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공부 - 장정일의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
장정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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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은 몇 해 전에 중고로 구매했다. ‘공부라는 단어를 보고 샀던 것 같다. 장정일의 공부 방법에 대한 이야기일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었겠지. 출판사에서 제공한 소개글과 목차만 제대로 훑어봤더라도 이 책이 공부법에 관한 것이 아니란 걸 알았을 텐데. 서문만 대충 읽고 덮어둔 흔적이 있다.

 

장정일의 독서일기시리즈처럼 이 책도 서평집 혹은 독후감 모음집이다. 많이 두껍지는 않은데 읽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한 권으로 수십 권은 읽은 듯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책의 요약과 논지, 장정일의 문제의식이 잘 드러나 있다.

 

원래 공부란 내가 조금 하고그 다음에는 당신이 하는 것’”(7)이라는 서문의 글이 드러내듯, 읽은 후에 공부해야 할(공부하고 싶은) 내용이 많다. 군사문화, 근대성, 세계화, 민주주의, 전체주의, 교육, 신자유주의 등의 주제를 다루는데(그런 주제를 담은 책을 다루거나 책에서 그런 문제를 뽑아낸 것이다), 그래서 장정일이 하고 싶은 말은 책을 읽자!”, “공부하자!”는 거 아닐까. 비판적인 시민이 되자는 거다. 서문에서 중용은 무지한 것, “아무런 사유도 고민도 없”(5)는 것이란 말을 괜히 꺼낸 게 아니다. 공부하게 되면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되고, 자신의 입장을 갖게 되는 것이다. 기계적인 중용은 있을 수 없다. 자신이 서 있는 곳이 어디쯤인지 인식하는 것,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표면이 아니라 이면을 보는 눈을 갖는 게 공부의 목적(?)이다.

 

제국의 몰락(엠마누엘 토드, 까치, 2003)미국 문화의 몰락(모리스 버만, 황금가지, 2002)을 다룬 과두정이 온다는 제목의 장에서 이러한 저자(장정일)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두 저자의 책은 서로 상이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 배면에는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어른거리고 있으며, 똑같이 민주주의란 더도 덜도 아닌, 책을 읽는 능력이다!’라고 답한다.”(181)라는 부분이다. 국가와 자본, 지식인에게 휘둘리지 말고 스스로 읽고 공부하자. 그냥 휘리릭 읽는 게 아니고, 공부하는 것. 독서와 공부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지는 잠시 미뤄두고,책을 읽는 능력공부하는 것의 기초이자 공부 자체다. 그래서 이 책 제목도 장정일의 독서가 아니라 장정일의 공부아니겠는가. 좀 과장해서 말하면, 독서가 곧 공부다.

 

초판이 2006년인 만큼 시간이 좀 흘렀지만, 책이 담고 있는 문제의식들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민주주의가 없었던 지역에서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반면, 민주주의가 선취된 곳에서는 현대의 귀족(부자)들에 의해 과두정이 이루어지고 있다”(178), “더는 가난한 수재가 나올 수 없다. 부잣집 수재만 있는 것이다. 이런 세계에서 교육은 민주주의가 아닌 과두제의 산실이며, 이는 모든 선진국이 맞이하고 있는 현실”(182) 등의 내용은 현재진행형이다. 요즘 국정농단 사태를 보면 과두정조차 코미디지만. 어쨌든 책에서 다루는 공부가 더욱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덧붙여_ 

1) 지난 해 갖고 있던 책의 절반 이상을 처분한 게 요즘 들어 상당히 뼈아프다(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의 영향이 책을 처분하는 데에까지 미친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읽고 싶은 책이 다수 생겼는데, 원래 갖고 있던 것들도 몇 권 있다.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은 잊을만하면 다른 책에서 등장해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을 부추긴다.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남자의 탄생(전인권)도 처분한 책들이다. 젠장. 고민을 거듭한 끝에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는 이번에 다시 구입했다. 이런 헛짓을 하게 되다니, 앞으로 웬만해서는 책 처분할 마음이 들지 않겠지. 단순하게 살려다가 뭔가 더 복잡해졌다는 찝찝함을 지울 수가 없다.

