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과 열정사이 - Rosso 냉정과 열정 사이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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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사이, Rosso, 에쿠니 가오리>

 

지금과 다르고 달랐던 신입시절, 두 명의 선배가 있었다.

한 명은 언제나 상냥하고 친절해 상사와 후배 모두의 인정과 사랑을 받았다. 미소가 떠나지 않는 얼굴, 깔끔한 일처리, 훤칠한 키, 공손한 말투. 신입직원들은 모두 그녀를 닮고 싶어했을 것이다.

 

또 다른 한명. 예쁜 얼굴, 가끔 상냥하고 가끔 친절한, 공손과 까칠 어디쯤에 있는 말투, 여성의 얼굴과 직원 얼굴 어디쯤에 있는 표정.

입사동기 모두는 언제나 상냥한 선배를 따랐지만, 난 가끔 상냥한 선배를 따랐다.

남들과 다르고 싶어서일까, 언제나 상냥하고 친절하지만 그 이면을 의심해서일까, 가끔 상냥한 게 진실한 인간의 모습이라 여겨서일까,  언제나 상냥하지 못한 스스로 때문일까.

 

지금도 가끔 상냥한 그녀들이 좋다. 어쩜 계속 까칠한 그녀들이 좋다. 타인이 침범할 수 없는 그만의 세계를 가진, 모든 사람에게 굳이 상냥하지 않아도 되는 (상냥과 예의는 별개의 일이다) 그녀들이 좋다. 자신에게 도도하고 세상에 겸손한 그녀들이 좋다.

그런 그녀들이라면, 외롭다고 스스로 허물어지지 않을 것만 같다.

 

그런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8년전 예기치 않은 오해로 연인과 헤어졌다. 그 연인과 헤어진 후 그녀의 마음은 다른 연애를 한 적이 없다.

그저 생활, 하고 있다. 10년전 헤어진 연인과 한 약속 아닌 약속을 생각하며, 그를 생각하며.

 

"하지만 나는 마빈이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조그만 생선을 포크로 한 번에 찍어 입으로 옮기면서, 때로 포도주를 한입 머금고, 적당히 농담도 섞어 가면서, 거러나 평소의 마빈과는 다르다.

“이제 파스타 먹을래요?”

대답은 알고 있지만, 일단 물어 보았다.

“아니, 많이 먹었어.”

칼로리가 넘을 것 같아서, 라고 말하고 마빈은 장난스런 표정을 짓는다.

냉정하고 온화하고 정확한 판단력을 지닌 마빈이 불안해하고 있다. 나는 그런 마빈을 보면서 가슴 아파한다. 하지만 마빈은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나는 그렇다는 것을 안다.

“그럼 과일은?”

침실에서 먹지, 라고 마빈은 말하겠지. 이런 날이면 마빈은 반드시 나를 안으려고 한다. 마치 다른 방법으로는 나를 확인할 수 없다는 듯, 아무 데도 안 가니까 걱정 말아요, 하지만 나는 그 말을 해 줄 수가 없다."

 

이 소설은 한 제목의 소설을 남,여 작가가(에쿠니 가오리, 츠지 히토나리) 2년에 걸쳐 실제로 연애하는 마음으로 써 내려간 릴레이 러브 스토리다. 10년 후 재회의 약속을 가슴에 묻어 둔 쥰세이와 아오이의 이야기다. 스쳐지나가듯 말한 약속, 그 약속을 잊지 못하는 헤어진 연인, 그리고 쥰세이와 아오이 입장에서 바통 주고받듯 써 내려간 작가.

 

과거에아오이는 녹색과 파랑에서 보라색까지를 두루 일컫는 말이었다 한다. 차가움, 냉정의 이름을 가진 아오이.

 

"사람은, 그 사람의 인생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 있는 장소에, 인생이 있다."

라고 말하는 아오이와

 

"하지만 알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내가 끼여들 수 없는 장소에서, 이 사람은 이미 새로운 인생을 쌓아 가고 있다."

라고 말하는 쥰세이.

