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샴페인
조현경 지음 / 예담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멋진 남자, 신분 상승, 그리고 부귀영화... 이 모든 것을 다 가진 신데렐라는 과연 행복했을까하는 의문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행복은 벼락 맞듯이 터지는 로또가 아니라는 것을 깨치기 시작하면서부터 여자들은 신데렐라의 길이 과연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아챈다. 그러나 이제는 신데렐라의 행복이 아닌 신데렐라의 성공에 의문을 던져야 하는 때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신데렐라는 과연 성공한 여성일까. 그림같이 잘생긴 남자와 사회최상위계급, 평생 써도 다 못쓸 돈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성공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성공(成功)은 '목적하는 바를 이룸'이라는 뜻이란다. 원하는 것, 바라는 것을 이루는 게 성공이라는 얘긴데 그렇다면 신데렐라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계모와 언니들에 대한 복수? 즐겁고 편하게 먹고 사는 것? 자신의 아름다움에 대한 인정과 주변의 선망? 글쎄, 내가 신데렐라하고 별로 친하진 않지만 그녀가 살아온 시간들과 그녀의 성정을 가늠해 볼 때 그녀가 간절히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짐작이 간다. 다정하고 살가운 아버지와 먹던 조촐한 저녁식사, 또래들처럼 평범한 학창시절의 추억, 화려하고 사치스럽지는 않아도 포근하고 아늑하게 나를 안아줄 수 있는 집과 가족. 소박하고 담백한 행복이야말로 그녀가 진정 바라던 것이지 않을까. 왕자와 결혼한 신데렐라가 결코 성공했다고 할 수가 없는 이유는 이 모든 것들이 왕자의 곁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을 것들이기 때문이다.
특별한 날 축하주로 마시는 샴페인도 어떤 이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이다.
일상이 되어버린 샴페인에서도 과연 그 상큼함과 짜릿함이 여전할까?
샴페인이 아니면 참을 수 없고, 샴페인의 즐거움은 이미 잃어버린 상태… 그건 결코 행복이 아닐 것이다.
p274 작가의 말 중에서
특별함의 대명사인 샴페인이 일상이 되어버리는 무지막지하게 특별한 생활. 사람들이 가장 쉽게 오해하는 것이 이것 아닌가. 부귀영화와 권력이 곧 성공이라는 것. 물론 돈 많이 벌고 유명해지고 사회적인 권력을 갖게 되는 게 삶의 목적이라면 그걸 이루었을 때 성공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진정한 삶의 목적이라면 그 모든 것을 가지게 되었을 때 나는 행복해야 한다. <샴페인>의 주인공들 역시 돈과 명예, 권력의 정점에 올라서기를 갈망하며 인생의 노곤한 계단을 걸어 올라간다. 그러나 그 정점에 선 순간 그들에게 찾아온 것은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일상이다. 그리고 그들의 그 불안과 혼란은 그들이 여자이기에 더욱 위태롭고 치명적이다.
“굳이 구서진 남편 자리는 중요한 게 아니었거든. 그 대신 로열그룹 사위 자리는 중요했던거야!”
“그게 왜 그렇게 나쁜데? 세상 남자들한테 다 물어봐.
당신은 똑똑하고 매력적이었고 더구나 배경도 화려했어.
당신을 타겟으로 삼은 게 왜 문제가 되는 건데?
안 덤비는 놈들이 멍청하고 후진 거지, 내가 왜 이렇게 나쁜 놈이 돼야 해?”
서진의 가슴에 물기가 번져나간다.
“당신은 나를 사랑하는 척했어.”
“사랑했어.”
“아니, 당신은 내 배경을 사랑했잖아.”
“당신의 배경까지가 다 당신이라는 사람이야.”
“나는 내가 가진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을 원했어요.”
p 191_이별
작가 조현경은 여자의 눈으로 여자의 약점과 맹점을 가차 없이 그려냈다. <샴페인>의 3 주인공, 서진과 희경, 혜리를 통해 우리들, 여자가 딸로서 아내로서 어떻게 이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지, 그 영악함과 우둔함을 속속들이 보여준다. 여자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맞이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고민과 인생의 고비들, 그때마다 여자들이 성공을 위해 혹은 성공이라고 믿는 것을 위해 어떤 위험을 감수하는지를 그린 <샴페인>은 마치 드라마처럼 흥미진진하게 달려간다. 그리고 자주 뜨끔하게 찔러온다. 3명의 주인공 속에 내 모습이 보이기라도 하면 나의 속물스런 속내를 들켜버린 것처럼 입술을 깨물게 된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저자가 제자들에게 잔소리를 해대고 있다며 작가 소개를 했는데 그 잔소리는 제자들에게만 향하지 않는 것 같다. 저자는, 스포트라이트를 여자들의 '성공'이 아닌 성공한 '여자'에 맞추고는 여자임을 자각하며 그리고 망각하며 사는 모든 여자들에게 물음을 던진다. 성공을 향해가는 혹은 성공한 당신, 행복한가?
그동안 살면서 가장 두려워했던 것이 타인의 시선이었다.
가장 원하는 것은 행복인데도 남의 눈을 의식하느라 자신의 행복을 팽개친 것이다.
그 아이러니를 깨닫는 순간, 홀연한 자유로움을 느꼈다.
p247 _ 살인자
<샴페인>에는, 드라마 기획과 제작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저자의 연륜이 대사마다 장면마다 묵직하게 실려 있다. <샴페인>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성공을 위한 분투기가 얄팍하지 않은 이유도 저자가 직접 부딪혔을 그 녹록치 않은 현장들에서 나온 것들이기 때문이다. 치열하고 거칠게 살아야 하는 '성공하는 여자'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왠만한 여성 자기계발서보다 현실적이고 실체적이다. 다른 자기계발서에서 느끼지 못했던 공감이 주인공들의 대사에 절절하게 실린다.
모든 것을 잃고 난 후에야 비로소 자기 자신이 보인다는 그녀들의 마지막 이야기도 그래서 진부한 듯 새롭다. 원하는 것을 이루는 게 '성공'인데도 우리들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오해하며 살아간다. 타인의 시선을 갈구하기 때문에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는 그래서 여러 가지 이유로 '행복'에 닿기가 이토록 어려운 것이었다.
어쩌면 <샴페인>의 뒷이야기, 그러니까 세 여자의 이후의 인생은 줄곧 '그들은 내내 돈 한 푼 없이 지지리 궁상으로 고생하며 살다 늙어 병들게 되었다'고 쓰여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수필 <행복하게 사는 법>에서 박완서가 이야기했던 '모든 것이 부족했지만 넉넉했던 것은 오직 사랑'이라는 구절을 떠올려보면 지지리 궁상으로 살아서 늙고 병들었을 때조차도 함께 있어줄 동반자가 있다면, 내가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나를 행복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진짜 성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이 책의 끝에 덧붙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