 

2) 책을 읽고 나서 내용을 요약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난 시험 치는 것도 아닌데 뭐 꼭 그래야 하나, 생각했었는데(귀찮고 지루하고 힘겹기 때문에) 꼭 그래야 한다. 요약하는 것 자체가 공부가 되기도 할뿐더러, 나중에 요약한 글을 읽어 보면 어떤 책이었는지 어렴풋하게나마 기억나기 때문이다(때로는 생생하게 기억난다). 내가 요약해 놓은 글에서 당시 내 관심사와 사고방식도 알 수 있다. 시간이 흘러 읽어 보니까 그렇다. 내가 어떤 책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며 지냈는지, 나의 변화를 은밀하게(?) 감지할 수 있다. 찾아보니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를 읽고 쓴 독후감(2004)이 있었다. 그 독후감만 읽었으면 책 내용을 거의 알지 못했을 건데, 장정일의 공부를 읽고 내 독후감을 보니까 내가 무슨 말을 써놓은 건지 이해된다. 정말 글 못쓰는구나. 장정일과 내가 같은 책을 읽었는데(분명히 그러한데) 왜 각자 다른 책을 읽고 쓴 것 같은지. 손발이 오그라든다. 너무나도 명랑하게 이 책을 읽으니 애쓰지 않아도 당시 예송논쟁이나 북벌론과 관련한 내용에 대해 흐름이 잡힌다.() ‘애쓰지 않아도잡히던 흐름을 기록해 놓았으면 좋았을 텐데. 지금은 애써도 기억이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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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 - 외롭지 않은 페미니즘
이민경 지음 / 봄알람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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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납득 되지 않는 일을 겪어야 할 때, 불편하고 불쾌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고 느낄 때, 차별과 폭력, 억압을 경험할 때 나는 당당하게 따지기보다 주변의 눈치를 본다. 내가 예민한 건지, 분란을 만드는 건지,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닌지, 애쓴다고 바뀔지. 혼자 흥분해서 떠들 때마다 속상하고 외롭다. 이 모든 상황을 왜 그렇게 느끼고 생각하는지일일이 설명하고 설득해야 할 때마다, 심지어 친한 친구에게조차 좋은 게 좋은 거’(애써 분쟁을 만들지 말라는 뜻에서)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혼란스럽다. 숨 막혀 미칠 지경인데 잠자코 있어야 하나? 하루에도 몇 번씩 이건 아닌데싶은 순간을 모른 척 넘겨야 하나? 때로는 고통스러울 때가 있는데? 진짜 이런 기분, 나만 느끼는 건가.

 

이민경의 전작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봄알람, 2016)을 읽으면서 내가 시시때때로 느끼는, 설명하기 힘든 그 기분이 나만의 것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많은 여성들이 나와 비슷한 느낌을 갖고 있다는 것,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이 적지 않은 위로가 되었다.(입이 트인 것 같지는 않다만)

 

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는 나와 다른 많은 여성들의 느낌이 오늘날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는 걸 알려준다. 우리 엄마도, 할머니도, 증조할머니도, 김경숙도, 나혜석도, 어쩌면 신사임당도 지금의 우리와 비슷한 기분으로 살지 않았을까. 누군가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꿔보려 노력했을 것이고, 각자의 자리에서 최대한의 변화를 시도했을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저 팔자려니하며 살았을 것이고,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도 있었을 테지. 이 모든 이야기는 점으로 흩어져서 까맣게 잊혔거나, 누군가에 의해 겨우 발견되었다. 들을 이으면 선이 된다. 한숨이 나오지만 지금 이만큼이라도 내 이야기를 하고, 싸우고,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건 바로 아무개 아무개(!) 여성들의 이 있었기 때문이다. 들을 찾아서 이으면 우리의 계보가 된다. 기념하고 기억하지 않으면 이 마저도 지워지고 말 것이다.

