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초콜릿 - 두 자매의 삶, 달콤한 초콜릿, 꿈을 함께해준 소중한 사람들
프랜시 박.진저 박 지음, 문수민 옮김 / 라이프맵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초콜릿초콜릿>을 다 읽고 뻐근해진 목을 풀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래, 머리가 이렇게 무거울땐 달콤한 초콜릿 한 개가 최고지. 초콜릿 봉투 안을 더듬더듬 손가락으로 눌러보다 미간을 찌푸리며 비어있는 봉투를 탈탈 털었다. 책상이며 바닥에 메마른 속내를 드러내고 있는 초콜릿 포장지들..... 나 이거 언제 다 먹은거니. 당장 걱정이 앞선다. <초콜릿초콜릿>을 읽으며 섭취한 엄청난 양의 초콜릿 칼로리 때문이냐고? 장난해? 지금 이 순간 나의 피로한 뇌 활동을 도와줄 달콤함이 없다는 게 그래서 내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게 제일 걱정스럽다.

   화려하면서도 아늑하게 나의 코를 자극하는 <초콜릿초콜릿>에 담긴 이야기 그리고 그녀들의 이야기가 나의 가슴팍에 남긴 감상들을 빨리 정리해야 했다. 그 느낌이 날아가기 전에, 나의 가슴 언저리에 잠시 앉았다 사라져버리는 그 감상들을 어서 글로 남겨야 하는데....... 잠깐만, 일단 아몬드가 들어간 초콜릿바 하나만 찾아보구. 그게 분명 서랍 구석에 있을텐데.






 

 

   본능보다 더 본능적으로 사랑하는 것이 있는 사람은, 다른 곳에 가서 어떤 일을 하게 되도 다시 그 사랑하는 것 가까이로 되돌아오기 마련이다. 내게는 책이 그랬는데 프랜시 & 진저 박 자매에게는 초콜릿이 그랬다. 그녀들의 어머니로부터 내려오는 생존과 같은 초콜릿 사랑이 그녀들의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인내와 근면이라는 덕목을 만나 결국 사랑스러운 가게를 하나 내게 되었는데 그게 워싱턴 최초의 고급 초콜릿 가게 "초콜릿 초콜릿"이었다. "초콜릿 초콜릿"은 돈많고 여유있는 두 자매가 어쩌다 보니 만들어낸 가게가 아니었다. 아버지의 죽음이 남긴 투자금과 삶에의 열의를 상실하고 오직 초콜릿에 대한 사랑만이 남은 그녀들에게 유일한 길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그 절박하고 치열한 초콜릿 사랑은 <초콜릿 초콜릿>을 28년 전통의 가게이자 워싱턴 최초이자 최고의 초콜릿 가게로 성장하게 했다.  

 

  1983년에 워싱턴에 들어선 최초의 그것도 고급 초콜릿가게가 처음부터 성업할 수 있었을리 없다. 달콤한 디저트의 붐이 일기 시작한 건 그보다 한참 뒤니까. 그녀들이 초콜릿을 사랑하듯 워싱턴 전체도 초콜릿을 사랑하도록 만들고야 말리라는 포부로 시작했던 그녀들의 가게는 생각보다 초라했고 한산했다. 당장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르는 경제적 위기를 몇 차례나 오가면서도 그녀들은 그들의 아버지가 은근과 끈기로 점철된 삶을 살았던 것처럼 것처럼 "초콜릿 초콜릿"을 굳건하게 지켜냈다. 이민 1세대였던 그녀들 부모님의 고된 삶과 이민 2세대로서 미국 사회에서 성공하기까지의 이야기들은 그녀가 부모님에게 가지고 있는 존경심에 나를 동참하게 했고 그녀들이 일궈낸 결코 녹록치 않았을 초콜릿샵 경영에 박수를 치게한다.

 

옛날 옛적, 오늘처럼 비가 오는 하늘 아래, 어느 우유배달부 소년이 채 해가 뜨기도 전인 새벽에 우유를 배달하고 있었다.

집에 오는 길에 서울 중심가의 멋들어진 반도호텔 앞에서 소년은 자전거에서 굴러 넘어졌다.