 

, 알듯 모를듯 <냉정과 열정사이, Rosso> 아오이 매력에 푹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다. 

그녀가, 좋다.

 

 

읽은 날  2011. 9. 24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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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 실크 하우스의 비밀 앤터니 호로비츠 셜록 홈즈
앤터니 호로비츠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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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실크 하우스의 비밀, 앤터니 호로비츠>

 

영화를(어린이 영화 외) 보는 일은 무척 소원한 일이다. 두 아이가 장성해 부모 외출을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 지금처럼 가끔 케이블영화 보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셜록 홈즈 : 그림자 게임> 덕에 이 책을 심심치않게 보게 됐다.

이 책은 코난 도일 재단에서 공식 인정한 첫 번째 셜록 홈즈 소설이다. 그동안 '딕슨 카'나 '스티븐 킹'과 같은 유수의 작가들이 셜록 홈즈가 등장하는 작품을 써서 코난 도일의 공백을 메우려는 시도를 했지만, 코난 도일재단에 의해 공식 셜록 홈즈 소설의 작가로 선정된 것은 아서 코난 도일 경 사후 81년 만에 앤터니 호로비츠가 처음이다.

그가 공식 <셜록 홈즈> 작가로 임명된 후 8년 동안 방대한 자료 조사와 인터뷰, 집필을 거쳐 나온 작품인데, 원전 느낌을 살렸다는 호평만큼 영국의 베스트셀러를 석권했다.

 

그 동안 소설분야 독서는 베스트셀러 위주였다. 세간에 회자되는 작품을 챙기는 정도의 독서라 추리소설 역시 약하다. 읽은 추리소설은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용의자 X의 헌신>이 전부이고 코난 도일의 셜록홈즈를 읽어본 적도 없지만, 그 책들과 격이 다른 느낌을 받았다.

 

이 책 <셜록 홈즈-실크 하우스의 비밀> 의 화자는 셜록 홈즈가 아니다. 그의 절친인 왓슨박사인데, 남의 말 하듯 툭툭 내뱉는(애정 듬뿍 담긴) 말투로 홈즈는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걸출한 명사로 그려진다. 홈즈는 절친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예리한 시선을 뽐낸다.

 

“알겠습니다. 존슨 씨. 교육 문제는 말투를 들으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부분이죠. 그리고 들어오면서 보니 플로베르가 조르주 상드에게 보낸 서간집을 원서로 읽고 계시더군요. 아이에게 그 정도 수준의 불어를 가르칠 수 있었다니 유복한 집안일 수밖에요. 피아노는 상당히 오랫동안 치셨죠?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은 누가 봐도 한눈에 알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일을 하고 있다니 엄청난 파국이 들이닥쳐 부와 명예를 순식간에 잃었다는 뜻이 되겠죠. 그 정도의 파국을 유발할 수 있는 일은 몇 가지 안 됩니다. 술, 마약, 그리고 투자 실패, 하지만 확률을 운운하고 손님을 비둘기에 빗대 말씀하셨죠. 비둘기는 초보 도박꾼을 가리킬 때 쓰이는 단어이니 그쪽 세계가 퍼뜩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보아하니 신경성 습관이 있으시더군요. 손을 오므렸다 폈다 하는, 주사위 테이블을 연상시키는 부분이죠.”
“복역을 한 것은 어찌 아셨습니까?”
“일명 까까머리라고 하는 죄수형 헤어스타일을 하고 계시잖습니까. 자르고 나서 약 8주 정도 기른 듯하니 9월에 석방이 되었다느 뜻이죠. 피부색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지난달이 유난히 따뜻하고 화창했는데, 그달에는 자유의 몸이었던 게 피부색을 통해 확연히 드러납니다. 양쪽 손목을 보면 수갑을 찼던 자국이 남아 있으니 수감 생활을 하는 동안 반항을 했다는 뜻이죠. 전당포 주인이 가장 흔히 저지르는 범죄가 장물 습득이고요. 이 가게로 말할 것 같으면 햇볕 때문에 빛이 바랜 쇼윈도의 책들이나 선반에 쌓인 먼지를 보면 장시간의 부재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 시계를 비롯해서 먼지 없이 깨끗한 물건들도 많으니 최근 들어 장사가 잘돼서 그만큼 추가가 됐다는 뜻이겠죠.”


