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묘촌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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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지난 다이쇼 시대, 팔묘촌의 부자집이던 동쪽집 '세가 다지미'의 주인 요조는 평소에서 폭력적이고

망나니에 가까운 성격이었는데 어느 날 그가 마을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32명이나 살인을 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산으로 도망쳐버리고 다시 한번 여덟 무사의 저주라며 사람들은 두려움에 떤다. 그로부터 26년, 다지미 집안의

후사로 판명된 '‘나'는 팔묘촌으로 돌아온다.  과거의 끔찍한 기억에 얽매인 마을 사람들과 살인마였던 아버지의

업보로 공포에 떠는 나. 미치광이의 소행이라고밖에 볼 수없는 살인사건이 연이어 벌어지기 시작한다.

 

여덟명의 무사들과 무시무시한 저주를 내뿜고 죽어가는 우두머리의 마지막 모습, 귀신인지 사람인지 모를 괴이한

모습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총과 칼을 휘둘러 목숨을 앗아가는 요조의 모습으로 시작된 "팔묘촌"의 도입부는 나를

충분히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이야기는 26년에 고향인 팔묘촌으로 돌아오는 '나'의 시점으로 모든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여느 추리 소설들에서

사건을 주도적으로 해결하는 탐정이나 형사의 활약은 비교적 약한데 반해 숨돌릴 틈도 없이 연이어 발생하는 살인

사건과 서두에 깔아놓은 여덟 무사의 전설과 요조의 무시무시한 행적이 이야기가 종료되는 시점까지 머리 속을

어지럽히고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고 있다.

 

추리 소설을 읽다보면 어느 한 부분에서라도 연결 고리가 느슨해 보이게 되면 이야기 전체의 개연성이 떨어져

보이면서 전체의 재미마저도 잃게 만드는 경우가 있는데 "팔묘촌"은 처음부터 끝까지 잘 짜여진 공간 (팔묘촌과

그 안에 존재하는 비밀의 통로나 종유석 동굴)과 적지도 과하지도 않는 등장 인물들과 사건이 착착 잘 맞물려져

있어 읽으면 읽을 수록 탄탄해진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특히나 시시각각 주인공 '나'의 숨통을 조여오던 마을 사람들의 증오는 살인 사건 자체가 없었다하더라도 이야기를

긴장감있게 끌고 갈만한 요소로 등장하고 있어 소설 전체 어디 한 부분이라도 빼먹고 얘기할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

되어주고 있다.

 

추리 소설을 읽는데서 오는 재미 중에서 가장 큰 부분은 과연 범인이 누굴까하는 점일텐데 요코미조 세이시는 범인의

단서를 줄 듯 말듯 애간장만 태울 뿐 처음부터 의욕적으로 범인과 동기를 추적하던 나는 결국에 중간쯤부터는 포기하고

주인공 '나'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집중했을 정도로 정말 추리 소설의 매력에 최정점에 머물러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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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들의 도서관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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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재밌다."

이 책을 읽으면서, 또 다 읽고 나서 제일 먼저 (책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었다.

 

"악기들의 도서관"이라는 언밸런스한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도무지 무슨 내용일지 짐작도 가지 않았었고  

심지어 단편 소설집인 줄도 몰랐었다. 하지만 내가 어떤 상상을 했다해도 그 예상은 빗나갔을 것이 분명하다.  

또 이 작품을 읽으면서 확실히 깨닫게 된 사실은 평소에 내가 단편 소설을 좋아하지 않았던 이유는 내가  

재미있는 단편을 만나지 못해서 라는 것이었다. 

 그만큼 '악기들의 도서관'은 독자들의 평범한 상상력을 뛰어 넘으면서도 환상과 현실, 일상과 일탈을 적당히  

버무려 놓았고 단편 소설의 장점인 "짧아서 좋네."를 "좀만 더 쓰지."하는 아쉬움으로 바꾸어 놓았다.

 

휘발성 짙은 소리와 음악을 소재로 한 단편들을 그렇다고 딱히 음악 소설이라는 장르를 부여하기엔 조금  

망설여지는 부분이있고 음악이라고 해도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 음원에 더 가깝고 음악이 흐르는 도중에  

치직치직하고 LP판 긁히는 소리가 날 것만 같은.. 참 말로 하기엔 내가 너무 부족한 것이 많아 어렵지만  

대충 느낌을 묘사하자면 그랬다.

 

이 페이지를 열면 아득히 먼 곳에서 들려오는 피아노 선율이 흐르고.. 또 어느 페이지를 열면 음치에  

박치까지 겸비한 엇박자 D의 생생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또 어떤 페이지를 열면 맑은 오르골 소리가  

흘러나온다. 책을 듣는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면 이 작품 "악기들의 도서관"은 명품 음반에 해당할 것 같다.

