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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비적성 - 살림 비적성 요리 비적성 엄마 비적성 여자의 육아 탐험기
한선유 지음 / 라온북 / 2020년 7월
평점 :
직장에서 날고 기는 위풍당당 초당당한 커리어우먼이 있다. 업무 능력치로든 경험치로든 만렙을 찍은 그녀는 무서울 게 없다. 거칠 것도 없고 걸릴 것도 없다. 임신을 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아니, 출산을 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뱃속에 있던 사랑스러운 아가와의 오프라인 조우 후에 그녀는 위기에 처했다. 세상에 내가 이렇게 육아에 비적성이었다니! 아가가 햇빛 속으로 나온 이후 날마다 그녀는 깨닫는다. 살림 비적성, 요리 비적성은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육아 비적성은 정말 위험하다. 다른 일은 잘하는데 왜 아이 앞에서만 작아지는걸까?
골드미스의 삶을 청산하고 순박한 남편을 장만한 한선유 저자는 육아가 적성에 안 맞는 밀레니얼맘을 위해 책을 냈다. [육아 비적성]은 이미 제목부터 육아에 소질도, 재능도, 취미도 없는 사람들을 위한 책임을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다.


아이는 정말 예쁘다. 사랑스러운 존재다. 육아가 이토록 어렵지만 않았다면 셋째도 가능했을 터. 그러나 한선유 저자는 셋째 아이 대신에 [육아 비적성] 출간을 택했다. 육아 비적성인 여자가 세상에 당신만이 아니라는 걸 당당하게 외치기 위해 그리고 안전하고 스마트하고 안온한 엄마 육아의 시대는 가고 폭풍처럼 다이나믹하고 강력한 아빠 육아의 시대가 왔음을 알리기 위해.
아빠 육아는 어떨까? 상상이 가지 않나? 바로 3단 강풍을 틀어버린다. 본인이 그렇게 선풍기 바람을 쐬기 때문이다. 애는 화들짝 놀란다. 태풍이다. 이런 걸 보고 엄마 육아는 아빠 육아는 위험하다고 자꾸 아빠들의 육아 기회와 자존감을 떨어뜨린다. 이뿐인가? 아이 좀 흔들흔들 하며 놀아주랬더니 바로 냅다 던져 받는 자이로드롭이다. 아이가 기겁한다. (중략)
강풍 육아, 난 적극 찬성이다. 아이만 안 날아간다면 아이들도 이런 시원시원한 육아 재미있어한다.
적응되면 선풍기는 바로 3단이다.
이게 아빠 육아의 진짜 '맛'이다. 원래 맛집은 간이 세다.
227-228쪽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 나가보면 알 수 있다. 엄마는 놀아준다. 아빠는 같이 논다. 그칠 줄 모르는 아이들의 체력을 온몸으로 받아주는 아빠 육아는 그래서 힘이 세다. 물론 지켜보는 엄마가 기겁하는 순간은 여럿 있겠지만 정작 아이들은 숨넘어갈 듯이 꺄르륵 거리며 즐거워한다.
한선유 저자는 출산과 육아에 힘들어하는 여성들에게 혼자 감당하지 말고 남편에게도 역할을 주라고 말한다. 임신 중에 남편은 배달의 민족, 출산 후 남편은 육아 보조가 아닌 육아 전담반이 되어야 한다. 사실 아빠들은 생각보다 육아에 특화되어 있다. 시켜보지 않았으므로 모르는 것. 한선유 저자는 [육아 비적성]에서 자신의 육아 사례를 들어 임신과 출산, 육아는 부부 공동의 과정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아빠 육아가 무척이나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라는 사실도.
회사가 내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을 걸 알기에 목숨 걸고 일자히 않는 것처럼 육아도 나를 괴롭히면서 뛰어내릴 것 같은 우울증이 오기까지 하면 안 된다. 그건 목숨 거는 것이다. 아이의 울음을 너무 민감하게 큰일로 받아들이지 않고 나의 마음속 울음을 더 챙겨보려고 애쓴다.
190쪽
[육아 비적성]은 워킹맘들이 한번쯤 읽어볼만한 책이다. 회사엔 휴직을 내고 출산을 기다리는 중이라거나 직장과 육아라는 두 가지 선택지 사이에서 마음 고생을 하고 있는 여성에게는 꼭 권하고 싶다. 한선유 저자가 [육아 비적성]에 쓴 대로 모든 일을 잘할 수는 없고 굳이 최고 좋은 엄마가 될 필요도 없다. 영화 [룸]에서, 좋은 엄마가 되어주지 못해서 미안함을 토로하는 엄마에게 6살 난 아들은 말한다. 괜찮다고, 그냥 엄마라고. 엄마라는 역할로 이미 된 것이다.

[육아 비적성]은 한선유 저자의 재기 넘치는 문장들 덕분에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힌다. 마치 아는 언니와 수다를 떠는 것처럼, 이야기들이 워낙 웃겨서 출산과 육아를 주제로 한 시트콤을 보는 듯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육아란 시트콤이 아니라 스릴러나 뭐 그런 비슷한 일이겠지. 한선유 저자는 누구보다 현실적인 체험기를 [육아 비적성]에서 풀어놓았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 자체는 어쩌면 아주 큰 일이 아닐지 모른다. 워킹맘에게 육아란 삶의 전부 혹은 전체가 아니라 살아가야 하는 하루 24시간, 일주일의 시간 중 일부다. 그래서 한선유 저자는 [육아 비적성]에서 이야기한다. 짬뽕반과 짜장반을 합친 짬짜는 결코 각각의 한 그릇을 오롯이 먹은 만족감을 주지 못한다고. 그러니 처음부터 두 가지 맛을 다 제대로 보겠다는 생각을 뒤집는 게 먼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