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쇼생크 탈출>과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 Nietzsche) ⑦

 

7. 벽을 증오하다가, 벽에 길들여지다가, 마침내 벽에 의지하게 되다
 

   
  형벌. ―기이한 것이다. 우리의 형벌이라는 것은! 그것은 범죄자를 정화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떠한 속죄도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범죄 그 자체보다도 범죄자를 더럽힌다.
                           - 니체, 박찬국 역, <아침놀>, 책세상, 2004, 251쪽.
 
   

   감옥에 너무 오랫동안 길들어져 마치 감옥의 벽돌처럼 감옥의 일부가 된 사람들. 그 중에 브룩스가 있었다. 브룩스는 50년 동안 감옥에서 살았기에 감옥을 빼놓고는 자신의 인생을 설명할 수 없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일을 사랑한다. 죄수들에게 책을 빌려주고 독서를 권하는 일은 브룩스를 감옥에 갇힌 ‘죄수’라기보다 더없이 충실한 ‘사서’처럼 보이게 한다. 브룩스의 표정은 언제나 편안하고 만족스러워서 그를 바라보고 있으면 이곳이 감옥이라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곤 한다. 어린 새 한 마리를 품안에 넣고 다니며 직접 키워 ‘제이크’라는 이름까지 붙여준 브룩스는 누구에게도 해를 끼칠 것 같지 않은, 그가 도둑이었다는 사실을 아무도 믿을 수 없을 것만 같은, 평화로운 얼굴이었다.

   어느 날 레드와 앤디는 브룩스가 헤이우드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다는 믿을 수 없는 소식을 듣고 달려간다. 칼을 제대로 들고 있을 힘도 없어 보이는 브룩스는 정작 협박당하고 있는 헤이우드보다 더 두려운 표정으로 떨고 있다. “우리, 말로 하자고.” “할 말 없어. 목을 그어 버릴 거야.” “헤이우드가 뭘 잘못했어?” “그건 상관없어. 난 이렇게 할 수밖에 없어.” 앤디는 침착하게 브룩스를 설득한다. “브룩스, 헤이우드를 해치지 않을 거죠? 그도 브룩스를 해치지 않을 거예요. 왜 친구를 죽이려는 거죠? 날 봐요. 브룩스, 그거 내려놔요. 목을 봐요. 피가 나잖아요.” 브룩스의 날 선 눈빛은 앤디의 애정 어린 몇 마디 문장으로 무너져버린다. “이 길밖에 없어. 난 여기 있고 싶어.” 브룩스는 눈물을 흘리며 칼을 떨어뜨리고 죄수들은 가슴을 쓸어내린다. 사면을 받아 감옥을 나가게 된 브룩스에게 ‘잘 가’라고 인사한 죄밖에 없다는 헤이우드는, 억울해 미칠 것 같다는 표정으로 ‘브룩스가 미쳤다’고 투덜거린다.  

   도대체 얌전하기만 하던 브룩스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죄수들에게 레드는 이야기한다. “브룩스는 교도소에 길들어졌을 뿐이야.” “길들어져?” “감옥에 50년 동안 있어봐. 바깥세상을 전혀 몰라. 여기선 브룩스가 대장이야. 모르는 게 없지. 하지만 사회에선 아무 것도 아냐. 그저 쓸모없는 쓰레기지.” 죄수들은 갑자기 숙연해진다. 감옥의 철책을 바라보며 레드는 말한다. “이 담벼락이 참 웃기지. 처음엔 다들 증오해. 그러다가 차츰 길들어지지.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 길들어지는 거야. 그리고 어느 순간 의지하게 되지. 그게 바로 길들어지는 거야.” 형벌의 목적은 정말 인간을 교화하는 것일까. 니체는 형벌이 인간을 계몽할 수 있다는 환상을 믿지 않았다. 형벌은 인간은 단지 ‘덜 위험하게 보이도록’ 길들일 뿐이다. 형벌은 그가 저지른 죄보다 그를 더욱 망가뜨리는 폭력이다. 브룩스는 어느새 형벌의 한가운데서 삶의 희열을 맛보는 경지에 이르렀다. 브룩스는 형벌에 완벽하게 길들어진 나머지 형벌이 곧 삶 자체라고 믿게 되었다. 형벌 없는 삶은 삶이 아닌 것이다. 

