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
다섯 개 중에 고르시오.
무엇을?
삶은 객관식이 아니라 언제나 주관식이다
--- 몇 년째 고3 수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공강 시간 틈틈이 혹은 늦은 밤 자율학습 감독을 하면서 수업 준비를 하곤 합니다. 그러나 사실 말이 좋아 수업이고 수업 준비이지... 그저 5지선다 문제풀이일 뿐입니다.
국가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는 우리의 교육방송... 그 EBS가 대학입시와 직접적으로 높은 출제연계를 통해 공교육 정상화와 교육기회의 평등한 부여를 가져오겠다며 제작한... 정말 많이 저렴한 문제집을 교실에서 풀고 또 풀 뿐입니다. 예전의 고3 교실에서는 여러 사설출판사들의 문제집들이 그 다양함(?)을 뽐내며 그 위용을 제각각 드러내고 있었던 반면 지금 고3 교실에선 오로지 각 영역의 EBS 문제집만이 전국국를 천하통일한 별처럼 홀로 우뚝 빛나고 있다는 사실이 다를 뿐... 결국 문제 풀이는 문제풀이일 뿐입니다.
여튼 저는 문제집을 펴고 어떻게 하면 이 문제의 가장 적절한 답을... 쓰는 것도 아니고 골라낼 것인지에 대해 강의하기 위해 고민합니다. 김수영 식으로 얘기한다면~ 정말 이건 좀스러운 고민일 뿐입니다. 어떤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지 않은 그런 작고 쪼잔한 고민! 그래서 시는 위험합니다. 시를 읽는 깊은 밤의 시간에 그런 대낮의 고민의 시간들을 떠올리면 마치 내가 카프카의 변신에 나오는 그레고리 잠자가 되어 버린 것만 같습니다. 그럴 때 오는 통증은 아픕니다. 아니 아프다기 보단 슬픕니다.
누군가 정해 놓은 다섯 가지의 방향 중에 가장 적절한 것을 고르는 건...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선택일 순 있겠지요. 그러나 중요한 건 거기에는 ‘나’가 없습니다. 지금 이곳의 사회가 ‘나’에게 기대하고 욕망하는 어떤 지배적인 흐름이나 가치가 드러나 있을 뿐.
삶의 방향에는 사실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방향으로 가겠다고 결심하고 결정하는 ‘나’는 절대적으로 중요하겠지요.
저는 제가 만나는 어린 고3 벗들이 시를 읽고 소설을 읽고 철학을 궁구하고 문화를 누리며 지금 자기가 선 자리에서 만나는 여러 만남의 순간들을 귀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살아감을 통해 결국 자기 삶의 텍스트를 인문적으로 풍요롭게 가꾸기를 소망합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그래도 여지껏 ‘선생’이란 이름으로 아직은 교단에 서 있는 저같은 사람의 수업이 바뀌어야겠지요.
나의 고3 어린 벗들!
아무리 시험이 그대들을 시험에 들게 하더라도...
시험이 삶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마음 단단히 먹으시기를~!
명심하세요.
이 사회가 혹은 설령 그대들의 부모나 선생님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 누군가가 손가락을 들어 저기야~ 라고 가리키는 곳을 믿지 마십시오.
당신들 자신이 땀흘려 궁구하고 찾아낸 삶의 무늬와 방향만을 믿으십시오.
삶은 결코 객관식이 아니라
언제나 주관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