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밤하늘

바람개비를 달았나

 

지상에선

더 이상 굴리지 않는

그리움 못 박아

 

시린 바람에

맨살을 떨고 있나

 

모두가 잠들어버린

세상의 한 귀퉁이에서

 

입김을 불면

팔랑팔랑, 가슴

한가운데를 돌 것만 같은

 

아직은

바람을 마주 선 내 손을

기다리고 있을,

 

 

 

--- 모두가 잠든 것만 같은... 지상의 모든 것들이 눈 감고 잠들어 버린 것만 같은 밤.

  잠들지 못하는 몸과 마음을 이끌고 바깥에 나와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섬이라고 자신이 느껴질 때면

밀물듯이 밀려오는 쓸쓸함과 외로움에 덜덜 떨리던 마음

밤의 어둠처럼 너무나 어두워 지는 순간들이 뼈아프게 찾아오는 시간

 

  그럴 때 무겁게 내리 누르는 어둠 속에서

힘겹게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봅니다.

 

  멀리... 저 아스라이 멀리서 깜빡 깜빡이는 모습이 마치

'나도 여기서 이 어둠 속에서 이렇게 숨쉬고 있다' 라고 말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 소리없는 속삭임이 다독다독 위로를 건네는 것만 같아 따스하지 않습니까?!

 

  대학교 2학년 때... 이유없이 아프고 외롭던 시절

저는 깊은 밤 저 어둠 속의 별이 바람개비처럼 느껴졌었습니다.

어렸을 때의 바람 불던 들판... 그 부는 바람 속에서 팔랑팔랑 돌던

그 유년의 바람개비가 저렇게 하늘에 못 박혀 시린 바람에

맨살을 떨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깊고 깊어진 어둠 속에서 별을 올려다 보는 깊은 밤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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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수학능력시험

 

 

 

 

다섯 개 중에 고르시오.

무엇을?

 

삶은 객관식이 아니라 언제나 주관식이다

 

 

 

 

 

--- 몇 년째 고3 수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공강 시간 틈틈이 혹은 늦은 밤 자율학습 감독을 하면서 수업 준비를 하곤 합니다. 그러나 사실 말이 좋아 수업이고 수업 준비이지... 그저 5지선다 문제풀이일 뿐입니다.

  국가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는 우리의 교육방송... EBS가 대학입시와 직접적으로 높은 출제연계를 통해 공교육 정상화와 교육기회의 평등한 부여를 가져오겠다며 제작한... 정말 많이 저렴한 문제집을 교실에서 풀고 또 풀 뿐입니다. 예전의 고3 교실에서는 여러 사설출판사들의 문제집들이 그 다양함(?)을 뽐내며 그 위용을 제각각 드러내고 있었던 반면 지금 고3 교실에선 오로지 각 영역의 EBS 문제집만이 전국국를 천하통일한 별처럼 홀로 우뚝 빛나고 있다는 사실이 다를 뿐... 결국 문제 풀이는 문제풀이일 뿐입니다.

 

  여튼 저는 문제집을 펴고 어떻게 하면 이 문제의 가장 적절한 답을... 쓰는 것도 아니고 골라낼 것인지에 대해 강의하기 위해 고민합니다. 김수영 식으로 얘기한다면~ 정말 이건 좀스러운 고민일 뿐입니다. 어떤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지 않은 그런 작고 쪼잔한 고민! 그래서 시는 위험합니다. 시를 읽는 깊은 밤의 시간에 그런 대낮의 고민의 시간들을 떠올리면 마치 내가 카프카의 변신에 나오는 그레고리 잠자가 되어 버린 것만 같습니다. 그럴 때 오는 통증은 아픕니다. 아니 아프다기 보단 슬픕니다.

 

  누군가 정해 놓은 다섯 가지의 방향 중에 가장 적절한 것을 고르는 건...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선택일 순 있겠지요. 그러나 중요한 건 거기에는 가 없습니다. 지금 이곳의 사회가 에게 기대하고 욕망하는 어떤 지배적인 흐름이나 가치가 드러나 있을 뿐.

  삶의 방향에는 사실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방향으로 가겠다고 결심하고 결정하는 는 절대적으로 중요하겠지요.