평범하게 보이는 짧은 순간에 발휘되는 날카로운 추리력은 독자를 매료시킨다. 위의 존슨을 만난 전당포 묘사 부분 또한 다른 추리소설(그래봐야 겨우 2권)과 다름을 각인시킨다.

 

"지키지 못한 약속과 깨져 버린 희망의 상징 전당포! 모든 계층과 직업과 사회적 위치가 그 지저분한 쇼윈도에 전시되고, 수많은 사람의 편린들이 나비처럼 핀에 박혀 있는 이곳. 파란색 바탕에 빨간 공 세 개가 그려진 나무간판이 녹슨 체인으로 연결돼 머리 위에 걸려 있는데, 이 안의 그 어떤 것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한 번 잃어버린 물건은 두 번 다시 되찾을 수 없다는 것을 강조라도 하는 양 바람이 불어도 꿈쩍하지 않는다. 그 밑으로 '접시,보석, 옷, 모든 것을 담보로 돈을 빌려 드립니다'라고 적혀 있는데 과연 그런 것이, 알라딘이라도 동굴에서 이 많은 보물을 발견하지는 못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석류석 브로치와 은시계, 사기 컵과 꽃병, 펜 꽂이, 티스푼, 책들이 태엽 달린 병정이나 박제한 어치처럼 이질적인 물건들과 선반 위에서 자리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끌과 톱을 팔아 주말에 마실 맥주와 소시지를 충당한 직공은 누구였을까? 엄마 아빠가 먹을거리를 마련하느라 고군분투하는 동안 일요일 예배용 원피스 없이 지내야 했던 아니는 누구였을까? 이 쇼윈도는 인간의 추락을 단순히 전시하는 수준을 넘어 찬양했다."

 

셜록홈즈는 우연히 실크 리본의 경고를 받고 사건을 추적한다. 사건에 대한 왓슨박사의 서문을 보면 "여기서 공개하려는 사건이 너무 잔인하고 충격적이라 출간할 수가 없었다. 집필이 끝나면 원고를 봉투에 넣어… 금고에 넣어 달라고 할 것이다. 향후 100년 동안 봉투를 개봉하면 안 된다는 지시 사항도 첨부할 것이다. 나는 여러분에게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관점에서 그린 셜록 홈즈의 마지막 초상을 유품으로 남긴다."
충격적인 사건인만큼 그가, 그들이 받을 위협과 협박이 짐작되고 남는다.
목숨을 건 추적은 홈즈의 책임감에서 시작되는데,

 

“내가 아무 생각이나 배려 없이 베이커 가 특공대를 동원하기는 했으니까. 그 아이들을 내 앞에 일렬로 세워놓고 한두푼씩 나누어 주면 재미있었거든. 하지만 장난삼아 아이들을 사지로 내몬 적은 없었네. 위긴스와 로스와 나머지 아이들은 내게 무의미한 존재였지. 그들을 길거리로 내몬 이 사회에서 무의미한 존재로 간주했던 것처럼. 이 끔찍한 사건이 나로 인해 벌어진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건만.
자네 아들이나 내 아들이었다면 그 어린 것을 컴컴한 호텔 밖에 세워 둘 생각이나 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는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네. 그러려고 하다 목숨을 잃었고. 그것은 내가 책임을 져야 할 부분이지.”

 

작가의 8년에 걸친 집필기간만큼 뭐하나 버릴 것 없이 맞아 떨어지는 이야기와 호흡은 코난 도일의 셜록홈즈도 이러했을 거란 느낌을 갖게 한다. 코난 도일 재단의 평가가 그러하듯 이 책을 통해 81년만에 부활한 셜록 홈즈,를 만났다.

