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쇼생크 탈출>과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 Nietzsche) ⑧

 

8. 내 머릿속에는 모차르트가 살고 있다 

   
   질투 없는 눈.
 그래, 그의 눈에는 질투가 없다 : 그래서 너희들은 그를 존경하는가?
 그는 너희들의 존경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는 먼 곳을 바라보는 독수리의 눈을 지니고 있다.
 그는 너희들을 보지 않는다―그는 별들을, 별들만을 바라본다.
 - 니체, 안성찬 · 홍사현 역, <즐거운 학문>, 책세상, 2005, 51쪽.
 
   

   일일 DJ로 활동한 앤디는 자신이 감옥에 있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은 듯 편안하게 <피가로의 결혼>을 감상한다. 소장과 간수의 협박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문 열어! 열라니까! 경고한다! 꺼라! 넌 이제 죽었어!” 노튼 소장은 믿었던(?) 앤디의 도발에 분노하고, 앤디는 2주간 독방 신세를 면치 못한다. 독방은 사람은 물론 빛도 소리도 책도 없는 광막한 어둠을 마주하는 곳이지만, 2주나 독방에 갇혀 있던 앤디는 평소보다 더 건강해 보인다. 레드는 돌아온 친구에게 1주일이 1년처럼 더디게 가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앤디는 씩 웃는다. 난 괜찮았다고. “모차르트가 친구가 되어줬거든요.” 순진한 레드는 앤디의 언어유희를 이해하지 못한다. “독방에 녹음기를 넣어줬단 말이야?” 앤디는 웃으며 자신의 머릿속을 가만히 가리킨다. “내 머릿속에 모차르트가 있었어요. 그들이 그것까지 빼앗을 수는 없잖아요. 이런 감정 느껴본 적 있어요?”

   레드는 아주 머나먼 곳,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곳을 덧없이 회상하듯이 쓸쓸한 표정을 짓는다. “왕년에 하모니카를 잘 불었지. 이젠 흥미를 잃었어. 도무지 감흥이 안 나서.” 앤디는 곧바로 레드의 말꼬리를 붙잡는다. “감흥을 느끼는 데는 감옥이 제격이죠. 왕년의 그 하모니카 소리를 잊지 않도록 가끔 불어보세요.” 앤디는 천연덕스럽게 감옥이야말로 아름다운 음악을 감상하는 데 적당한 장소라며 미소 짓는다. “잊지 마세요. 세상에는 돌로 만들어지지 않은 곳도 있어요. 그 안쪽까지는 저들의 손이 미치지 못하죠. 건드릴 수도 없어요. 그건 오직 당신만의 것이니까요.” 레드는 앤디의 투명한 눈빛에 서린, 달콤하지만 불온한 상상의 그림자를 읽어낸다.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거야?”
   앤디는 얼굴에서 웃음기를 거두고 말한다. “희망이요.” 레드는 희망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마치 ‘금기어’를 들은 듯이 정색을 하며 앤디에게 경고한다. “희망? 내가 충고 한마디 할까? 희망은 위험한 존재야. 사람을 미치게 하지. 감옥에서는 필요 없는 존재라고. 명심하는 게 좋을 거야.” 레드는 불안한 눈빛으로 앤디를 바라보지만, 어느새 잃어버린 하모니카의 슬픈 환청이 망각의 저편에서 아스라이 들려오는 듯하다. 레드의 가처분 심사 날짜는 어김없이 다가왔고, 심사위원들은 도살장의 쇠고기 등급을 심사하는 듯 냉혹한 눈빛으로 레드를 샅샅이 훑어본다. 

      
    “당신은 30년 동안 복역했소. 사회에 나갈 준비가 됐나요?” 레드는 평소와 달리 긴장된 눈빛과 경직된 말투로 심사에 임한다. “물론입니다. 전 옛날의 제가 아닙니다. 위험한 존재도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전 완전히 교화가 됐습니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어김없이 ‘부적격(rejected)’ 판정이다. 가처분 심사는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종신형 죄수를 고문하는 또 하나의 형벌이다. 레드가 복역한 지 30년, 앤디가 복역한 지도 벌써 10년이 흘렀다. 앤디는 미리 준비한 선물을 레드에게 전해준다. “이거 가처분 불합격 선물이에요. 뜯어봐요.” 레드가 한때 멋들어지게 불었다는 하모니카였다. 한가로이 하모니카를 부는 레드의 모습을 바라보고 싶은 앤디의 심정을 알면서도, 레드는 지금은 불지 않겠다고 말한다. 하모니카는 잊고 있었던 바깥세상을 일깨워줄 것이며, 앤디의 머릿속에 사는 모차르트가 일깨운 위험한 자유의 공기를 기억나게 할 것이다. 레드는 그 희망의 냄새를 다시 맡는 것이 새삼 두렵다. 레드는 다음에 불어보겠다고 이야기하며 쓸쓸히 웃는다. 

