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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야상곡 ㅣ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안토니오 타부키 지음, 박상진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6월
평점 :
이국적이고 묘한 향수를 느끼게 하는 소설이다. 간혹 urban legend (도시 전설, 혹은 도시 괴담)을 읽고 있는 기분이 드는 것은 아마도 실종되는 사람들, 매춘에 이용되는 어린 아이들, 식수 위생문제, 열악한 의료 환경, 불가촉천민 등, 흔히들 [인도]라고 하면 떠올릴 만할 불편한 진실들이 언급된 탓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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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있어 인도는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보기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어린 시절 내게 인도는 소공녀 세라가 그리워하던 고향이었고, 아버지를 잃은 세라에게 따뜻한 손길을 건네 준 터번을 두른 람다스씨와 그의 원숭이를 떠올리게 하는 나라였다. 지금은 평생 가보고 싶지 않은 무서운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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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내용은 극중화자인 ‘나‘의 인도 여행기라고 해두자.
소설이지만 실제 지명과 실제 있었던 장소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해서 마치 실제로 있었던 일을 쓴 것 같은 느낌을 연출했고, 예를 들어 극중화자인 [내]가 머문 타지마할 호텔은 (지금은 타지마할 팰리스라고 이름이 변경되었지만) 이 소설이 출간된 80년대에는 타지마할 인터콘티넨털이었고 그 당시 실제로 ([내]가 진토닉를 마시며 편지를 썼던) 아폴로 바가 있었던 것으로 (인터넷을 뒤져 보니 그렇게) 추정된다. 그리고 80년대의 인도지명이 그대로 사용되었다. (봄베이는 1995년부터 뭄바이로 정식명칭이 바뀌었다. 원래는 힌두여신 뭄바에서 유래된 뭄바이가 인도식 이름이고 봄베이는 식민지시절 영국이 갖다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번역에서도 이국적인 분위기를 잘 전달하기 위해 애를 쓴 흔적이 보였다. 탄제린으로 만든 리큐어라고 옮기고 주석을 달았는데 나도 그 편이 훨씬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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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를 따라가며 읽었다기보다는 문체의 몽환적인 분위기에 이끌려, 혹은 사로잡혀, 읽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불안의 서를 읽으면서 한동안 페르난두 페소아에 푹 빠져 있었는데 안토니오 타부키 역시 페소아의 열성적인 팬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왜 타부키의 글이 처음부터 나와 코드가 맞았는지 의문이 풀렸다. 페소아를 먼저 만나고 타부키를 만나는 사람도 있고 그 반대인 경우도 있겠지만 둘 중 어느 한쪽이라도 좋았다면 다른 한쪽을 안 좋아할 순 없을 것 같다. 다음 읽을 작품으로는 레퀴엠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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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완벽했고 인도는 앞으로도 멀리서 카레만 즐기는 걸로.
나는 아폴로 바로 향했다. 이제 막 나타나기 시작한 저녁 불빛들을 바라보며 테라스 창가 탁자 앞에 앉았다. 진토닉을 두 잔 마시자 기분이좋아져서 이사벨에게 편지를 썼다. 긴 편지를 단숨에, 집중적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며 써내려갔다. 그 머나먼 나날들, 나의 여행, 그리고 나의 느낌들이 시간과 함께 어떻게 다시 피어나는지에 대해 말했다. 말하지 않을 작정이었던 얘기들까지 했다. 편지를 다시 읽어봤을 때, 빈속에 술을 들이부은 사람의 경솔한 흥분이 젖어들어 있다는 걸 알았고, 사실은 마그다를 염두에 두고 쓴 편지임을 깨달았다. 처음에 ‘이사벨에게’라고 썼어도, 그건 분명 마그다에게 쓴 것이었다. 나는 편지를 꾸겨서 재떨이에 던져넣었다. - P39
"그 안에서 여행을 하는 게 아닐까요." 내가 말했다. 그가 말을 꺼낸 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을 것이다. 나는 아스라한 것을 생각하며 멍하니 있었다. 잠시 졸았는지도 모르겠다. 너무나 피곤했다. 그가 말했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육체 말입니다. 여행가방 같은 게 아닐까요. 우리를 실어나르는 가방 말입니다." - P42
"인간의 육체는 그저 외양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 그가 말했다. "그것은 우리의 실재를 가리고, 우리의 빛이나 우리의 그림자를 덧칠해버립니다." - P56
나도 그 사람이 날 찾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어요. 우리 둘 다 정확히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요. 서로를 바라보기만 하자는 거지요." -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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