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눈은 감겨줄 수 있다

 

그러나

두 귀를 닫아줄 수는 없구나

 

저만치

아득하게 너를 부르는

 

 

 

 

--- 어제 밤부터 내리던 비가 그쳤네요. 비가 오면 늘 듣는 음악을 오전 내내 들었습니다. 리듬과 가사의 배경으로 온통 촉촉이 내리는 빗소리가 담긴 음악들. 스팅의 'fragile'과 이아립의 '물음표를 찍어요'

 

  해가 비치기 시작하고 이성이 지배하는 낮의 시간이건만... 몸도 마음에도 그늘이 깔리기 시작하는 건 왜인지 모르겠습니다. 눈물이 내릴 것만 같아 재빨리 바깥으로 나와 보기도 했습니다.

 

  그리움이란 무엇인가요? 부재와 결핍이 끊임없이 부르는 이 내면의 목소리는 끝없이 제 안을 메아리칩니다. 멀고 먼 곳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는 결국 내가 당신을 부르는 소리일 수 밖에 없습니다.

 

  "Tu mu mangue!"  뛰 므 망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여행

 

 

 

그 무엇이 속삭이고 있었어

어딘가에서

 

너를 부르고 있었나

나도 모르는

내가

 

아무도 다가와 울려보지 못한

내 마음 깊은 곳의

종이 울린다

 

내 몸이 갈 수 없는

멀리

멀리서만 글썽이던 별빛처럼

먼 곳에서

누군가 지는 햇살처럼 오는 줄도 모르게

한참을 더디게 다가왔었나

 

단 한 번도 내 안을 벗어나 보지 못해

늘 되돌이표로 울던

마음들아

 

이제 가야지

아프도록 나에게 손 흔들며

기다리지 말라고 침묵으로 말해야지

 

돌아오기 위해서가 아니라

돌아오지 않기 위해 떠나는

여행을 위해 이제

마지막 차를 타야지

 

지나가는 모든 길들이 터널처럼 어두워지는

막차는 외롭지만 황홀할 수 밖에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먼 그 곳

너의 가슴 속으로

내 마음은 떠난다

 

 

 

--- 이 지상의 비극과는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환장하게 맑은 봄날

  햇살은 잔안할 정도로 따스하더군요. 아무도 없는 학교 뒷산을 천천히 되새김질하면서 걸었습니다. 턱 하고 둔탁한 무언가가 목에 걸린 듯 어제부터 무겁게 잠기기만 하는 목울대... 약간의 미열이 머무는 이마에 바람이 불어도 몽롱하기만 한 머리... 마음이 무거워서였을까요?!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은 오후였습니다.

 

  그냥 어딘가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한없이 불어왔습니다.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라는 노래의 가사가 갑자기 떠올랐구요. 바쁘고 힘겹게 돌아가는 하루하루의 일상 속에서 많이 지쳤었구나. 

 

  그 속에서 하냥 외롭고 쓸쓸했습니다. 그 무엇 때문에... 그 누구 때문에... 라고 말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오로지 이 외로움은 온전히 저 스스로가 앓아야 하는 고독의 영토이니까요. 그래도 침묵의 소리로 누군가를 부르고 싶었습니다. 환청이었을까요?

 

  나무와 나무 사이에서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습니다. 작은 소리로 간절하게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먼 저 편에서 지금 이곳으로 바람의 소리로 불어오고 있다는 느낌에 몸을 떨었습니다. 

 

  아~!  그것은 내가 멀리 있는 당신을 부르는 소리였습니다.

  아프셔요?  지금 아프신가요? 

 

  결국 여행은 먼 밖으로 나를 떠나는 게 아니라 멀리 에돌아 나에게로 돌아오는 길이겠지요. 그러나 가끔씩 종을 떠난 종소리처럼 그저 돌아오지 않고 멀리멀리 가고 또 가버렸으면 좋겠다는 열망이 불기도 합니다.

 

  오늘이 바로 그 날이었습니다.

 

  당신은 어떤 날이었나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봄나무를 봄

 

  

 

어둠 속을 걷던 나무들이

일제히 발걸음 멈추고 선

새벽

 

간신히 눈 뜬 햇살이

힘없는 눈물을 떨어뜨린다

 

어둠 속 가만히 누워

별을 꿈꾸던 사람들이

뚜벅뚜벅 하나 둘 걷는

아침

 

햇살이 다독다독

나무의 몸을 어루만진다

 

따스하다

사람들이 바삐 걷는 길 위에

뿌리깊이 잠든 땅 속

 

나무의 캄캄한 꿈들이

푸르를 잎사귀를 흔든다

 

 

 

--- 사실 요 며칠은 입이 있어도 그 어떤 말을 하고 싶지도... 할 수도 없는 나날들이었습니다. 우울과 슬픔의 안개가 온 세상을 뿌옇게 흐려놓고는 도무지 개지 않을 것만 같은 날들이었습니다. 공중파 방송과 각종 인터넷 포털사이트, 온갖 SNS를 통해 말해지는 언어는 비애와 설움의 말들이었습니다. 도무지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의 참담한 저 비극적 인재 앞에서 아예 침묵 속으로 침잠한 몇몇 벗들도 보았지만, 어쩌면 침묵이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 많은 비애의 말들은 지금 쏟아내지 않으면 어쩌면 더 큰 아픔이 되어 우리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멍에와 상처를 무슨 화인처럼 남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들 저렇게 아프구나. 슬프구나. 그저 고개를 끄덕끄덕이며 서재에 앉아 눈을 감아 보기도 했습니다.