 


읽은 날  2012. 2. 9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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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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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 위화>

 

1960~70년의 중국 어느 마을. 어려서 부모를 잃고 삼촌에게 의지하던 가난한 촌부 허삼관은 허옥란을 만나 일락을 낳고 이락과 삼락을 낳으며 가정을 꾸린다.

 

가진 것이 몸뚱이 뿐인 허삼관은 피를 팔아 결혼을 하고,
타인의 아들로 밝혀진 일락이 벌인 일로 피를 팔아 보상금을 치르고,
유부녀에게 마음을 전하기 위해, 이락의 공장장 접대를 위해, 일락을 치료하기 위해 피를 판다.

 

가진 거라고는 뽑으면 다시 생겨나는 피인지라 한 번에 두 사발 (400㎖ 정도의 양) 밖에 팔지 못하면서도 피의 양을 늘이기 위해 고군분투 한다.

 

“우린 아침부터 아무것도 안 먹고 그저 물만 몇 사발 마셨을 뿐이오. 지금 또 몇 사발 마시고. 성안에 드어가서 또 몇 사발 들이켜고… 계속 마셔서 배가 아플 때까지, 이뿌리가 시큰시큰할 때까지… 물을 많이 마시면 몸속 피의 양도 늘어나기 때문이지. 물이 핏속으로 들어가서…”
“물이 핏속으로 들어가면, 피가 묽어지지 않을까요?”
“묽어지기야 하겠지. 하지만 그래야 피가 많아지지 않겠나. 그리고 지금 오줌을 누면 물 몇 사발 마신 게 다 허사가 된다네. 몸의 피도 줄어들고 말거야.”

 

피를 판다는 것이 몸 속의 힘과 온기를 팔아 버리는 일임을 알면서도 가난한 촌부가 선택할 수 있는 매혈 외엔 없다.

 

“일락이가 대장장이 방씨네 아들 머리를 박살 냈을 때 피를 팔러 갔었지. 그 임 뚱땡이 다리가 부러졌을 때도 피를 팔았고, 그런 뚱뚱한 여자를 위해서도 흔쾌히 피를 팔다니, 피가 땀처럼 덥다고 솟아나는 것도 아닌데… 식구들이 오십칠 일간 죽만 마셨다고 또 피를 팔았고, 앞으로 또 팔겠다는데….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고생을 어떻게 견디나… 이 고생은 언제야 끝이 나려나.”

 

이렇게 끝없는 고생 와중에 허삼관이 마지막으로 피를 팔러 가는 이야기는 못내 뭉클하다.

 

“제가 석 달 동안 피를 세 번 팔았거든요. 매번 두 사발씩 말입니다. 병원 사람들 말로는 사백 밀리리터라고 하대요. 그렇게 몸속의 힘을 싹 팔아버려서 몸에는 그저 온기만 남았는데, 그저께 린푸에서 두 사발을 팔고 오늘 또 두 사발을 팔았으니 온기마저도 다 팔아버린 셈이죠…”

 

나흘 후, 허삼관은 쑹린에 도착했다. 그때쯤 허삼관은 얼굴이 누렇게 뜨고 몸이 바짝 말라 사지에 힘이 없는 데다, 머리도 어질어질해 귓가에서 웽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뼈마디도 쑤시고, 두 다리는 걸을 때마다 뼈가 없는 듯 흐느적거렸다.
“자네 오줌이나 싸보고나서 얘길 하라고. 얼굴이 누렇게 떠 가지고 말야. 말할 때조차 그렇게 헐떡거리니 그 몸으로 피를 팔겠어? 자네야말로 얼른 가서 수혈 좀 받아야겠는걸.”

 

허삼관은 병원 밖으로 나와 바람 한 점 없는 길가 구석에 앉아 얼굴과 온몸에 햇볕을 쬐었다. 그러기를 두어 시간, 얼굴이 햇볕에 충분히 그을었다고 생각한 그는 몸을 일으켜 다시 병원으로 들어갔다. 방금 그를 내쫓았던 혈두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자네 피골이 상접해서 바람이 조금만 세게 불어도 날아가겠네만, 얼굴 혈색 하나는 참 좋군. 까무잡잡한 게 말이야. 그래, 얼마나 팔려나?”

