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나무를 봄
어둠 속을 걷던 나무들이
일제히 발걸음 멈추고 선
새벽
간신히 눈 뜬 햇살이
힘없는 눈물을 떨어뜨린다
어둠 속 가만히 누워
별을 꿈꾸던 사람들이
뚜벅뚜벅 하나 둘 걷는
봄
아침
햇살이 다독다독
나무의 몸을 어루만진다
따스하다
사람들이 바삐 걷는 길 위에
뿌리깊이 잠든 땅 속
나무의 캄캄한 꿈들이
푸르를 잎사귀를 흔든다
--- 사실 요 며칠은 입이 있어도 그 어떤 말을 하고 싶지도... 할 수도 없는 나날들이었습니다. 우울과 슬픔의 안개가 온 세상을 뿌옇게 흐려놓고는 도무지 개지 않을 것만 같은 날들이었습니다. 공중파 방송과 각종 인터넷 포털사이트, 온갖 SNS를 통해 말해지는 언어는 비애와 설움의 말들이었습니다. 도무지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의 참담한 저 비극적 인재 앞에서 아예 침묵 속으로 침잠한 몇몇 벗들도 보았지만, 어쩌면 침묵이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 많은 비애의 말들은 지금 쏟아내지 않으면 어쩌면 더 큰 아픔이 되어 우리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멍에와 상처를 무슨 화인처럼 남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들 저렇게 아프구나. 슬프구나. 그저 고개를 끄덕끄덕이며 서재에 앉아 눈을 감아 보기도 했습니다.
'중생이 아프면 보살이 아프다'는 유마경의 구절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네가 아프니 내가 아프다, 당신들이 아프니 우리들이 아프다 라는 그 공감과 연대의 정서가 지금 이 땅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들에게 절절하게 번지고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온종일 맥없이 기운 빠지고 열없이 멍하게 표정없이 무언가를 바라볼 수 밖에 없는 나날들이지만... 그래도 살아남은 자들은 살아남았기에... 잔인하고 먹먹하게 슬퍼도, 또 다가오는 하루하루의 일상을 살아낼 수 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쩌면 살아남은 자들은 비극에 침잠하고 비극에 갇혀 비극적으로 살아갈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저 비극의 참담함을 증언하고 기억해 내기 위해서라도 비극의 바깥으로 몸과 마음을 조금씩 내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와 같은 리듬으로 일상의 순간순간을 맞이하고 느끼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구요.
말을 하지 않으려 했는데... 말이 너무 많았네요. 여튼 저는 무기력한 몸과 마음을 잠시 일으켜 주말의 늦은 오후. 동네 뒷산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꽃 진 자리에 풀꽃들이 빼꼼히 무리지어 얼굴을 내밀고 저를 보고 있었습니다. 나무에게로 걸어가 제 팔이 닿는 만큼 나무를 안아 보기도 했습니다. 주름많은 나무의 살결을 제 손바닥으로 천천히 오래도록 쓰다듬어 보기도 했습니다. 언어라고는 모르는 나무가 제 불안하고 슬픈 마음을 다독다독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 제가 잠자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모든 인간의 잠든 깊은 밤과 새벽에 저 나무들은 한 자리에 머물렀던 발을 떼고 인간의 마을로 산책을 하러 올 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면서요...
너무 말이 많았습니다. 유구무언(有口無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