고 즐기고 가꾸어야 할 것은 젊음만이 아니다. 어쩌면 청춘보다 노년이 훨씬 길어진 지금에야말로 우리는 늙음을 누리고 즐기고 가꾸기 위하여 대비와 공부가 필요하다.

 할머니의 치매를 간병하는 엄마와 이모들의 에피소드, 엄마와의 대화, 할머니와의 에피소드 등으로 꾸며진 이 책은 늙음과 죽음을 무척 유쾌하고 명랑하게 바라본다. 죽음이란 입에 올리기도 무서운 어떤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가 결국 당도해야 할 끝점이기에 어떻게 대비하고 준비하느냐에 따라 다른 색깔로 펼쳐질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이야기한다.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에서 가족 전체를 병들게 하는 병으로 악명 높은 ‘치매’가 가족 속에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관리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했는데 그 점도 인상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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