 

어이없는 혈두에게 두 사발의 피를 팔고, 허삼관은 쇼크로 쓰러진다.  쑹린의 병원이 허삼관에게 700㎖ 피 값에 응급실 비용까지 청구하자, 허삼관은 의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제가 병원에 사백 밀리리터를 팔았고 병원에서 다시 저한테 칠백 밀리리터를 팔았잖아요. 제 피가 다시 돌아온 건 받겠지만 남의 피 삼백 밀리리터는 싫다구요. 돌려드릴 테니 가져가세요.

인생의 고비마다 피를 팔아 연명한 허삼관, 그도 이젠 아들 3형제가 번듯하게 자리 잡고 그럭 저럭 생활을 꾸리며 나이를 먹어간다.  한번도 거부할 생각조차 없었던 가장의 삶을 산 그가 이렇게 말하며 소설은 끝이 난다.

 

“여보, 내가 늙어서 앞으로는 피를 팔 수가 없다네. 내 피는 아무도 안 산다는 거야. 앞으로 집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1960~70년대 중국 서민의 삶이 <허삼관 매혈기>처럼고달펐으리라. 목숨을 담보로 피를 팔아 가족을 먹여 살렸을 수많은 필부필모들... 머리가 아닌,  피가 원래 있었던 것처럼 끊임없는 가족애와 가슴으로 느끼는 가장의 직무로 그들은 피를 팔았으리라. 태어나 받은 보살핌, 가르침 등 거창한 것과 상관 없이, 대지의 아들로 딸로 태어나 그 마음으로 그들은 자신을, 가족을 품었겠지.
어쩌면 대지(자연)의 아들과 딸인 수많은 이름 모를 그들에 의해 세상은 그나마 아름답다 (생각 될만큼) 유지되는 게 아닐까.

  

 

읽은 날  2009. 11. 1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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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소설 읽는 노인 열린책들 세계문학 23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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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소설 읽는 노인, 루이스 세풀베다>

 

이 책은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에서 저자의 이력과 제목이 주는 느낌에 끌려 읽게 됐다.

 

"루이스 세풀베다는 1949년 칠레 북부 오바예에서 태어났다. 그는 군사 정권하에서 반독재 반체제 운동에 참여하다 수감되었고, 결국 당시 많은 칠레 지식인들이 그러했듯이 오로지 목숨을 구하기 위해 피노체트의 나라에서 도망쳐야 했다. 수년 동안 그는 라틴아메리카를 여행하며 유네스코 기자 등으로 활동했고, 1980년 독일로 이주했다.
1989년 세풀베다는 살해당한 환경 운동가 치코 멘데스에게 바치는 소설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을 발표했다. 그리고 출간과 동시에 일약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라섰다. 독자를 끊임없이 긴장하게 하는 추리 소설적 기법과 <양키>로 대표되는, 자연과 삶을 파괴하는 세력들에 대한 적대감 등도 이후 작품들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들이며, 그의 이러한 작품들은 지금까지도 세계 수백만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노인은 소설을 읽는다. 그것도 연애 소설을. 어떤 사연이 있을까?
아마존 밀림 인디오족인 수아르 족과 헤어져 이제 노인이 된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프로아뇨'는 이제 자신이 늙어 간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글을 읽을 줄 안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부터 자신의 보금자리인 오두막에서 연애소설을 읽는다. 여러 분야의 책읽기를 시도했지만, 연애소설만큼 마음에 드는 게 없어 그는 책장이 닳도록 천천히 읽고 또 읽으면서 무료하고 적막한 나날을 보낸다.     

 

한 때 노인은 용맹한 수라르 족 인디오들의 절친이었다. 수라르 족 인디오들은 이렇게 말한다.

"사냥을 하지 않으면 뭘 하는데?"
"일을 하지. 해가 떠서 해가 질 때까지 말이야."
"저런 바보들 같으니라고. 다들 왜 그렇게 멍청하지?"