   감옥을 나가는 브룩스. 그러나 그의 표정은 50년 만에 자유를 찾은 사람의 그것이 아니라 50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근속했던 회사에서 창졸간에 쫓겨나는 명예퇴직자의 허허로운 표정이다. 그에게는 새로운 삶의 기회가 주어져도 다시 시작할 만한 용기도 체력도 친구도 남아 있지 않다. 50년 만에 맞닥뜨린 세상은 너무 빠르고, 너무 매정하고, 너무 무섭다. 브룩스는 그의 유일한 친구들, 죄수들에게 편지를 보낸다. “어렸을 적엔 차가 드물었는데 이젠 지천에 깔렸다네. 세상은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어. 난 가석방자 임시 거처에 기거하고 있다네. 식료품점에서 포장하는 직업도 얻었지. 남들처럼 빨리 하려고 했지만 실수만 한다네. 지배인은 날 싫어해. 일을 마치면 공원에 가서 새에게 모이를 주지. 제이크가 나타나서 인사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말이야. (……)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지. 벼랑으로 떨어지는 악몽도 꾼다네. 겁에 질려서 깨어나면 때때로 내가 어디 있나 싶어. 도둑질이라도 한다면 나를 쇼생크로 보내주지 않을까? 날 다시 보내주기만 한다면 지배인을 쏠 수도 있어. 하지만 그러기엔 난 너무 늙었다네.” 감옥으로 날아온 마지막 편지는 브룩스의 유서였다. 브룩스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것은 겉으로 보기에 자살이었지만 50년 동안의 복역 자체가 그를 ‘느린 자살’로 몰아간 것이 아닐까. 레드는 친형을 잃은 것처럼 슬퍼하며, 자신의 손으로 묻어주지 못한 친구를 가슴에 묻으며, 앤디에게 말한다. “브룩스는 여기서 죽어야 했어.” 이제는 얼굴조차 확실히 기억나지 않는 가족보다 더 가까운 동료 브룩스를, 레드는 그렇게 잃어버린다. 

   한편 앤디는 6년 동안 주 의회에 도서 기금을 요청했던 편지의 답신을 드디어 받아낸다. “당신의 거듭된 요구에 도서기금을 동봉합니다. 도서기금 200달러와 더불어 지방도서관에서 헌책과 잡동사니를 보냅니다. 이제 만족하셨으리라 믿습니다. 이제 문제가 해결됐으니 더 이상 편지를 보내지 마십시오.” 앤디의 편지를 모른 척하고 싶었던 당국은 6년 동안 지치지도 않고 편지를 보내는 앤디의 열정에 항복하고 만다. 간수가 앤디의 성과를 축하하며 6년씩이나 고생한 보람이 있다고 치하하자, 앤디는 말한다. “겨우 6년밖에 안 걸렸어요. 이제는 일주일에 두 통씩 써야겠어요.” 간수가 화장실에 간 사이, 앤디는 주 의회가 보낸 잡동사니 중에서 모차르트의 음반을 발견한다. 그는 언제나 죄수들에게 ‘명령’만 내리던 감옥의 스피커에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두 여인의 목소리를 실어 죄수들에게 띄워 보낸다. 일일 DJ로 변신한 앤디는 간수의 협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문까지 걸어 잠근 채 <피가로의 결혼>을 거대한 쇼생크 감옥 전체에 울려 퍼지게 만든다. 난생처음 오페라를, 그것도 감옥의 스피커로 들어보는 대부분의 죄수들은 어리둥절하지만, 그들의 귓속에 울려 퍼지는 것은 단지 낯선 오페라가 아니었다. <피가로의 결혼>은 형태도 빛깔도 없는 자유의 바이러스가 되어 권태와 침울함에 젖어 살아온 죄수들의 심장을 고동치게 한다.