 

예전에 무라카미 하루키에 푹 빠져있었을 때 '도대체 어떻게 이런 생각들을 할까?.. 아니 '이런 생각들을  

어떻게 이렇게 실감나게 글로 옮겨 적을 수가 있을까?'하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너무 일상적인 일들의  

반복이라 '뭐야. 이건 나도 쓰겠다.'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 무렵 어김없이 등장하는 4차원적인  

캐릭터와 사건이 등장하면 난데없이 길에서 외계인이라도 마주친 같은 황당함.

 

그럴 때면 2차원의 종이와 글자들이 순식간에 3차원의 공간 속으로 떨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었는데  

'악기들의 도서관'이 딱 그랬다. 하지만 하루키나 김중혁의 이야기가 유치하거나 황당하게만 생각되지 않는  

건 그냥 어쩌다 잘 걸어가다가 한번씩 발을 삐끗했을 때와 같이 심각하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일탈을 경험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사실 마음같아서는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해주고 이 책 속에서 내 마음 속으로 걸어들어온  

멋진 말들이 얼마나 일일이 열거하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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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선뎐
김점선 지음 / 시작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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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김점선을 몰랐다. 아니 사실 지금도 잘은 모른다. 하지만 <점선뎐>을 읽고 난 후 내 머리 속에 김점선하면

왠지 모르게 기분 좋은 웃음만이 감돈다. 두 돌도 안된 아들을 인격체로 대해야 한다며 세상사의 부정적인 면도

서슴없이 이야기하고 공공질서를 지키지 않은 동네 불량배들과 장장 네 시간 동안이나 맞짱을 뜨며 전혀 주눅들지

않고 두 시간이나 산넘고 물건너 도착한 박완서 선생님 댁에서도 그저 마당에 잠시 쉬었다가 다시 돌아오는

엉뚱함을 지닌 김점선은 그녀의 작품이니 화풍이니 뭐든 잘 알지 못해도 충분히 인간적으로 매력이 철철 넘친다.

그러니 처음 살짝 겁나는 인상을 풍기는 그녀 주위에 그녀를 향한 짝사랑을 고백하던 이가 왜 그렇게 많았는지

충분히 공감이 간다.

 

얼마전 지나가던 인터넷 기사에서 김점선 화백의 작고 소식을 들었다. 나는 그녀가 누구인지 심지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몰랐지만 왠지 누군가의 죽음이란 그녀와 나의 친밀도와는 상관없이 마음 한구석을 쓸쓸하게

만드는 경험이었는데 그 쓸쓸함이 출발이 되어 덥썩 집어든 저자의 마지막 작품은 그 쓸쓸함보다는 그녀의

밝은 그림들처럼 유쾌하고 엉뚱 발랄하기만 했다.

 

여느 자서전이나 평전처럼 자신의 대단했던 일대기를 있는 대로 뽐을 내며 써내려간 것도 아니고 자신의

지나치게 외골수적인 면을 미화시켜 말하는 수고도 하지 않았고 문체마저도 기골이 장대한 그녀의 외모만큼이나

씩씩하기까지 하다. 그러니 누군가의 자서전을 읽기 시작할 때면 의례 느끼게되는 위압감이나 중압감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고 읽으면 읽을수록 왜 좀 더 일찍 그녀와 친해지지 못했을까하는 아쉬움만 커져갔다.

 

어린 시절부터 남들과 어떻게는 다르게 살기위해 일부러라도 기를 쓰고 살고 마음에 들지 않고 올바르지 않는

일에는 꼭 무슨 일이 있어도 시시비비를 가려야만 직성이 풀리고 자식의 상견례와 결혼식까지도 그런걸 왜하냐며

도리어 화를 내는 정말 딱 봐도 기인에 가까운 예술인 김점선이지만 그녀의 어린 시절의 감성을 성인이 된 후에도

간직하는 모습과 병에 걸려 죽음에 가까운 남편의 모습을 황홀이라 표현할 줄 아는 겉보기엔 너무 씩씩해서 언뜻

무시무시한 기운을 풍기기도 하지만 안으로는 부드러운 감성과 사랑을 담고 있는 그녀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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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운의 숏컷 - 개정 증보판
김지운 지음 / 마음산책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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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프리미어>였나 <씨네 21>에서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김지운 감독의 유년기에 있었던
에피소들가 실린 글을 무척 재미나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그런지 <놈놈놈>처럼 스타일리시한
영화를 봐도 내 머릿속에 김지운 감독이란 이미지는 일단 유머러스하다. <김지운의 숏컷>은 그 때
내가 읽었던 어린 시절의 회상과 평소 김지운 감독의 생각들(평범한 듯하지만 어딘가 이상한),
영화를 만들며 함께 했던 배우들에 대한 추억이나 인상, 세 편의 영화 제작기까지.. 김지운의 모든
것이라고 하기엔 부족하지만 이제껏 영화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그의 면모를 조금은 들을 수 있다.