 

불과 10~20년 전까지도 법에 정조 관념이나 호주제 따위가 존재했다는 걸 상기하면 소름이 돋는다. 법의 내용도 끔찍하지만, ‘10~20년 전까지만 해도 존재했다는 사실이 더 경악스럽다. 말도 안 되는 걸 없애보려고 만신창이가 되도록 오랜 기간 싸웠던 여성들. 그들이 있었기에 나는 소름이 돋는정도로 가만히 앉아서 호들갑을 떨 수 있다. 이제는 정말 말도 안 돼, 그런 시절이 있었단 말이야?!”라며 어이없어하고 호들갑을 떨 수 있도록 만들어준 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학창시절 역사에는 별다른 흥미가 없었지만, 여자들 이야기가 너무 없다는 점은 의아하게 생각했다. 가끔 등장하는 여성 위인(?)들에겐 항상 여성임을 밝히는 수식어가 있었다. 옛날 먼 옛날에는(그리 멀지도 않지만) 남자만 살았거나 여자들은 무능했거나, 무능할 수밖에 없었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배제되었거나. 어릴 적 내 이름에는 왜 아버지랑, 아버지의 형제, 할아버지랑 같은 글자()가 있는지 궁금했다. 나는 왜 아버지 집안의 자식인가? 나는 어머니의 자식이기도 한데, 어머니의 어머니 이야기도 궁금한데. 그래놓고 결혼하면 왜 남의 집안 자식이 된다는 건지. 난 대체 누구의 자식이란 말인지. 결혼해서 시댁에 가보니 시어머니는 우리 집안이라는 말보다 이 집안 사람들”, “씨 집안이란 말을 더 자주 쓰셨다.(우리 엄마도 비슷하다) 그렇다면 시어머니의 자리는 어디쯤일까. 내게는 분명 시부모님이면서도 시집안사람은 아닌 위치는 대체 뭐지? 엄마도 시어머니도 집안사람인 동시에 바깥사람인 아니, ‘집안사람도 아니고 바깥사람도 아닌 이상한 위치에 있는 것 같다. 나 역시도 그렇다. 나는 아버지 집안 사람도 아니고 어머니 집안 사람도 아니고, 시댁 사람도 아니다. 난 내가 필요할 때만 집안사람이고 결정적일 때는 바깥사람으로 규정된다는 걸 안다. 자기들 마음대로다.

 

이 책은 흥미로운 역사책이다. 몰랐거나 몰라도 되었거나 모르고 싶었거나 모른 척했던 우리들의이야기가 있다. 이제 우리들만의 이야기로 그쳐서는 곤란하다. 기억하고 기념하고 당당하게 제자리를 찾아주어야 한다. 당장 달려가 엄마의 이야기부터 듣고 싶다. 엄마의 이야기, 할머니의 이야기도 듣고 지금의 내가 어떻게 해서 이 자리에 있는 건지 생생하게 느끼고 싶다. 그 이야기를 간직할 것이다.

 

이 책은 문제집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너무나도 모르고 있다, 들어본 적도 없다는 것에 열이 받는다. 무식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는 점이(나만 그런가...?) 이 책의 미덕이긴 한데, 내용을 좀더 풍부하게 담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독자에게 묻고 찾아보고 생각하도록 하는 것도 좋지만, 분명 아 그랬구나하고 멈추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생각해 보니 아 그랬구나가 책의 목적이랄 수도 있겠다. ‘아 그랬구나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사람도 인구의 절반쯤 될 것 같으니. 2, 3의 독서와 공부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 책은 기본적인 안내서 역할은 충실히 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많은 여성들에게 빚지고 있다. 그 빚으로 인해서 조금씩 빛을 보고 있다. 각자가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다. 나도 점이 되어서 지금껏 이어온 선의 어디쯤엔가 자리 잡게 되기를. 저자의 표현처럼, 커튼의 구멍을 더 넓히는 데 힘을 보탤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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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1-04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 그랬구나’라고 독자의 생각을 멈추게 하는 페미니즘 책은 비판적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독자 입장에서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자신이 페미니즘을 이해하고, 여성들이 겪은 가부장제의 고통과 부당한 상황을 공감한다고 인식합니다. 특히 남성 독자가 이런 착각에 빠지기 쉽습니다. 물론, 여성 독자도 이론만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히려 이런 반응이 페미니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cobomi 2017-01-05 10:48   좋아요 1 | URL
네, 더 나아가는 독서가 된다면 좋겠죠. ‘아, 그랬구나‘까지도 힘든 사람들이 많은 게 함정입니다ㅋㅋ
 
