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쇼생크 탈출>과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 Nietzsche) ⑤

 

 5. 모든 곳이 감옥이다, ‘감각의 한계’에 갇혀 있는 한

   
 

그대처럼 정처 없는 자들은 결국 감옥조차도 행복한 곳으로 여기게 된다. 그대는 일찍이 갇혀 있는 범죄자들이 잠자는 모습을 본 일이 있는가? 그들은 조용히 잠을 잔다. 그들은 그들의 새로운 안전을 즐기는 것이다. 
  

- 니체, 정동호 역,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책세상, 2002, 442쪽.

 
   

   원룸에서는 숨바꼭질을 할 수 없다. ‘원룸’이라는 현대적 공간의 치명적인 단점은, ‘숨을 곳’이 없다는 것이다. 사방이 꽉 막힌 공간에 침대와 책상(휴식과 노동)을 한 공간에 몰아넣고, 밥을 먹을 때도, 일을 할 때도, 잠을 잘 때도 한곳에만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 이 밀폐된 동심원적 공간에서는 방 안의 어느 지점에 앉아도 침대와 책상이 동시에 보일 수밖에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다양한 시점’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어렵다. 원룸뿐만이 아니다. 하루 종일 ‘디지털 무언족’으로 살아가며 한동안 오직 인터넷만으로 세상과 소통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유비쿼터스의 환상이, 우리를 마치 ‘모든 곳에 존재하는 듯’한 착시를 선물하지만, 감각이 모니터에 고정되어 있는 한 우리는 스스로 만든 무형의 감옥에 갇힐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감옥은 단지 죄수들만을 위해 고안된 공간이 아니다. 감각의 한계를 고정시키는 한, 경험과 자극으로부터 스스로를 유폐시키는 한, 어디든 쉽게 감옥으로 돌변해버린다.  

   쇼생크 감옥에서 오랫동안 수감 생활을 한 죄수들의 특징은, 아마도 그들이 감옥 바깥에 있을 때보다 오히려 ‘편안해 보인다’는 것이다. 감옥에서는 적어도 배를 곯을 일은 없다. 피난민이나 홈리스처럼 잠자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감옥 바깥으로 움직일 수 없다는 부자유만 은근슬쩍 간과하면, 감옥은 어느새 편안한 안식처가 된다. 일자리를 걱정하지도, 또 다시 범죄를 저지를 조바심에 떨지 않아도, 다음 범죄를 위해 머리를 쥐어짜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들이 진정한 ‘수인(囚人)’이 되는 순간은 단지 육체가 감옥에 갇히는 순간이 아니라, 이렇듯 자신의 가능성을 스스로 닫아버리는 순간, 감옥 안의 ‘제한된 공간’에서 나름대로의 만족감을 느끼기 시작할 때다.   

  

   
 

감옥에서. ― 내 눈이 지금 좋든지 나쁘든지 간에 나는 아주 가까운 거리밖에 보지 못한다. 내가 활동하고 사는 공간은 이렇듯 작은 곳이다. 이 지평선이 크고 작은 직접적인 내 운명을 규정하고, 나는 이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와 같이 모든 존재는 그 자신에게 특유한 하나의 원에 둘러싸여 있으며, 이 원에는 중심이 있다. (……) 그리고 우리는 평균적인 인간의 삶을 척도로 다른 모든 피조물들의 삶을 측정한다. (……) 우리의 감각기관이 갖는 습관으로 인해 우리는 감각의 거짓과 기만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이 감각기관들이 다시 우리의 모든 판단과 ‘인식’의 기초가 된다. 이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실제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뒷길로 샛길도 없다! 우리는 자신의 그물 안에 갇혀 있다. 우리들 거미는 이 그물 안에서 무엇을 붙잡든 바로 우리의 그물 안에 걸리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잡을 수 없다. 


- 니체, 박찬국 역, <아침놀>, 책세상, 2004, 135쪽.