   간수는 물론 소장까지 나서서 앤디 듀프레인의 돌발적인 DJ 활동을 막아보려 애써 보지만, 앤디의 표정은 너무 평화롭고 즐거워 두려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레드의 내레이션은 저 아름다운 음악을 닮아 마치 자신이 직접 쓴 시를 낭송하는 것처럼 애잔한 목소리로 관객의 가슴을 데운다. “두 명의 이탈리아 여인들이 도대체 무슨 내용의 노래를 불렀는지 저는 이날까지 알지 못합니다. 사실 알고 싶지도 않았지요. 굳이 설명하지 않은 채로 내버려두는 것이 더 나을 때도 있지요. 아름다운 곡이었습니다. 말로는 그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없었지요. 너무 아름다워서 마음이 아파졌습니다. 노랫소리는 더 멀리, 더 높이 날아올라  갔습니다. 이 잿빛 감옥에서는 도저히 꿈꿀 수도 없는 그 어딘가로, 더 멀리, 더 높이 울려  퍼졌습니다. 마치 아름다운 새 한 마리가 우리가 갇힌 새장에 날아 들어와 우리를 가두던 담장을 허물어버린 것 같습니다. 아주 짧은 한 순간이었지만, 쇼생크의 모든 사람들은 자유를 느꼈습니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방식으로 죄수들의 심장을 파고든 모차르트는 감옥의 안과 밖을 가르는 족쇄를 산산이 부수고 그들이 미처 잊어버린 줄도 모르고 살았던 비릿한 자유의 향기를 걷잡을 수 없이 퍼뜨린다. 죄수들은 저마다 하던 일을 멈추고 그들이 지나쳐온 모든 삶의 과정이 한 순간에 자신을 스쳐가는 듯한 가슴 저린 환상을 만끽한다. 이 음악은 ‘오페라’라는 ‘형식’으로 다가간 것이 아니라, ‘이태리어’라는 ‘언어’로 다가간 것이 아니라, 형태도 빛깔도 없는 무형의 메시지로 죄수들의 딱딱해진 심장을 한순간에 녹여버린다. ‘마치 아름다운 새가 한 마리 날아와서, 우리를 가둔 담장을 허물어버린 것 같았다’는 뭉클한 시적 묘사가 태어난 사연. 그것은 바로 아름다운 음악이 할퀴고 간 레드의 심장이 불현듯 꿈틀거린 흔적을, 30년 동안 쇼생크의 벽돌로 살아간 레드가 앓고 있던 영혼의 불감증이 치유된 흔적을 증언한다. 

   
  음악이 모든 사물의 진정한 본질과 맺는 이 친밀한 관계로부터 다음 현상이 설명될 수 있다. 즉 어떤 장면, 줄거리, 사건, 환경에 적절한 음악이 흐르면, 음악은 그것의 가장 은밀한 의미를 해명해주는 것 같고 그에 대해 가장 정확하고 분명한 주석을 알려주는 듯한 까닭이 설명된다. 이는 어떤 교향곡이 주는 인상에 완전히 몰두한 사람이 음악을 들으면서 마치 삶과 세계의 모든 가능한 과정이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는 경우와 마찬가지다.(……) 개념들은 관조로부터 추상화된 형식, 즉 사물에서 벗겨낸 겉껍질만을 가지고 있어서 추상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에 반해 음악은 모든 형체들에 앞서 존재하는 내밀한 핵심, 사물의 심장을 제공한다.
           - 니체, 이진우 역, <비극의 탄생>, 책세상, 2005, 12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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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이 2009-09-15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사는 이 삶이 철창없는 감옥 같다면
나에게 자유의 바이러스는 무엇일까?
오늘은 소주한잔 해야 되겠는데여^^(핑계 참~~암 쉽죠이~~잉)

참, 이슬 2009-09-15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님의 글을 보니 갑자기 영롱한 소주의 투명한 자태가 아른거립니다. 딸꾹! ㅋㅋ

sotkfkd 2009-09-20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