 

  저는 제가 만나는 어린 고3 벗들이 시를 읽고 소설을 읽고 철학을 궁구하고 문화를 누리며 지금 자기가 선 자리에서 만나는 여러 만남의 순간들을 귀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살아감을 통해 결국 자기 삶의 텍스트를 인문적으로 풍요롭게 가꾸기를 소망합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그래도 여지껏 선생이란 이름으로 아직은 교단에 서 있는 저같은 사람의 수업이 바뀌어야겠지요.

 

  나의 고3 어린 벗들!

아무리 시험이 그대들을 시험에 들게 하더라도...

시험이 삶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마음 단단히 먹으시기를~!

 

명심하세요.

이 사회가 혹은 설령 그대들의 부모나 선생님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 누군가가 손가락을 들어 저기야~ 라고 가리키는 곳을 믿지 마십시오.

당신들 자신이 땀흘려 궁구하고 찾아낸 삶의 무늬와 방향만을 믿으십시오.

 

삶은 결코 객관식이 아니라

언제나 주관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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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끼호테

 

 

 

  풀어진 넥타이를, 할딱거리는 혓바닥처럼 늘어뜨리고 어김없이

  집으로 간다 사막은 아니지만, 곳곳에 넘치는 오아시스가

  옷을 벗으며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간판 사이로, 그 흔한 말

  한 마디 없이, 비루먹어 털털거리는 303번 버스를 타고 덜컹거리는

  손잡이처럼 한없이 흔들리며, 창과 투구도 없이 하루종일

  중심을 못잡고 흔들리다, 여기 치이고 이리 채이고 저리 밟히며, 그 흔한

  돌멩이 하나 던져 보지 못하고, 그 흔한 주먹 한 방 날려보지도 못한 채 몇 번씩

  낙마했던 하루를 되새김질하며 잠시, 앞에 앉은 여자의 올이 빠진 스타킹과

  말굽처럼 솟은 하이힐을 관음하다, 명료하고 건조한 여인의, 안내 방송에 화들짝 놀라

  내린다, 하수도 냄새가 코를 찌르는, 가로등이 고사목처럼 다닥다닥 붙박힌

  라 만차의 골목 골목을 지나, 점멸을 멈춘, 신호등이 있는 붉은 시장을 거쳐

  헐떡거리는 숨을 고르며 옥탑에 매달려 잠시, 달빛 아래 숨을 고르며 매만진다,

  닳고 닳아 더 이상 비밀을 간직하지 못한 열쇠를 꺼내고, 잠시 생각한다 저

  안에 가라앉은 먼지처럼 하루종일 기다렸을 안온을, 고요한 일상을, 철커덕

 

  잠시 놀란 어둠이 맨 얼굴로 이빨을 드러내다, 망설인다, 스위치를 눌러도

  피어나지 않는 별빛처럼 대답없는 형광등, 잠시 당황하다 여지껏 켜본 적이 없는

  촛불에 불을 당긴다 둥근 알을 뿜은 낙타처럼 촛불은

  끔벅끔벅 꿈을 꾸고 그 앞에서 나는

  오래 전에 읽었고 아직까지 못 읽은

  돈끼호테를 펼친다

 

  오늘밤도 이러다 잠들 것이다

 

 

 

 

--- 성경 다음으로 전 세계에서 많이 번역되었고, 널리 읽혔다는 소설이 바로 스페인의 작가 세르반테스가 쓴 돈끼호테입니다. 대학교 3학년 때 '창비'에서 심혈을 기울여 선보인 완역판을 구입하고는... 틈틈이 읽었습니다. 지금껏 읽어왔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다 못 읽었습니다.

 

  '돈끼호테'는 그저, 철지난 기사도 소설에 미친 중늙은이가 옛기사 복장을 하고 비루먹은 말과 낡은 갑옷과 투구를 걸치고 무용 아닌 무용담을 펼치는 내용이라고만 생각하는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 소설은 우리에게 진정 미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묻는 역설적인 텍스트입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이 무엇에 미쳐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면 그 의미는 분명히 드러나겠지요.

  무엇에 미쳐 사십니까?

  과연 무엇에 미쳐 가슴뛰는 삶을 살고 계십니까? 

  돈입니까?  아니 무슨 그런 세속적이고 천박한 말이냐구요?

  그러나 다시 묻습니다.

  돈입니까?  아파트 평수입니까? 

  좀 더 화려하고 세련되고 편한 자동차입니까? 

