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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소설 읽는 노인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3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평점 :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2/0613/pimg_713159194767029.jpg)
<연애소설 읽는 노인, 루이스 세풀베다>
이 책은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에서 저자의 이력과 제목이 주는 느낌에 끌려 읽게 됐다.
"루이스 세풀베다는 1949년 칠레 북부 오바예에서 태어났다. 그는 군사 정권하에서 반독재 반체제 운동에 참여하다 수감되었고, 결국 당시 많은 칠레 지식인들이 그러했듯이 오로지 목숨을 구하기 위해 피노체트의 나라에서 도망쳐야 했다. 수년 동안 그는 라틴아메리카를 여행하며 유네스코 기자 등으로 활동했고, 1980년 독일로 이주했다.
1989년 세풀베다는 살해당한 환경 운동가 치코 멘데스에게 바치는 소설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을 발표했다. 그리고 출간과 동시에 일약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라섰다. 독자를 끊임없이 긴장하게 하는 추리 소설적 기법과 <양키>로 대표되는, 자연과 삶을 파괴하는 세력들에 대한 적대감 등도 이후 작품들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들이며, 그의 이러한 작품들은 지금까지도 세계 수백만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노인은 소설을 읽는다. 그것도 연애 소설을. 어떤 사연이 있을까?
아마존 밀림 인디오족인 수아르 족과 헤어져 이제 노인이 된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프로아뇨'는 이제 자신이 늙어 간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글을 읽을 줄 안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부터 자신의 보금자리인 오두막에서 연애소설을 읽는다. 여러 분야의 책읽기를 시도했지만, 연애소설만큼 마음에 드는 게 없어 그는 책장이 닳도록 천천히 읽고 또 읽으면서 무료하고 적막한 나날을 보낸다.
한 때 노인은 용맹한 수라르 족 인디오들의 절친이었다. 수라르 족 인디오들은 이렇게 말한다.
"사냥을 하지 않으면 뭘 하는데?"
"일을 하지. 해가 떠서 해가 질 때까지 말이야."
"저런 바보들 같으니라고. 다들 왜 그렇게 멍청하지?"
자연과 혼연일체인 수라르 족만의 문화 중 인상 깊은 것은 다음이었다.
"또한 그(안토니오)는 이제 '떠날 시간이 되었다'고 결정한 부락의 노인들을 위해 베푸는 고결한 의식에도 참여했다. 그들은 임종을 앞둔 노인이 치차 즙과 나테마 즙을 마시고 그 효과로 이미 예정된 내세의 문을 통과하는 동안 스르르 잠이 들면 그 육신을 부락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데려가서 온몸에 달콤한 종려나무 꿀을 바르고, 그다음 날 죽은 자로 하여금 저 세상에서 현명한 나비나 물고기나 동물로 다시 환생하길 축원하는 어넨트를 읊조리면서 밤사이에 개미들에 의해 완전하게 육탈이 된 하얀 분골을 수습했다."
그들의 형제이자 친한 친구였던 안토니오는 어.쩔. 수 없이 그들과 헤어지게 된다.
"그들은 그(안토니오)가 백인인 노다지꾼에게 용감하게 싸울 수 있는 기회를 준 다음 독화살로 끝장냈더라면 죽은 백인의 얼굴에 그 용기가 남아 누시뇨가 평온하게 눈을 감을 수 있었지만 총을 맞았기에 백인의 얼굴이 놀라움과 고통에 일그러져 저 세상으로 떠날 수 없다고 생각했고, 그로 인해 누시뇨의 영혼은 눈이 먼 앵무새로 날아다니다 나뭇가지에 부딪히거나 잠이 든 보아뱀의 꿈자리를 사납게 만들어서 그들의 사냥을 방해할 것으로 믿고 있었다. 결국 그는 자신과 수아르 족의 명예를 더렵혔을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친구 누시뇨에게 영원한 불행을 가져다주고 말았던 것이다.
수아르 족 인디오들은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의 카누를 밀어 준 뒤, 그의 모습이 멀리 사라지자 발자국을 지웠다."
어느 날 양키(외지인이자 밀렵꾼, 환경 파괴자)에게 친구 누시뇨가 급습을 당한다. 안토니오는 수라르 족 방식대로 독화살로 보복을 했어야 했는데, 잘못 하여 총으로 그를 사살하게 된다. 수아르 족의 명예를 더럽힌 그는 떠나야만 했다. 그들은 서로 얼싸안고 작별의 눈물을 흘렸다. 수아르족 인디오들은 먹을 것과 카누를 내주면서 앞으로 그를 반갑게 맞이할 수 없고, 그들의 부락에 들르는 것은 가능해도 그곳에 머물 수 없다고 말했다.
소설 <연애소설 읽는 노인> 의 내용은 이렇다.
어느 날 금발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한가롭기만 한 마을이 두려움으로 술렁거리고, 세상사를 멀리한 채 연애 소설을 읽던 노인의 평화가 위협을 받는다. 밀렵꾼인 양키에게 새끼들과 수놈을 잃은 암살쾡이가 그 보복으로 인간 사냥에 나선 것이다. 인간과 동물의 피할 수 없는 한판. 그 중심에 노인(안토니오)와 암살쾡이가 있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떠오른다. <노인과 바다>의 노인 산티아고는 황새치와의 싸움이 아닌 자신과의 싸움이었던 것에 비해 안토니오의 싸움은 본질적인 삶의 근원 - 밀림 세계에서의 삶과 죽음이란 그 자체일 뿐이라는 수아르 족의 말처럼 - 을 찾아 나선 행위이다.
"그들은 죽음을 죽음 자체의 행위라고 믿었다. 죽음은 참혹한 것이지만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이 말하는 죽음은 이른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밀림 세계의 냉혹한 원칙에서 나온 죽음이었다. 그때서야 노인은 눈앞의 현실을 되짚어 볼 수 있었다.
먼저 싸움을 건 쪽은 인간이었다. 금방의 양키는 짐승의 어린 새끼들을 쏴 죽였고, 어쩌면 수놈까지 쏴 죽였는지도 몰랐다. 그러자 짐승은 복수에 나섰다. 하지만 암살쾡이의 복수는 본능이라고 보기에 지나치리만치 대담했다. 설사 그 분노가 극에 달했더라고 미란다나 플라센시오를 물어 죽인 경우만 봐도 인간의 거처까지 접근한다는 것은 무모한 자살 행위였다. 다시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자 노인의 뇌리에는 어떤 결론이 스쳐가고 있었다.
맞아, 그 짐승은 스스로 죽음을 찾아 나섰던 거야.
그랬다. 짐승이 원하는 것은 죽음이었다. 그러나 그 죽음은 인간이 베푸는 선물이나 적선에 의한 죽음이 아닌, 인간과의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싸움을 벌인 뒤에 스스로 선택하는 그런 죽음이었다."
죽음을 스스로 택한 암살쾡이, 아마도 그건 살해 당한 환경 운동가 '치코 멘데스'가 아닐런지. 살해당했다지만, 죽음의 길을 알고 물러서지 않은 채 한판 싸움을 벌였을 '치코 멘데스'
그에게 헌정한 이 소설은 많은 이를 '공감'하게 할 수 있는 훌륭한 작품임에 틀림없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2/0613/pimg_713159194767028.jpg)
라울 줄리아란 미국배우가 주연한 <버닝 씨즌>, 치코 멘데스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읽은 날 2011. 11. 27 by 책과의 일상
http://blog.naver.com/cji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