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되어 있는 생각은, 쾅쾅 벽에 못박힌 생각은
위험하다.
빼어내거나 뒤집어 보거나 한 번쯤 굴려서 움직이게도
할 수 없는 그런 생각이란 녹슬거나 썩기 마련이다.

언젠가 부패하게 된다.
자신을 둘러싼 사물과 사람들을 바라보고 구성하는
그대의 생각이 딱딱하게 굳어져갈 때

썩어가는 그 고정
관념에 소금 한 번
팍팍 쳐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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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매몰되어 지나온 길을 더듬지 못하고
가뿐 숨을 헐떡일 때마다 잃어버린, 가슴 깊이 묻어버린
말들을 퍼올려 본다

생기를 잃은 말들이 하나 둘 끄집어 올라 올 때 그 중
가장 참담하고 빛나는 말.

 

한 때는 빛나는 갈기를 휘날리며 별이 떠 있는 밤하늘로
힘차게 나를 날아오르게 하던, 한 때는 정직하고 굳건한
다리로 땅을 차올라 이곳이 아닌 저곳으로 나를 태워 달렸던,
한 때는 사막의 회오리 안에서 눈물 흘리던 내 무릎을 일으켜 세웠던

저 말! - 부끄러움

뒤돌아온 길을 돌아보기가 무서워진 나날들이 이어지고,

불안이 내 영혼을 파먹어 들어가고, 주변이 온통 사각의 링처럼 느껴지는
지금!

한 때는 따뜻했던 한 때는 맑았던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나직이 불러보고 싶다. 메말라져 가는 마음을 쿵쿵 거리며
달려 오는 저 아름다운 말!

부끄러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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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한유는 시인을 가리켜
'잘 우는 능력'을 가진 존재라고 말했다.
그 어떤 수식어보다
'시인'에 대한 적절한 비유가 아닐까!

울음은 슬픔에 대한 민감한 촉수로 늘 젖어 있는
영혼의 손길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이
물화(物化)되어 가는 세상에서 울었거나 울고 있거나
앞으로 울지 않을 자가 누가 있겠나!

슬픔에 절망하지 않기 위해서 '잘 우는' 일은
얼마나 아름다운 극복인가...

시가 언어로 빚어낸 눈물이기 하지만, 그 눈물은
사람들의 가슴으로 흘러 들어

상처입은 영혼을 치유하는 맑은
울음으로 소리없이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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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에게 폐인이라고 말했다.
나는 자꾸만 방싯방싯 웃었다. 그거 참 좋은 말이군요.

하지만, 나는 아직 '폐인'이 아니라고 말했다.
폐인... 폐인... 자꾸만 발음하다 보면 패인(PAIN)하고 소리내게 된다.

폐인은 내게 PAIN이다. 폐인! - 아, 고통
고통을 민감하게 감지하는 자!

폐인!

'고통'을 민감하게 느끼는 사람은 결코 남을 해치지 못할 것이다.
'고통'을 가슴으로 느끼는 자는 남을 '고통'으로써가 아니라
'사랑'으로써 대하는 사람일 것이다. 결국, '고통'을 민감하게 느끼는 자는
남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자기의 아픔으로 받아들이는 열린 사람일
것이다.

나는 여지껏 내 '고통'만을 예민하게 감지해왔던 사람이다. 그래서

타자의 '고통'에 대해서 조금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못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나의 '고통'으로 남에게 상처를 주었던 자이다.

그러니 내가 어찌 폐인이 될 수 있겠나!

나도 폐인이 되고 싶다! 아,

아름다운 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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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 무렵의 연가戀歌

 

   

 

저물 무렵

누군가가 떠난 자리

누군가는 남아

 

너를

어딘가에 있을

방문을 닫은 채 소리없이 울고 있는 너를

온전히 생각하는 시간

아니

뼈를 관통하는 통증으로 오롯이 새겨야만 하는 시간

 

부드러운 바람의 여린 손목에도

꽃은 이미 지고

퍼렇게 멍든 잎들이 아프다 아프다고

소리없이 흔들리는 시간

 

떨어진 입들을 쓸쓸히 담으며

마음에 입맞춤하는 시간

멀리 저 먼 곳에 있을 파묻고 우는 네 어깨를

긴 손가락을 들어

다독 다독 해주고만 싶은 시간

 

어둑어둑 아무리 어두워져도

토닥 토닥 괜찮다고 말없이 안아주고 싶은 시간

 

먼 곳에

제 아무리 멀리 있어도

뜨는 별의 그리움으로

한 백 년은 깊어지는 시간

 

한없이 어두워지고 어두워져도

서러움이 나를 이길 수 없는 시간

파묻히는 어둠으로 영원히 사라져

밤의 미아로 떠돈다 해도

별빛의 눈동자

너의 바탕으로 영원히 저물겠다는 다짐

 

누군가가 떠난 자리

누군가는 여기에 남아

 

너를

너만을 연주한

너의 노래를 오래도록 듣는

 

 

 

 

--- 해가 질 때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하루가 또 하나의 일생이라면... 그렇게 환하게 세상을 비추던 태양도 어둠이 저벅저벅 다가오는 시간이 되면 어쩔 수 없이 제 몸을 바스러 뜨리며 사라질 수 밖에 없으니까요.

 

  삶도 사랑도 그렇습니다. 인간의 몸을 받은 존재이기에 영혼이 깃든 육체는 시간이라는 숙명 앞에서 조금씩 조금씩 소멸해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언젠가 끝날 수 밖에 없는 육체와 영혼을 가지고 한 생을 살아가며 사랑하는 일은 운명적으로 서럽고 슬픈 일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일은 기쁨과 환희의 순간보다는 외로움과 아픔의 순간들이 많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저물 무렵 누군가를 그리고 보고파 하고 사랑하는 일은 그 사랑하는 사람의 소멸의 운명과 슬픔, 지독한 외로움과 그늘을 사랑하는 일일 수 밖에 없습니다.

 

  저물 무렵 누군가를 뼈저리게 그리워 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해가 질 때 아프다고 너무나 아프다고 말했던 사람이 당신 곁에 있었거나 있으신가요?

 

  지금 제 글을 읽고 계신 당신이 그렇게

저물 무렵 뼈아픈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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