   '중생이 아프면 보살이 아프다'는 유마경의 구절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네가 아프니 내가 아프다, 당신들이 아프니 우리들이 아프다 라는 그 공감과 연대의 정서가 지금 이 땅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에게 절절하게 번지고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온종일 맥없이 기운 빠지고 열없이 멍하게 표정없이 무언가를 바라볼 수 밖에 없는 나날들이지만...  그래도 살아남은 자들은 살아남았기에... 잔인하고 먹먹하게 슬퍼도, 또 다가오는 하루하루의 일상을 살아낼 수 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쩌면 살아남은 자들은 비극에 침잠하고 비극에 갇혀 비극적으로 살아갈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저 비극의 참담함을 증언하고 기억해 내기 위해서라도 비극의 바깥으로 몸과 마음을 조금씩 내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와 같은 리듬으로 일상의 순간순간을 맞이하고 느끼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구요. 

 

  말을 하지 않으려 했는데... 말이 너무 많았네요. 여튼 저는 무기력한 몸과 마음을 잠시 일으켜 주말의 늦은 오후. 동네 뒷산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꽃 진 자리에 풀꽃들이 빼꼼히 무리지어 얼굴을 내밀고 저를 보고 있었습니다. 나무에게로 걸어가 제 팔이 닿는 만큼 나무를 안아 보기도 했습니다. 주름많은 나무의 살결을 제 손바닥으로 천천히 오래도록 쓰다듬어 보기도 했습니다. 언어라고는 모르는 나무가 제 불안하고 슬픈 마음을 다독다독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 제가 잠자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모든 인간의 잠든 깊은 밤과 새벽에 저 나무들은 한 자리에 머물렀던 발을 떼고 인간의 마을로 산책을 하러 올 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면서요...

 

  너무 말이 많았습니다. 유구무언(有口無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봄은 봄

 

 

 

피는 꽃 보이지 않아

꽃피는 사랑 보이진 않아

 

아직 추운 바닥이어도

 

봄은 봄이다

한 자리 지그시 앉아

겨우내 부르튼 언 살의 가지를 어루만지는 바람

바람의 손을 붙들고 선, 새순 움트려는

그 고요한 떨림을

 

봄은 바라봄이다

한 마음에 지그시 뿌리내려

겨우내 얼었던 눈물들 녹아 똑 또옥 노크하는 봄비

봄비 젖으며 기다림의 수액을 가슴으로 퍼올려

그리움의 꽃

아직 피지 않은 꽃맹아리가 활짝 터지길

 

봄은 들여다봄이다

나무 의자에 나무처럼 앉아

부드러운 숨결로 부는 바람 속

아직 오지 않은 너

너의 그윽한 눈망울을 사랑의 눈으로

 

봄은 봄

       바라봄

       들여다봄

 

오랜 기다림의 길

오래 앓은 나무로 한 세월 멈춰 서

새순 틔운 꽃눈 희미한 등처럼 내걸면

 

내 밖에서 더디게 오는 너와

내 안에서 아프게 걸어 나온 너가

연리지

서로의 나무로 서서

환한 꽃그늘 드리우리라

 

돌아올 수 밖에 없는 세월의 끝

둥글게 피어난 시간의 꽃잎 아래

그렇게

 

봄은

마주봄이다

 

 

 

--- 꽃나무에 꽃들이 많이 졌군요.

  지는 꽃을 바라보다 울컥~ 하고 목울대를 넘어 서러움이 갑자기 밀려왔습니다. 분명 이 봄도 이제 서서히 지겠구나. 지는 봄을 어떻게 보내야 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봄이 오기 전의 그 추웠던 날들을 잠시 떠올려 봤습니다. 그리고 작년의 봄날을... 봄날 꽃비 날리는 거리를 걸었던 사랑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겠지만... 그래도 꽃 지고 꽃 진 자리 그늘이 드리우면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불가해한 아픔이 가슴 한 켠을 물들이곤 합니다. 그래도 봄은 봄이겠지요.

 

  그 아픔을 미리 온전히 앓으려고 이른 봄이었던 3월 초순.

그 때 당신에게 보내려고 썼던 편지같은 이 시를 꺼내보았습니다.

 

  사랑을 하건... 지금 사랑 때문에 아파하건...

봄날이 가기 전에 이 봄을 오래도록 들여다 보시기를 간절히 빌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나무

 

 

 

떠남과 만남이

죽음과 삶이 모두

바람부는 길 위에 있다

 

기다림이 생을 견디게 한다

 

 

 

 

--- 점심을 먹고 학교 뒷산으로 오르는 길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어느 시인의 무덤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작은 갈림길 초입에 무슨 이정표처럼 나무 한 그루가 서 있구요.

 

  평소 무심히 그냥 지나치던 그 나무 아래에 앉아 담배를 태웠습니다. 그리곤 오래도록 앉아서 누군가를 생각했습니다.  햇살은 눈부시게 부서져 내리고, 부드러운 바람이 나무와 제 머릿결을 매만지며 지나가곤 했습니다.

 

  바람과 햇살을 고요하게 맞으며 흔들리는 그 순간, 발을 가지고 있는 제가 마치 나무처럼 지금 이곳에 뿌리내린 것은 아닌지...  왠지 제가 그냥 나무가 된 것 같은 환상이 황홀하게 들었습니다.

 

  그리움이 이 생의 길을 일으킨다면...

  기다림만이 이 생을 견디고 살게 하는 것은 아닐까요?

 

  당신은

  길 위에서 나무처럼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기다려본 적이 있으신지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