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퀴즈쇼 - 2판 ㅣ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전 TV에서 장기하, 올해 마지막 이십대를 보내고 있는 장기하가 스물아홉이란 나이에 대해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사회에 첫발을 딛고 적응해야하는 나이라는 말을 하는 걸 보고 나만 그렇게 느낀 건 아니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서른을 코 앞에 (정말이지 코 앞..) 두고 갑자기 덜커덩하고 가슴이 낭떠러지로 뚝 떨어지는 듯한 기분을 이따금씩 느끼곤
하는데 무언가 이루어놓고 있어야만 한다는 강박감에 아찔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김영하의 소설 <퀴즈쇼>를 만난 거다.
이십대, 그것도 파릇파릇한 이십대 초반이 아니라 중반을 넘어 후반을 향해 가고 있는 이십대에게 말을 전하고 있었다.
그것도 마치 롤러코스터와 같은 구성으로 산뜻하게.
소설 책 한 권을 읽었을 뿐인데 세헤라자드에게 천일 야화라도 들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 소설을 어떻게 정의내려야 할지 각 장을 읽을 때마다 내가 내리는 정의가 달라졌다.
별 걱정 없이 그럭저럭 살고 있던 민수라는 인물이 있다. 하루종일 집에 들어앉아 미드를 다운받아 보고 책을 읽고
그야말로 무난하게 살고 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할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인생 자체가 거의 180도 변화를 겪게되는데
다름아닌 할머니께서 생전에 남겨놓은 어마어마한 빚으로 인해 살고 있던 집에서는 쫓겨나고 일자로 눕게되면 꽉 차는
고시원에 자리잡고 이어지는 생활고로 인해 편의점 알바를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평소 자주 드나들던 인터넷 채팅방인
"퀴즈방"에서 어떤 이가 TV 퀴즈쇼에 나가 2등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도 도전하지만 어이없이 탈락하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춘성이란 사내가 접근해 와서는 자신에게 천만원짜리 수표를 내밀며 어떤 제안을 하게 되며 다시
한번 이민수의 삶은 변화를 겪게 된다.
소설을 읽게 되면 도무지 작가의 목소리를 가늠할 수 없는 소설이 있는가하면 몇 문장만 읽고도 작가의 목소리가
간파되는 작가가 있는데 아무래도 김영하는 후자에 속하는 작가가 아닐까 싶다. 나름 김영하라는 작가를 몇 마디 말로
그려보자면 시니컬함, 그러면서도 엉뚱함, 유머러스함, 과하지 않음.. 같은 몇 가지 특성들이 떠오른다.
<퀴즈쇼>는 이 모든 특성들이 등장하는 인물마다 독특하지 않은 인물들이 없는 인물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소설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가장 좋은 점수를 주고 싶은 점은 작가는 시종일관 사춘기에 이어 두 번째 과도기를 겪고 있는 듯한
이십대들을 향한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점이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산에 들어가 도를 닦았다면
득도를 했을지도 모를 시기를 공부에 올인하며 무엇인가를 향해 (아니 솔직히 성공을 위해, 남들보다는 한걸음이라도 더
앞서기 위해) 달려 이십대에 이르렀는데 또 다시 30대, 40대가 되기 전에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달려야하는 이십대를
위로하며 격려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