첫 페이지를 열면 자칭 "피카소 김"이라 불리었다던 자신의 유년기를 꺼내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근데 그 이야기들이 어린 시절부터 "나 사실 엄친아였다."라는 식의 자랑 퍼레이드가 아니라 무슨
꽁튼가 싶을 만큼 웃긴다. 조그만 아이였던 시절부터 식음을 전폐하고 밤낮으로 그림을 그리고 식구들이
불을 다 꺼버리자 울면서 그림을 그렸다는 전설을 들려주고 어린시절부터 유달리 감성적이어서 TV에서
잔인한 장면을 본 후 쇼크로 기절을 해서 "용가리 통뼈약"을 먹었다는 얘기까지..
이런 어린 시절을 보내는 사람이 다 있다니하고 감탄(?)하게 된다.

<장화 홍련>을 제외한 다른 그의 영화들을 보면 아무리 심각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유머가 나오고
유머로 인해 황당함까지도 유발시킬때가 있는데 그의 책을 읽으면 왠지 지금까지 형성되어있던 김지운이라는
이미지는 왠지 뒤죽박죽이 되어버린다. 자기 말로는 말주변도 없고 이상한 상황(혹은 아무것도 아닌 상황)에서
얼굴이 붉어지는 감성적인 사람이라하지만 책을 읽으면 거의 책 한장꼴로 웃음이 터진다. 뭐 박장대소할 수준의
유머라 할 순 없어도 독특하구나하는 정도의 웃음은 된다.

그런가하면 영화의 이야기를 그렇게 시원시원하게 잘 풀어가는 사람이 사람 많은 곳도 별로 안좋아하고 술도
못마시고 술마시자 그러면 좋은 커피숍을 소개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읽으면 읽을
수록 그의 짧으면서 가벼운 듯한 글 속에는 누구보다 생각이 깊고 감성적인 김지운이라는 사람의 체취가 묻어난다.
그러면서도 김지운은 분명 어른(게다가 중년의 아저씨)인데도 불구하고 철없는 아이들이나 할 수 있을 듯한
상상력 넘치는 면모가 보이기도 하고 반면 그 누구보다 더 날카로운 비판의 잣대를 보이기도 한다.

그의 생각들과 인생을 영화 몇 편으로 모두 보여줄 수 없듯이 이 책 한 권으로 그를 모두 알게됐다고 하면 물론
100% 거짓말이지만 이 책을 읽게 되면 10명 중 8명 정도는 그의 팬이 되리라고는 장담한다. 그만큼 숏컷이지만
많은 걸 담아놓은 이 책은 그 가치를 충분히 하며 김지운이라는 사람의 매력을 한층 끌어올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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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요나라 사요나라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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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의 죽음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아이의 살인 용의자로 지목된 아이의 엄마, 그 엄마가 공범이라고
밝힌 이웃집 남자와 그의 아내의 이야기다. 추리 소설처럼 시작된 소설이지만 사실 <사요나라 사요나라>는
사랑 이야기다. 작가 자신이 그렇게 밝혔다. 두 번 다시는 쓰지 못할 연애 소설이라고..
물론 전적으로 그 의견에 찬성하진 않지만..

이 소설은 분량도 적은 이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인물들 간에 조금씩 드러나는 비밀스러운 과거지사가
읽는 이로 하여금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이야기가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희귀한 이야기도 아니고 가슴을 파고들 만큼 슬프거나 감동적이지도 않지만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의
심리를 끝까지 파고 들어 독자로 하여금 마음이 지치도록 만든다.

그런 면에서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 <일요일들>을 읽을 당시 느꼈던 다소 나른함마저 느껴지던 분위기와는
정반대의 기운을 뿜어대는 것이다.


그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던 주인공들이 알고 보면 평생을 살아가며 누구도 겪지 않을
경험을 겪고 결코 얽히고 싶지 않는 종류의 관계를 맺어가며 살고 있다는 설정은 어떤 면에서는 너무나
소설적인 설정처럼 보여지고 또 한편으로는 과연 우리는 그렇지 않을까..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우리는 남들에게 잘 보여지기 위해 애써 태연히 괜찮은 척 할 때도 있고.. 인간으로서 도저히 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면 대놓고 욕을 해대지만 자신이 그 입장이 되는 순간 모든 것에 관대해지거나..
혹은 오히려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것이 바로 소설 속에서 벌어지는 여러가지 순간들은 우리는 철저히 가해자의 시선으로 혹은 피해자의
시선으로만 보고 판단내릴 수 없는 이유일지도 모르고.. 그렇기 때문이 이 소설이 너무나 소설적이거나
혹은 너무 현실적인 느낌을 주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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