 

자연과 혼연일체인 수라르 족만의 문화 중 인상 깊은 것은 다음이었다.

 

"또한 그(안토니오)는 이제 '떠날 시간이 되었다'고 결정한 부락의 노인들을 위해 베푸는 고결한 의식에도 참여했다. 그들은 임종을 앞둔 노인이 치차 즙과 나테마 즙을 마시고 그 효과로 이미 예정된 내세의 문을 통과하는 동안 스르르 잠이 들면 그 육신을 부락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데려가서 온몸에 달콤한 종려나무 꿀을 바르고, 그다음 날 죽은 자로 하여금 저 세상에서 현명한 나비나 물고기나 동물로 다시 환생하길 축원하는 어넨트를 읊조리면서 밤사이에 개미들에 의해 완전하게 육탈이 된 하얀 분골을 수습했다."

 

그들의 형제이자 친한 친구였던 안토니오는 어.쩔. 수 없이 그들과 헤어지게 된다.

 

"그들은 그(안토니오)가 백인인 노다지꾼에게 용감하게 싸울 수 있는 기회를 준 다음 독화살로 끝장냈더라면 죽은 백인의 얼굴에 그 용기가 남아 누시뇨가 평온하게 눈을 감을 수 있었지만 총을 맞았기에 백인의 얼굴이 놀라움과 고통에 일그러져 저 세상으로 떠날 수 없다고 생각했고, 그로 인해 누시뇨의 영혼은 눈이 먼 앵무새로 날아다니다 나뭇가지에 부딪히거나 잠이 든 보아뱀의 꿈자리를 사납게 만들어서 그들의 사냥을 방해할 것으로 믿고 있었다. 결국 그는 자신과 수아르 족의 명예를 더렵혔을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친구 누시뇨에게 영원한 불행을 가져다주고 말았던 것이다.
수아르 족 인디오들은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의 카누를 밀어 준 뒤, 그의 모습이 멀리 사라지자 발자국을 지웠다."

 

어느 날 양키(외지인이자 밀렵꾼, 환경 파괴자)에게 친구 누시뇨가 급습을 당한다. 안토니오는 수라르 족 방식대로 독화살로 보복을 했어야 했는데, 잘못 하여 총으로 그를 사살하게 된다.  수아르 족의 명예를 더럽힌 그는 떠나야만 했다. 그들은 서로 얼싸안고 작별의 눈물을 흘렸다. 수아르족 인디오들은 먹을 것과 카누를 내주면서 앞으로 그를 반갑게 맞이할 수 없고, 그들의 부락에 들르는 것은 가능해도 그곳에 머물 수 없다고 말했다.

 

소설 <연애소설 읽는 노인> 의 내용은 이렇다.
어느 날 금발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한가롭기만 한 마을이 두려움으로 술렁거리고, 세상사를 멀리한 채 연애 소설을 읽던 노인의 평화가 위협을 받는다. 밀렵꾼인 양키에게 새끼들과 수놈을 잃은 암살쾡이가 그 보복으로 인간 사냥에 나선 것이다. 인간과 동물의 피할 수 없는 한판. 그 중심에 노인(안토니오)와 암살쾡이가 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떠오른다.  <노인과 바다>의 노인 산티아고는 황새치와의 싸움이 아닌 자신과의 싸움이었던 것에 비해 안토니오의 싸움은 본질적인 삶의 근원 - 밀림 세계에서의 삶과 죽음이란 그 자체일 뿐이라는 수아르 족의 말처럼 - 을 찾아 나선 행위이다.