땅에서 몸을 일으키며 소년은 위를 올려다보았다. 빗속에서 그를 일으켜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소년의 두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소년, 우리의 아빠는 그래도 일어나서 남은 삶 동안 내내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그리고 우리도 그럴 터였다.   

p339

 





 

 

 그날 밤 미군의 B-52 전투기가 서울에 폭격을 퍼부었다.

이웃의 하숙집이 불타 사라지고 파편이 날아와 엄마의 머리 위에 있던 교회의 창유리를 산산조각내는 동안

 엄마는 허쉬초콜릿바를 품에 넣고 두꺼운 군부대용 담요 아래 웅크리고 있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죽을 운명이라면 초콜릿을 먹다 죽겠어."            

p87

 

 (911 테러가 있고 난 후) 다음 날 우리는 영업을 재개하기로 결정했다. 그날 엄청난 수의 손님이 왔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손님들도 전쟁이라도 터진 듯 충격받은 상태였고 일어난 사태에 할 말을 잃은 채 가게에서 위안을 찾았다.

같은 생각을 품은 손님이 잇따라 들어와 초콜릿을 샀다.

"마음에 위안을 줄 초콜릿이 필요해요."

마음의 위안이 되는 초콜릿이라.

언제 죽게 될지 모르던 한국전쟁 폭격 당시 어째서 엄마가 암시장의 초콜릿을 갉아먹었는지 그 이유를 이제야 알 수 있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지구 반 바퀴를 돌아와야 하는 곳에서 우리 가게의 손님도 똑같은 감정을 겪고 있었다.

p303

 

 

 <초콜릿 초콜릿>은 줄리엣 비노쉬 주연의 영화 <초콜릿>과 참 많이 닮아있다. 초콜릿의 달콤함에서 위로와 희망을 찾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게 그렇고 초콜릿 때문에 인생이 바뀌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게 그렇다. 당장 폭격에 맞아 죽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던 1948년의 서울에서 그녀들의 어머니가 벌벌 떨며 갉아먹었던 초콜릿은 두려움을 녹이는 생명과 희망의 맛이었을테다. 그리고 50여년 후 미국 땅에서 그녀들은 그 생명과 희망의 맛을 찾는 사람들을 마주하며 그들에게 초콜릿을 건넸다.

  생각해보면, 떫고 쓴 카카오에 설탕과 우유, 버터가 들어가 완성되는 초콜릿은 단순한 달콤함과 부드러운 맛을 가진 디저트 그 이상이다. 각양 각색의 모양과 맛, 향기로 멋을 낸 초콜릿 한 조각에는 긴장을 녹이는 푸근함이 있고 피로를 날려버리는 아늑함이 있다. 그래서 초콜릿은 그토록 많은 세월, 많은 사람들로부터 가늠할 수 없는 애정을 받아온 모양이다. 초콜릿을 만드는 사람들로부터, 초콜릿을 먹는 사람들로부터, 그리고 그 초콜릿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프랜시 & 진저 박 과 같은 사람들로부터.

 

 <초콜릿 초콜릿> 한 권을 읽어나가며 나는 도저히 초콜릿을 먹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었다. 한밤중에 일본드라마 심야식당을 보면서도 라면 한 그릇 먹은 적이 없는 나였는데도 말이다. 결국 열 손가락이 넘어가는 갯수의 초콜릿을 먹어치워야만 했지만 그 초콜릿들이 아깝지 않다. 내일 하루 종일 공원을 달려야 하지만 그 역시 억울하지 않다. 초콜릿처럼 달콤하면서도 사랑스럽게 살아가는 그녀들의 순수한 애정이 가득한 인생을 엿보았는데 이 정도 쯤이야. 책의 맨 마지막에 들어있는 초콜릿샵 "초콜릿 초콜릿" 만의 하우스트뤼플 레시피를 포스트잇에 적는다. 혼자 먹다가 둘이 죽어도 모를 그런 맛이라니 나도 좀 죽여주시기를 바라면서.







 

 워싱턴에 위치한 프랜시 & 진저 박의 초콜릿샵 "초콜릿 초콜릿"  

 

 



미국 현지에서 발간된 그녀들의 책 <초콜릿 초콜릿>  




 

 

 

    초콜릿샵 "초콜릿 초콜릿"만의 하우스트뤼플

 

 

 

그녀들에게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여기를 방문해보세요.

프랜시스 & 진저 박의 홈페이지    =>     http://www.parksister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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