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이렇게 서로 싸우게 된걸까? 그런 고민에서 출발한 소설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이렇게 치열하게 싸우지 않던 시절도 있었을까? 심진경 평론가의 말대로 과연 우리 시대에 자매애란 가능한 것일까?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한창 유행했는데 (지금도 어느 커뮤니티에서는 절대적인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나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적은 성별을 가리지 않는다. 만인은 만인의 적이다. 만인은 만인에 대하여 투쟁한다. 굳이 토마스 홉스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시민론]까지 파고 들어가지 않아도 이 사실은 명백하다. 20세기에 태어나 21세기를 살고 있는 지구촌 인류 중에 이 말을 체험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투쟁'에 프레임을 들이대면 곤란하다. 여자는 여자에 대하여 싸운다든지 남자는 남자에 대하여 싸운다든지 뭐 이런 프레임 말이다. 사람의 뇌는 변수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변수는 위기와 위험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때문에 변수를 줄이기 위하여 뇌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 그 중 하나가 프레임이다. 시야를 자꾸 좁히는 것이다. 타조가 구덩이에 대가리를 박고 자신이 안전하다고 믿는 행태를 우스워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제발 타조 대가리를 비웃지 마시라. 사람의 뇌도 비슷한 행태를 의식 중에 혹은 무의식 중에 자주 반복한다. 지금도 뉴스 기사나 그 기사의 댓글란에 보면 프레임을 자처해서 뒤집어쓰고 자기가 보고 싶은 세상만 보는 타조들이 얼마나 많은지.
[붕대 감기]는 가능한 모든 프레임을 거두고 21세기 한국 사회에서의 여성들의 삶을 재단하지 않은 소설이다. [붕대 감기]는 제목과는 달리 친절하고 부드러운 소설은 아니다. 독자에게 친절하게 붕대를 감아주기 보다는 붕대를 툭 던져주고 어떻게든 저떻게든 감아보는 게 어떻겠냐며 제안하는 이야기에 가깝다. 이 작품을 읽기 전에 먼저 책 뒤에 실린 심진경 평론가의 글을 읽고 작품을 읽는 게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이 작품이 무엇을 묻는지, 무엇을 생각해보자고 제안하는지를 좀더 선명하게 느낀 후에 작품을 읽으면 훨씬 얻는 게 많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