 

"그들은 죽음을 죽음 자체의 행위라고 믿었다. 죽음은 참혹한 것이지만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이 말하는 죽음은 이른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밀림 세계의 냉혹한 원칙에서 나온 죽음이었다. 그때서야 노인은 눈앞의 현실을 되짚어 볼  수 있었다.
먼저 싸움을 건 쪽은 인간이었다. 금방의 양키는 짐승의 어린 새끼들을 쏴 죽였고, 어쩌면 수놈까지 쏴 죽였는지도 몰랐다. 그러자 짐승은 복수에 나섰다. 하지만 암살쾡이의 복수는 본능이라고 보기에 지나치리만치 대담했다. 설사 그 분노가 극에 달했더라고 미란다나 플라센시오를 물어 죽인 경우만 봐도 인간의 거처까지 접근한다는 것은 무모한 자살 행위였다. 다시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자 노인의 뇌리에는 어떤 결론이 스쳐가고 있었다.

 

맞아, 그 짐승은 스스로 죽음을 찾아 나섰던 거야.
그랬다. 짐승이 원하는 것은 죽음이었다. 그러나 그 죽음은 인간이 베푸는 선물이나 적선에 의한 죽음이 아닌, 인간과의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싸움을 벌인 뒤에 스스로 선택하는 그런 죽음이었다."

 

죽음을 스스로 택한 암살쾡이, 아마도 그건 살해 당한 환경 운동가 '치코 멘데스'가 아닐런지. 살해당했다지만, 죽음의 길을 알고 물러서지 않은 채 한판 싸움을 벌였을 '치코 멘데스'
그에게 헌정한 이 소설은 많은 이를 '공감'하게 할 수 있는 훌륭한 작품임에 틀림없다.

 

 

라울 줄리아란 미국배우가 주연한 <버닝 씨즌>, 치코 멘데스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읽은 날  2011. 11. 27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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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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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아비, 김애란>

 

이 책을 2005년 초판으로 읽었었다. 역대 최연소 한국일보 문학상 수상작이라 떠들썩했었다.
읽은 후 느낌은 머쓱함이었다.
사람들이 잘 쓴 글이라며 호들갑 떨고, 상도 받았다는데 내 느낌은 왜 이럴까.
괜찮네 라든가, 상 받을 만 하다 라든가, 하다못해 별로 라든가 해야할 거 아닌가.
딱히 뭐라 할 말이 없어, 머쓱했다.

 

내 공간은 두 아이가 자라는 만큼 점점 줄어들었다. 생활의 무게는 '짐'이 되어 쌓아져만 갔다. 2008년 경 지금 집으로 이사오면서 그 짐을 버렸다. 안 입는(안 입을) 옷, 너덜너덜 해진 가구, 각종 장난감, 그리고 책까지. 20대 접어들면서 점점 책을 안 읽었어도 그 동안 쌓인 책이 제법 됐다. 매일 한 묶음의 책을 버렸다. 내 책과 이집 저집에서 들어와 안 읽혀진 아이들 전집까지.
이 책은 그러한 대량 도서방출 사태를 넘겼다.  갓 결혼한 새색시마냥 고운 자태를 뽐 낸 덕에.

 

이 책 <달려라, 아비>를 작년 8월경에 다시 읽게 됐다. 읽은 책을 또 읽는다는 건 재회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도 있지만, 내겐 다독의 열망을 꺽어야 하는, 조금 힘든 일이다.  여러 번 읽기의 미덕에 동의하면서도 쉽게 되지 않는 일이다.

 

세월과 비례하는 기억력 감소 덕에 “편의점…이 나왔던 거 같은데”가 이 책을 대표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려라, 아비” 글이 깔끔하게 잘 떨어졌단 느낌을 받았다.  군더더기 없는 담백한 맛, 신선한 20대 날 것의 맛으로 상을 받았나보다.
수상작 유명세에 독자의 느낌이 부합해야만 되는 건 아니다. 그래도 내 독후감과 심사위원들 생각과의 괴리는 극복하고픈 소망이었는데, 그 괴리가 줄어든 것 같아 만족스럽다.

 

再讀에 대한 좋은 느낌에도 여전히 새로운 책을 읽을 것 같다.   그  때가 결국 오겠지만, <두근 두근 내인생> (미지의 책)의 즐거움을 더 누릴 것이다.

 


다시 읽은 날   2011. 8. 15        by 책과의 일상

http://blog.naver.com/cji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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