몸으로 하는 공부 - 강유원 잡문집
강유원 지음 / 여름언덕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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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심상치 않다. “몸으로 하는 공부”. ‘공부는 몸으로 하는 거다쯤 되겠는데, 비슷한 버전으로는 공부는 엉덩이로 한다’, ‘공부는 머리로 한다’, ‘공부는 돈으로 한다등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책읽기와 글쓰기는 몸으로 하는 것이고, 그 목적은 위기지학爲己之學이라 여긴다.”(5, ‘서언)

 

공부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지식인은 어떤 사람인지, 학문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비롯해 문화와 책, 글에 대한 저자의 생각과 단상들로 채워진 책이다. 저자의 말처럼 잡문을 이것저것 끌어 모아 놓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몸으로 하는 공부라는 주제가 모든 글을 하나로 꿴다. 서로 통한다. 그러니 핵심은 몸이고, 공부다.

 

“공부”는 그렇다 치고, “몸으로라는 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두 가지만 꼽자면, 우선 직접, 스스로, 끈기 있게공부한다는 걸 표현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내 눈으로 읽어서 내 손으로 쓰는 것이 핵심이다.”(190)라는 저자의 말도 그러한 의미가 아닐까.

 

두 번째는 머리로의 반대(?) 개념으로서의 몸으로이다. 머리 즉, 생각만 하는 건 반쪽짜리 공부다. 몸만 쓰는 것(경험만 하는 것)도 반쪽짜리다. “몸으로 하는 공부가 완전체다. 경험한 것을 이론으로 정리할 줄 알아야 한다. 아는 것은 실천해야 한다.

 

(경험)과 머리(이론)가 함께 가야 하는 것이다. 굳이 공부의 순서를 따지자면 몸이 먼저다. 일상적인 삶, 생활, 현실, 물리적인 습관과 시간 등을 토대로 문화, 멘탈리티, 이론 따위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현실, 사례, 예시를 공부하고 이론을 정립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몸으로 하는 공부의 목적은 위기지학이다. 위기지학은 자신의 본질을 밝히기 위한 학문’(다음 백과사전)이라는데, 자기 수양을 위하거나 자아실현, 인간 본질의 실현을 위한 공부쯤으로 해석해도 좋지 않을까. 인간다움의 본질은 생각하는 것, 자유로운 것이다.(다른 의견도 있을 수 있겠다- 저자도 오히려 인간은 본질적으로 노예 상태에서 살기를 더 좋아하는 것 같”(125)다고 표현하니까)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국가와 자본, 미디어, 지식인, 권위 등에 휘둘리지 말고, 자신이 발 딛고 있는 구체적인 현실과 관계 속에서 비판적으로 사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노예 상태나 다름없다.(덧붙이자면, 저자는 비판적 사고에 도움이 되는 학문이 철학이라고 말한다.)

 

고민하라. 번뇌하라. 아무 생각 없음은 악이다. () 끊임없이 공부하고 그것에 근거해서 독자적인 판단을 하도록 노력하라. () 인간의 존엄성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130)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공부하고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선택하고, 실천하자. 몸으로 공부하자.

 

따로 더 찾아보고 공부해야 할 내용도 더러 있었고(특히 ‘10장 한국 문화탐구 방법론이란 글에서 여성해방의 역사에 관련된 부분), 동의하기 힘든 의견도 있었지만 몸으로 하는 공부라는 책 전체의 주제에는 깊이 공감했다. 부록처럼 실린 내가 공부하는 방법이라는 장도 인상적이다. 스스로를 누군가 뭘 열정적으로 하는 것도 비웃는 사람’(159쪽)이라면서도 저자 자신은 치열하게 공부한다. 구체적인 공부법도 다루고 있어서 흥미롭고, 공부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덧붙이는 말1) 이 책이 품절상태인데, 출간이 좀 되었으면 좋겠다. 중고거래가가 지나치게 높다. 예전에 읽고 중고로 팔았는데, 다시 사려니 비싸다(팔 때는 좋았다지). 도서관도 멀지만, 너절한 책을 빌려 읽기가 싫다. 중고거래가가 높다는 건 수요가 있다는 의미일 텐데, 제본 질을 좀 높여서 출간했으면 좋겠다. 읽다 보니 종이가 책 본체에서 낱낱이 떨어질 것만 같다.