 
   
   대부분의 죄수는 감옥 생활에 다만 ‘적응’하려 한다. 이미 적응된 사람은 적응을 뛰어넘어 감옥 생활에 애착을 느끼기까지 한다. 그런데 앤디는 뭐가 그리 바쁜지 머릿속으로 늘 딴생각을 하고 있다. 모두가 잠들어 있을 때도 그는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일을 계획한다. 그는 주어진 노동만 간신히 해내기도 바쁜 다른 죄수들과 달리, 틈만 나면 없는 일도 굳이 만들어낸다. 간수 하들리의 골치 아픈 유산 상속 문제를 해결해준 이후로 그는 감옥 안에서 인간-은행이자 인간-세무서가 된다. 하들리의 입소문 마케팅 덕분에 그는 주변 간수들의 모든 세금 환급을 담당해주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다. 뿐만 아니라 신참 죄수 토미를 가르쳐 검정고시에 합격하게 하며 감옥을 ‘학교’로 만들기도 하고, 있으나 마나 했던 유명무실한 도서관을 갈고 닦아 감옥 안의 멋진 문화 공간으로 만들기도 하며, 광활하고 건조하기 이를 데 없었던 감옥 전체를 멋진 음악 감상실로 만들기도 한다. 그는 감옥 안의 기계적 배치를 바꿈으로써 완고하기 그지없던 감옥이라는 기계적 공간을 마치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처럼 욕망이 꿈틀대는 역동적 공간으로 변모시킨다.

   그렇게 그는 감옥에서조차 자신의 모든 가능성을 시험한다. 그는 감옥을 마치 감각의 한계를 확장하는 실험실처럼 사용한다. 그는 늘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내며, 안정감을 줄 수 있는 고착된 대상에게 매달리지 않는다. 그는 레드를 ‘친구’로서 아끼지만 레드에게 끈끈한 연민을 느끼지 않으며, 동료를 존중하지만, 그들에게 정서적으로 의존하지 않는다. 그는 감옥이라는 밀폐된 세계 안에서 자신만의 또 다른 세계를 창조해내고 있다. 그로 인해 쇼생크 감옥은 점점 ‘최초의 사건들’로 가득해 진다. 그가 사는 곳은 어느새 ‘단지 감옥’이 아니게 된다. 그는 어떻게 하면 감옥 안의 욕망의 배치를 바꿀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고민하고 실천한다. 그리고 무슨 속셈인지 그는 지질학까지 연구한다. 주어진 감각의 경계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과 취미를 찾아다니는 앤디의 열정. 그것은 그의 경이로운 미래를 예언하는 정교한 복선이다. 

   앤디는 레드에게 체스를 가르쳐주겠다며 체스판을 구해줄 수 없느냐고 묻는다. 체스판은 살 테지만 체스의 ‘말들’은 손수 깎을 것이라는 계획도 들려주며. “남는 게 시간이잖아요. 돌이 없어서 문제죠. 돌은 많은데 쓸모없는 것들뿐이잖아요.” 돌의 종류를 일일이 설명해주며 암석 전문가의 기질을 보이는 앤디. 속을 알 수 없는 앤디의 독특한 취미가 괴상해  보이기는 하지만, 레드는 앤디를 아끼는 마음이 점점 커진다. 언제든 새로운 일을 벌이는 앤디로 인해 감옥 생활이 더 이상 권태롭지 않기에. 하루는 레드가 영화 <길다>의 눈부신 히로인 리타 헤이워드를 보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데 앤디가 다가와 어이없는 부탁을 한다. 바로 저 여자, 리타 헤이워드를 구해달라고. 모든 물품을 구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던 레드는 앤디의 얼굴을 보며 피식 웃는다. 몇 주 걸릴 테니 기다려보라고.