   앤디는 정말 일주일에 두 번씩 주 의회에 편지를 보내기 시작한다. 쇼생크 도서관을 최고의 감옥 도서관으로 만들기 위한 앤디의 ‘허황된’ 프로젝트는 계속된다. 앤디가 쇼생크에 입성한 지 13년째 되던 1959년, 드디어 주 의회는 200달러만으로는 앤디의 끈질긴 편지 공세를 무마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주 의회는 매년 500달러씩 쇼생크 도서관에 보조한다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린다. 앤디는 주 의회의 생색내기용 일회적 지원으로 만족하지 않고 지속적인 문화적 지원을 바랐다. 아마 그가 떠나도 쇼생크에 계속 ‘우리 안의 모차짜르트’를 들려줄 DJ가 필요하다고, ‘우리 안의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불러내 줄 수많은 책이 필요하다고, 그는 상상한 것이 아닐까.
    앤디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자선단체와 교섭하고 재고서적을 싸게 구입하여 쇼생크 도서관을 당대 최고의 감옥 도서관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 그는 쥐똥이 득실거리는 창고를 개조하여 쾌적한 감옥 도서관을 만든다. 이제는 ‘친구’가 된 동료와 함께. 죄수들은 음악도 듣고 책도 읽고 검정고시 준비도 하며 쇼생크 감옥을 새로운 희망의 공간으로 만들기 시작한다. 앤디는 단지 책이라는 물질을 구입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책 속에 기록된 형체 없는 희망을, 지금 우리가 사는 이 회색 공간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고 속삭이는, 위험한 선동을 구입한다. 그는 이렇게 감옥 안에서는 가장 위험한 무기인, ‘희망’을 차입해온 것이다. 

   노튼 소장도 그동안 자신만의 사업을 번창시켜, 죄수들을 사회 재활 프로그램에 참여시킨다는 허울 좋은 공익사업에 착수한다. 공익사업을 수행하면서 노동의 가치를 깨닫게 한다는 미명 하에, 그는 기자회견까지 해가며 쇼생크의 죄수들을 감옥 밖에서 ‘임금 없는 노동자’로 착취할 계획을 만천하에 선포한다. 당시로써는 획기적이었던 죄수들의 ‘노동자 만들기’ 프로젝트는 신문과 잡지에 대서특필되며 노튼 소장을 유명인사로 만든다. “죄수들은 담장 밖에서 노역을 하게 될 것입니다. 공익사업을 수행하면서 노동의 가치를 깨닫겠죠. 최소한의 비용으로 사회에 봉사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인건비와 자재비 등 엄청난 ‘외부의 돈’이 감옥으로 굴러들어 오기 시작했고, 노튼 소장은 거의 무한한 ‘제로 임금’ 노동력을 무기로 엄청난 사업을 벌이기 시작한다. 고속도로 건설 수주를 따준다는 명목으로 뇌물까지 수수하는 노튼의 비리 행각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모든 뒷거래 배후에는 검은돈이 뒤따랐고, 이 무시무시한 돈들을 청결하게(?) 세탁하는 임무는 앤디의 것이었다.