 

덧붙이는 말2) 책에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저자가 어릴 때 박목월이 쓴 박정희 전기를 읽고 박정희가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커서 박정희의 진면목을 알게 되면서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은 완전히 달라졌고, () 독서의 기억과 겹쳐짐으로써 배신감, 증오심까지 생겨났다.’(51)고 한다. 너무 증오한 나머지 연좌제가 불법이고 애비와 자식은 무관하지만’(같은 쪽), ‘뻔뻔스럽게 설치고 다니는 그의 큰딸에 대해서는 정말 때려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같은 쪽)라고. 2005년에 쓴 책인데, 지금 저자는 그의 큰딸에 대해서 때려죽이고 싶은 정도보다 더 심한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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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1-03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목월 시인이 육영수 여사 전기 비슷한 책도 썼어요. 제가 대구에 살고 있는데, 대구 헌책방 몇 군데 가면 그 책 한 권은 볼 수 있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

cobomi 2017-01-03 17:10   좋아요 0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저랑 매우 가까운 곳에 계시네요. 저는 경산에 살아요ㅎㅎ 말씀하신 책은 굳이 찾아 읽고 싶지는 않아요. 그 책이 시중에 엄청 돌아다녔었나 보네요. 아니면 특정인이나 단체가 대량으로 사들였거나...

모쪼록 정유년에도 건강하세요~
 
서평 글쓰기 특강 - 생각 정리의 기술
김민영.황선애 지음 / 북바이북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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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늘 책을 더 잘 읽고 싶은 갈증이 있다.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생각이 늘 따라다닌다. 분명 재미있게, 열심히, 흥분하며 읽은 책이건만 뭘 읽었는지, 책 내용이 무엇인지, 그래서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는 상태. 어쩌다 내가 읽은 책에 대한 서평이나 책 내용을 언급한 글을 보면 처음 보는 것 마냥 신기했던 적이 꽤 있다. ‘독후 활동이 필요한 이유다.

 

서평을 잘 쓰기 위해서라기보다 책을 잘 읽고 싶어서 산 책이다. ‘생각 정리의 기술이 부제다. 책을 고른 목적이 더 잘 읽기 위해서다 보니, 서평 쓰기에 관한 팁들이 모두 독서를 잘 하기 위한 방법처럼 느껴졌다. 잘 쓰기 위해서는 잘 읽어야 하듯, 잘 읽기 위해서는 쓰기를 염두에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역시 읽는 과정부터가 중요하다. 밑줄을 긋고 메모하고 배경지식을 검색하며, 내 느낌과 생각의 근거를 찾아내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발췌한 것들을 다시 읽으며 의문점, 생각, 느낌 등을 정리하고, 재독(再讀)하여 놓친 것이 없는지 살피면서 책 내용을 재차 확인한다. 이 얼마나 번거롭고 지난한 과정인가. 잘 읽고 싶다는 욕심만 내고 잘 읽으려는 노력은 팽개쳤다는 걸 고백해야겠다. 귀찮고, 읽고 싶은 책은 많고, 시간은 부족하고, 그렇게까지 읽어서 뭐하나 하는 자괴감(?)이 들고. 하고 싶지 않은 일에는 언제나 핑계가 많은 법이다.

 

읽기를 비롯해 서평 쓰는 방법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쉽게 읽히고 유용하다. 더 잘 쓰기 위해, 더 잘 읽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2017년엔 더 잘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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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인 삶을 위한 글쓰기 - 지혜의 숲에서 에세이를 쓰다
차오름 지음 / 지혜의숲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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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란 무엇인가. 글쓰기는 무엇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지적인 삶을 위한 글쓰기〉는 이러한 질문에 관한 생각이자 대답이다. '지적인 글을 잘쓰는 (엄청난, 획기적인!) 비결'을 원했다면 조금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그런 '비결'보다 더 궁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다. 글감, 문장, 제목, 논리, 낱말, 시니피앙과 시니피에, 의식과 언어, 한국어 품사, 비유, 문체…. 저자는 글을 이루는 요소들에 대해서 온갖 질문을 늘어놓고 거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하나하나 풀어 간다. 동시에 독자를 자신이 던진 질문 속으로 끌어들인다.