  행여 골프같은 우아한 운동에 미치신 건 아닙니까?

 

  '돈끼호테'가 미친 가치는, 우스꽝스럽고 다소 허황된 모습과 행위로 그려지고 있지만... 어쩌면 약자에 대한 사랑과 연민, 모두가 철지나고 아니라고 말하는 그런 자신만의 꿈과 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들은 어쩌면 이 바쁘고 빠르고 세련되게만 흘러가는 숨가쁜 자본과 도시의 삶에서는 너무나 쉽게 잊혀지고 지워지는 본질적인 가치들일 겁니다. 

 

  저는 그런 '돈끼호테'가 좋아서 이 시를... 오래 전 어느 깊은 밤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일필휘지로 갈겨 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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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동 철길

 

 

 

덜컹거릴 때 

하던 일도 사는 일도 사랑하는 일도

대책없이 흔들려

훌쩍 어딘가로 가고만 싶을 때

가고 싶어도 

어디 멀리 떠날 수조차 없을 때

여기로 오라

 

무언가를 위해 어딘가로 향하던

모든 분주한 발걸음은 하루쯤 거두고

전철을 타고, 서툰 한 줄의 고백이 적힌

옛노트를 읽으며

여기로 오라

 

개찰구는 없다

만나고 헤어지며 손 흔드는

그 흔한 역사도 플랫폼도 없다

오지 않는

가지 않는 기차를 기다릴 필요도 없다

 

철로가 보이면 시작되는 길

철로를 따라 철로가 되어 걸으면 된다

 

그리움으로 일어서는 왼 편의 삶과

기다림으로 세운 오른 편의 사랑

 

만나지 않아도

길은 뻗어 있다

만나지 못해도

길은 길을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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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닦아 줄까

 

왜 나는

늘 멀리서

 

흐느껴 무너지는 저

어깨가, 물처럼 출렁이는 저

뒷모습이

 

아직도 아픈가

 

다가가 만지지도 못하고

소리없이 흘러 떠나지도 못하고

처마 밑에서 기껏 줄담배나 피우며

 

침묵하는 것만으로는

너를 잡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

잡아도 모래처럼 부스러져

오랜 시간으로 흘러내릴 것을 알면서도

 

왜 나는

늘 창가에 서성이며

유리를 때리는 저 신음 소리가

 

아직도 아픈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알몸으로, 아무도 서성이지 않는

거리에 나가

 

너와 하나가 되지도 못하면서

너와 소리내 울지도 못하면서

 

 

 

--- 어제는 너무나 서운하게 비가 내렸었지요. 새벽에 다소 추운 한기를 느끼며 일어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무언가가 누군가가 제 방 서재의 유리를 두드렸기 때문입니다. 아니 두드렸다는 말은 무언지 모르게 부족하군요. 무언가가 누군가가... 제 가슴을 아프게 치듯 유리를 때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종채가 종을 치면 울림소리가 울리듯 유리를 때리는 물기어린 손들에 의해 종소리가 울리는 듯도 했습니다. 유리창을 열어 보았습니다. 난데없이 강한 바람이 물기를 흠뻑 머금고 방 안으로 제 안으로 불어 오더군요.

 

  제 메마른 손을 밖으로 뻗어 보았습니다. 손바닥을 하늘로 내어밀듯이... 건조하게 새겨진 지문과 손금 위로 빗방울들이 똑똑 떨어져 번지더군요. 차갑고 정결한 느낌의 눈물이 제 손바닥에 번져 퍼지는 것 같았습니다.

 

  시간은 모든 세월의 아픔을 무디고 흐리게 하기도 하지만, 도저히 도무지 잊을 수 없는 추억이란 것도 분명 존재하기에 시간은 영원한 치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나와 너가 합일을 꿈꾸는 소망이지요. 내가 완전히 무화되어 너의 몸과 영혼의 영토로 스미고 번져 동화되고자 하는 욕망이지요. 그러나 그 합일이란 영원히 유예되고 지연되는 욕망일 수 밖에요. 홀로 선 단독자로서의 나 와 너 는 하나가 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욕망은 욕망할 수 있을 때만 욕망이라는 말은 그래서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래도 나와 너는 서로의 눈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서로의 눈동자에서 흘러내리는 빗물을 각자의 손수건으로 닦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니 '눈물을 닦아 줄까' 란 말은 사랑의 은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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