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어릴 때의 일이 생각나서 그렇다. 혹시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동물 이야기>라거나 혹은 그에 비슷한 책을 읽어 본 적이 있는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어떤 괴상한 교수와 아마도 한스라는 이름을 가진 조수가 세계 방방곳곳을 돌아다니며 정말 말 그대로 '이상한 동물'들을 찾아다니는, 뭐 그런 것이다.
근데 문제는 이게 그냥 픽션인가 싶지만 이야기마다 사진들이 삽입되어있다. 그 사진이라는게 다 하나같이 황당하다. 불을 뿜어대는 도마뱀, 인도의 다리달린 뱀, 일본의 바다 괴수, 거북이 등껍질을 가진 학, 날개달린 사자, 외다리 조개, 켄타우르스, 거북이 늑대의 사진이 그 책에 실려있다면 믿어지겠는가? 사람들은 아마도 이것들의 사진을 보면 '핏, 가짜인게 분명해'라고 생각 할 게 당연하다. 근데 문제는 이 교수라는 괴짜가 실제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진 '아르마딜로'나 '오리너구리'같은 동물도 발견했다는 것이다.-_-; 콧물 질질흘리던 초등학생은 이 때부터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제멋대로 넘어든다. "(훌쩍) 이 책에 있는 것들이 진짜일까? (훌쩍) 이 사람 (훌쩍) 가히 동물학의 노벨상을 탈 정도로 (훌쩍) 대단한 사람인걸!"
솔직히 고백컨데 지금까지 살아온 날까지 가장 재미있고 충격적으로 읽은 책이라면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동물 이야기>라는 책이다. -_-; 그 흥미로운 글(거북이 늑대의 고기의 맛은 탁월하다느니, 켄타우르스가 말을 하니, 외다리 조개와 악수를 나눈 감동적인 감정이니 하는 것들)이며 사진들(놀랍게도 그 사진 중에선 정밀한 동물에 대한 해부 그림도 있는 걸 봐서 교수의 생물학적 지식도 조금이나마 있진 않았을까 싶다.)에게 진위여부를 침튀기며 논박해도 별 소용없다. 그 책의 내용이 완전히 진짜라고 여기진 않지만, 나에게 환상의 영역이라는 것을 머릿속에 넣어준 책인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가끔 생각하는 황당한 논픽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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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요상한 동물들이 세상에 진짜 존재하는 것이라면 생물학계의 커다란 파란을 몰고 올 것이다. 정설로 받아들여지던 학설들은 뒤집어지고, 기존 학설만 고집하던 학자들의 기득권은 무너지는 것은 뻔하지 않은가? 그로 하여금 생물학계는 '개똥벌레의 서식지 요구조건과 번식량간의 관계', '아시아의 쥐며느리의 줄 개수에 대한 관찰'과 같은 논문을 다듬는 대신 가히 혁명적인 발견을 어떻게 무마시킬까하고 끙끙댔다. 학술 심포지엄은 모두 이에 대한 해결책만을 다루기 시작했고 생물학자들의 스트레스는 날로 심각해졌다. 그러던 중 그렇게 우려하던 결과물이 책으로 출판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에 따른 세상의 반응 참으로 시큰둥했다. 몇몇 젊은 소년 소녀들이 열광할 따름이지 어른들은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딴게 있을리 없다는 반응에서 날아다니는 사자가 뉴욕 시내 한복판을 돌아다녀도 별로 상관안쓴다는 둥의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생물학계에서는 이에 안도의 한숨을 쉬고 그렇게 고대하던 '지렁이의 주름 수와 몸길이와의 관계'에 관한 심포지엄에 전념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 요상스러운 책을 읽은 어린 아이들이 크면 어떻게 하는가? 하지만 한결 느긋해진 학계에서는 가만히 두고보자는 온건한 보신책을 마련했다.
그들의 말은 실현되었다. 그들은 자라서 건강한 도시의 구성원으로 합류하였고, 외다리 조개와는 별 관련 없는 회계사무를 보고, 월드컵에 열광하는 평범한 인간들이 되었다. 물론 몇몇 괴상한 반동분자가 생겼지만 그건 별 문제가 되진 않았다. 그들은 대부분 정신병원의 벽이나 긁어대는 미친놈 취급 받을게 뻔하니까. "참으로 '평범한' 세상이야." CCTV로 모든 걸 관찰하고 있던 학계(사실 거의 모든 분야의 기득권)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샴페인을 쭈욱 들이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