 

생각할 거리가 많다는 것이 이 책의 미덕이다. 저자의 물음을 따라가다 보면 내 머릿속에도 질문이 생기고, 저자가 던진 질문에 대해서도 곰곰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읽기의 과정이 글쓰기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모든 문장은 질문에 대한 답이다"(1장 1번 제목)라는 저자의 말은 책을 통틀어 가장 명쾌하고 빛나는 부분이다.

 

글쓰기 과정을 생각해보자. 글을 쓰기 위해서는 글감이 있어야 한다. 바로 생각이다.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에서 질문이 생기고, 질문에 답하기 위해 생각한다. 우리는 바로 그 생각, 내가 생각한 것을 글로 표현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건 '생각'이다. 생각을 잘하려면 질문을 잘해야 한다. 당연한 것과 익숙한 것에 딴지를 걸고 물음을 던지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어제 대구 서문시장 화재와 관련한 동영상을 보았다. 대통령이 화재 현장에 방문한 것을 두고 상인 한 사람이 성토하는 영상이었다. 그 영상에 달린 추천 댓글 중 하나는 이런 내용을 담고 있었다. '무조건 1번 찍더니 대구 사람 꼴 좋다. 너네가 뽑은 대통령이니 당해도 싸다' 나는 그 댓글을 보고 궁금했다.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대구 유권자들이 미친 영향력이 그렇게 대단했었나? 선거관리위원회 자료를 찾아 보았다. 18대 대통령 선거 전국 투표율은 75.8%. 대구 유권자 중에서 당시 박근혜 후보에게 표를 던진 사람은 1,267,789명. 전국 투표자 수의 4.13%(반올림)이다. 투표 결과 박근혜 후보는 문재인 후보와 3.6% 차이로 당선되었다. 그러니까 대구 유권자 중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표를 던진 사람 모두 문재인 후보에게 투표했다면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 전국 유권자 중에서 투표하지 않은 사람은 9,786,383명이다. 그 중 1,080,497명(투표 안 한 사람의 11.04%)이 문재인 후보에게 표를 주었다면 한 표 차이로 문재인 후보가 당선 되었을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거다.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대구 유권자가 미친 영향보다 투표 안 한 사람들이 미친 영향이 더 크지 않은가 하는... 농담이고. 사실은 그 댓글을 보자마자 알 수 없는 분노가 치솟아서 한번 정확히 알아보고 싶었다. 대통령(이나 정치인)의 잘못을 유권자에게 돌리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가(어디 무서워서 투표하겠나). 그런 식으로 잘못의 근원을 파고 들자면 박근혜 대통령 부모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지 않겠나.(이러려고 낳았나…)

 

애초에 댓글 하나를 보고 떠오른 물음표였을 뿐인데. 이것이 저자가 말한 '질문의 힘'인지는 몰라도 찾아보고 생각하고 글까지 썼으니, 질문이야말로 글쓰기의 가장 기초 재료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하는 질문이 곧 나의 생각이 되고, 나를 드러내주는 것이다. 우리는 남이 했던 말, 하나마나한 소리를 하기 위해 글을 쓰지는 않으니까.

 

이 책에 대한 생각 몇 가지를 덧붙인다. 곳곳에 삽입된(지나칠 정도로 많이 삽입된) '생각을 불러오는 명화' 코너는 좋았다. 다만, 너무 곳곳에 있어서 책을 읽다가 흐름이 끊기는 경향이 있었다. 각 장의 꼭지별로 연습문제 같은 코너도 있다. 청소년용 도서로 출간된 것 같은데, 성인이 읽기에도 크게 나쁘지는 않다. 종이 질이 매끄럽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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