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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교과서 간디 - 사랑이 있는 곳에 삶이 있다 ㅣ 플라톤아카데미 인생교과서 시리즈 6
류성민.류경희 지음 / 21세기북스 / 2016년 1월
평점 :
인생교과서 시리즈 6번책, 간디.
머리 속 <간디>에 대한 생각은 비폭력 평화주의 정도 뿐이 없는 것 같습니다.
두깨가 제법되지만, 28가지의 질문과 답을 읽어보며 마음속 평온함을 가지게 되는 책입니다.
간디는 어린 시절 동네 친구와 함께 육고기를 먹어보기도 하고
담배를 펴보기도 했던, 우리같은 일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지도자로서 우리에게 존경을 받게 되는 이유는
그가 자신의 과오에 반성을 하고, 무엇이 잘못이었던 것인지 생각하며
우리 각각의 인생을 '진리'에 궁극적 목적을 두고 바르게 나아가도록
꺠달음을 나누기에 훌륭한 지도자로 다가오게 되지요.
더불어 그는 육체적인 노동과 정신적인 수양을 통해
'진리'라는 것이 현재 우리에게 행동으로 다가와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필요한 만큼 소비하고 필요한 만큼 누리도록
욕심을 절제하고 생활을 정제하는 모습 또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지요.
신체와 정신, 영혼을 함께 발전시키는 것이 교육이다.
교육은 목표가 아닌 훌륭한 인격을 완성하는 수단일 뿐이라 합니다.
영국에 의해 인도가 차별받던 시기,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유색인종이 멸시당하던 시기,
그리고 더불어 카스트제도로 계급적으로 사람이 분리되던 시기이건만,
간디는 모두가 귀한 존재라는 것을 강조하며
심지어 여성교육에 관해서도 주장하던 지도자였습니다.
실천하는 지성이며 귀감이 되던 위대한 지도자였던 그는
물론 교육 자체만으로 인격이 닦아진 것은 아니겠지만,
그는 단합된 힘으로 서로를 아끼는 인도가 될 수 있도록
영적인 지도자 뿐 아니라, 민족의 지도자였다 싶습니다.
게다가 그의 교육에 대한 주장은
영어가 아닌 민족언어를 주 언어로 삼고,
글을 위주로가 아닌 말을 통하고 손을 이용하는
자연에서 인류가 유대성을 가진 배움을 득하던 방식을 주장하니,
효율성을 위해 채근하는 우리시대의 교육을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싶습니다.
지금 당장의 효율성이 아닌, 긴 시간을 볼 때 의미있고 유효한 교육을 추구해야 할 터이니 말이죠.
다양한 분야에서 간디에게 다양한 질문들을 해봤습니다.
전문가들이 그의 철학에 근거하여 우리에게 인생의 철학을 전해주는데,
경제에 관하여 간디의 사상은 공산주의와 비슷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다 합니다.
'모두의 복지'를 향한 진실과 정의의 경제원리
물론, '모두'라고 한다면 자칫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가 이야기하는 원리는 '효율성'추구에 따른 생명의 온기가 없는 자본주의에 반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사상적인 면을 갖다 붙여 자본주의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빈부의 격차로 누군가는 넘치게 잘 살고 누군가는 삶이 어려운 점이라던가,
자연을 남용하며 욕심부리는 행태에 대해 주의하자는 철학입니다.
먹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닌, 살기위해 먹는 것이고
그리고 살아있는 우리가 이 시대에 바르게 살자는 것이 그의 철학이니 말이죠.
빨라야 하고, 다른이를 누르고 내가 앞서야 한다는
경쟁심과 욕심에 대한 자제를 당부하는 경제원리인 것입니다.
그 마을에서 소소하게 일하여 먹고 살 수 있는,
노동의 기여를 통해 모두가 살아갈 수 있는 경제를 꿈꾸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의 철학들을 읽어보고 생각해보며,
결국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하는 결론적인 질문은,
간디가 지금 우리나라에 온다면 무슨 말을 할까?
그는 힌두교와 이슬람교가 격돌하는 인도에 있었습니다.
서로를 미워하고 폭력을 행사해 공격하는 전쟁통에
그는 서로를 이해하고 비폭력으로 해결할 수 있기를 기원했지요.
그가 힌두교의 배경을 가진 지도자였다 하지만
종교는 결국 '진리'라는 것으로 통하기 마련이라는 믿음을 두고
종교의 벽을 두지 않고 이해하고 사랑했습니다.
결국 인간은 선한면을 타고 났다는 믿음과 함께 말이죠.
그가 목숨은 신께 있다며 해야할 일을 하며 행하던 행보들.
간디의 사탸그라하 운동은 우리나라에 있어서 특히 본받을 점이 많습니다.
사회 갈등지수가 상당한 우리는 분노가 차 있기도 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해치운다는 식의 폭력적인 해결방식이 꽤 깔려진 것도 같습니다.
주장하는 바가 옳다 하더라도, 선동하고 폭력으로 치닫는 해결방식에
주장의 의의가 퇴색되고 다시 비난을 받게 되기도 하고요.
답답함에 폭력성이 발동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럼에도 수단조차도 납득가능한 방식으로 대응하였으면 합니다.
커다란 사회운동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간디의 사타그라하 운동의 본질을 생각하며
의미있는 현재를 보내야겠다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