   만족스러운 얼굴로 죄수들의 영화상영관을 나오던 앤디를, 또다시 보그스 일행이 급습한다. 앤디는 주변의 모든 기물을 이용해 저항한다. 치욕스러운 포즈를 원하는 보그스의 비열한 협박에 아랑곳하지 않고, 앤디는 죽을 힘을 다해 자신을 보호한다. “보그스는 그날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 일당도 마찬가지였죠. 앤디가 거의 죽기 직전까지 때리기만 했습니다. 듀프레인은 한 달간 병원 신세를 졌죠. 보그스는 일주일간 독방에 갇혔습니다.” 뜻밖에도 앤디의 자원봉사에 힘입어 거액의 유산을 챙긴 하들리가 보그스를 처절하게 응징한다. “그 후로 녀석들은 더 이상 듀프레인을 괴롭히지 않았습니다. 보그스는 못 걷게 됐죠. 병원으로 이송되어 평생 빨대로 음식을 먹어야 했습니다.” 앤디로 인해 한낮의 야외 맥주라는 기적을 선물 받은 레드와 친구들은, 그동안 앤디를 도와줄 수 없었던 죄책감까지 더해져, 곧 퇴원할 앤디의 환영 선물을 마련한다. “앤디가 체스를 좋아하니까 돌을 구해주자고.” 말똥과 돌도 구분 못하던 죄수들은 레드의 지휘 아래 앤디가 평생 깎아도 남을 엄청난 돌들을 무더기로 구해다 준다. 가만히 있어도 잘난 척하는 것처럼 보였던 ‘귀공자’ 앤디는 드디어 동료의 진정한 사랑을 받기 시작한다.
    이윽고 레드가 감옥 안의 죄수들을 위해 준비한 물품들이 도착한다. 담배, 껌, 위스키, 여자 나체 무늬의 카드……. 그 중 가장 중요한 물품은 바로 앤디가 부탁한 ‘리타 헤이워드’의 포스터였다. 앤디는 보그스 일당의 상습적인 폭행 속에서도 삶에 대한 사랑, 자신에 대한 존엄을 잃지 않았다. 이제 감옥은 앤디에게 더 이상 굴욕의 공간이 아니다. 앤디는 철통같은 감옥의 질서에 크고 작은 균열을 내어 감옥을 때로는 축제의 공간으로 때로는 문화예술의 공간으로 역전시킨다. 게다가 앤디에게는 새로운 애인(?)까지 생겼다. 레드가 구해다 준 아름다운 리타 헤이워드는 마치 구원의 여신처럼 앤디의 감방을 화사하게 밝혀준다. 저 리타 헤이워드의 탐스러운 육체 뒤에 아무도 모를 앤디의 ‘또 하나의 프로젝트’가 계획되고 있었던 것이다. 침대와 변기밖에 없는 초라한 단칸방에 수십 년간 갇혀 산 앤디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비밀의 방들’이 존재했고, 그 누구도 앤디의 ‘뇌 구조’를 쉽게 밝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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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이 2009-09-11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내인생에 리타 헤이워드는 무엇일까?(퀴즈입니다)

예인 2009-09-12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쇼생크 탈출의 서사구조와 빠삐용의 서사구조가 유사합니다. 감옥이란 공간 배치가 그렇고 불가능한 감옥의 탈출이 그렇지요. 빠삐용도 감옥의 친구 드가가 나오지요. 같이 비교하는 것도 좋을 듯 하네요.

lost memories 2009-09-14 0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퀴즈 내신 분! 답은 안 써주시는 건가요?^^ㅋㅋ 저는 사회적으로 노출되는 제 삶 자체가 리타 헤이워드인 것 같아요. 리타 헤이워드 뒤에 감춰진 검은 구멍, 그곳에 아마도 진짜 내가 뒹굴뒹굴 웅크리고 있을텐데 그게 누구인지 아직도 찾고 있는 중.....

둥이 2009-09-14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내 인생의 리타 헤이워드는?
아마도 지금 집에서 찡찡거리는 제 아이가 아닐까여^^
그 아이를 보면서 저도 새로운 나를 찾아가고 있으니까여^^


sotkfkd 2009-09-20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