   앤디는 노튼 소장의 돈세탁이라는 꺼림칙한 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전혀 어두운 표정이 아니다. 레드에게 부정한 돈을 세탁하는 비법까지 공개하며 호기심 어린 눈빛을 반짝인다. “꿈에도 생각 못할 수를 써서 등을 쳐요. 더러운 돈이 이곳을 통해 나가요. (……) 주식, 은행예금, 채권을 이용해서 제가 더러운 돈을 깨끗한 돈으로 불려주죠. 노튼이 은퇴할 때 백만장자로 만들어줄 거예요.” 레드는 혀를 내두르며 걱정 어린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꼬리가 길면 의심받아. FBI든 세무국이든 누군가 눈치챌 거야.” 앤디는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말한다. “그래봐야 저도 소장도 의심 안 받아요.” “그럼 누구야?” “랜달 스티븐스!” “누구라고?” 랜달 스티븐스라는 낯선 이름을 발음하는 순간, 마치 오랫동안 사귄 절친한 벗의 얼굴을 떠올리는 듯 든든한 표정을 짓는 앤디. “말 없는 파트너죠. 돈세탁은 그렇게 시작되는 거예요. 아무리 조사해도 그 이름밖에 안 나와요. 가상의 인물이죠. 존재하지 않은 인물을 제가 만들었어요.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사람이죠.” 레드는 소스라친다. “없는 사람을 만들어 낼 수는 없어.”
    “제도의 허점을 알면 당신도 할 수 있어요. 랜달 스티븐스는 출생증명도 있고 운전면허에, 사회보장번호도 있는 걸요. 어떤 계좌를 추적한다 해도 내 상상의 단면밖에 못 찾아요.” 레드는 앤디의 신출귀몰한 기술에 놀란 나머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젠장, 내가 널 좋은 놈이라고 했던가? 알고 보니 사기꾼이잖아?” 앤디는 웃으며 대답한다. “맞아요. 더 웃기는 건 내가 사회에 있을 땐 오히려 정직했다는 거예요. 전 사기꾼 되려고 교도소에 왔나 봐요.” 이제 농담도 능수능란하게 잘하는 앤디의 여유로움 뒤로 신비로운 음모의 냄새가 배어나온다. “그 일 덕분에 쇼생크 도서관을 확장했고, 동료에게 고등학교 과정도 가르칠 수 있었어요.” 

   앤디는 성격상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굴욕적인 돈세탁을 하면서도, 그의 몸짓은 이상하리만치 당당하고 기품마저 넘실거린다. 오히려 예전보다 더 강인하고 신념에 찬 쾌활한 모습. 그의 머릿속에서는 단지 모차르트만 사는 것이 아니다. 침묵의 파트너 랜달 스티븐스. 그와 함께 앤디는 무언가를 은밀히 계획하는 중이다. 아니, 모차르트나 랜달 스티븐스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높고 머나먼 그 무엇을 향해, 앤디의 눈은 서늘하게 빛난다. 그는 지금 언제 대폭발을 일으킬지 모르는 거대한 휴화산이다. 그의 가슴 속에서는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꿈의 마그마가 뜨겁게 꿈틀거리고 있다. 

   
 

우리의 분출. ― 인류가 예전의 단계에서 획득한 무수히 많은 것들, 그러나 너무 미약하고 미숙한 단계에 있어서 아무도 그것을 획득했다는 것을 지각하지 못했던 것들이 갑자기 오랜 후에, 아마도 수 세기가 흐른 후에 빛을 보게 되는 경우. 그 사이에 그것이 강하고 성숙해진 것이다. (……) 우리 모두는 우리 안에 숨겨진 정원과 식물을 갖고 있다. 달리 비유하면 우리 모두는 언젠가 분출하게 될 활화산이다. 그러나 이것이 얼마나 가까운 시간에 혹은 먼 이후에 이루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신조차도.  


 - 니체, 안성찬 · 홍사현 역, <즐거운 학문>, 책세상, 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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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드러너 2009-09-16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세탁할 돈이라도 있었으면,,,, 내 머릿속에는 너무나 많은 쇼핑 목록들. 아무도 빼앗을 수는 없다^^*

둥이 2009-09-16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러너님의 머리속에 있는 많은 쇼핑 목록들이 희망이군여^^앤디의 그것과 같은
그럼 러너님두 혹 지금 꿈틀거리나여 그럼 "참으세요"라구 말하고 싶어지는데여^^

ㅍㅎㅎ 2009-09-16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님들 넘 웃겨요 ㅋㅋ 무서운 휴화산들이네^^

sotkfkd 2009-09-21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겨진 정원과 식물!

콩콩 2009-12-15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리 모두는 언젠가 분출하게 될 활화산이다. 너무나 와닿는 말입니다. 내가 모르는 잠재된 나를 발견하는 순간.. 그때를 위해 묵묵히 하루하루를 견디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