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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춤
조정래 지음 / 문학의문학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처럼 시국이 어수선하다는 말이 와닿았던 때도 없었지 싶다.
원래가 정치, 경제쪽으로는 거의 문외한인 편이라 여권과 야권의 싸움이야 내겐 옆집 개싸움만도 못한
관심사였고 기업의 부정부패야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했던 거라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허수아비춤>의 작가님께서 그런 나의 뒷통수를 후려치셨다.
이른바 '경제 민주화'. 너무 없었던 일이라 기업이 투명해야한다는 것이 그저 전해져오는 속담인 줄만
알았던 내가 노작가의 정석과 같은 말에 순간 조금 부끄러워졌다.
작가님의 말씀을 빌리자면 이 작품을 쓰는 내내 우울하셨다는데 나는 이 작품을 읽는 내내 씁쓸했고
생각이 많아졌다.
좋은 글과 좋은 작가는 시대상을 충분히 반영하고 잘못된 것이 있다면 비판할 줄 알아야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또박또박 너무 바른 말만 하고 훈계조로 이야기해댄다면 그 글은 그 즉시 교장 선생님의
훈계만큼이나 지루해진다.
그런 점에서 <허수아비춤>은 풍자적이다.
예전에 한창 한국단편문한을 내리 읽었던 때가 있었는데 그 한국 문학을 이끌어가는 것이 바로 이 풍자와
해학이었는데 조정래 작가님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바로 그것이 읽힌다.
아무리 남녀 평등을 성토하고, 가상의 세계인 영화, 드라마에서 여성 대통령을 만들어내도 아직까지
대한민국은 수컷들이 지배한다.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아마 <허수아비춤>을 읽기 쉽진 않을 것
같은데 이 소설은 시종일관 남자들이 주체가 되기 때문이다. 그 옛날 궁궐에서 빈번히 일어났던 여자들의
암투만큼 치열하면서 치졸한 남자들의 싸움이 2010년 여기에 또다시 재생되는 것이다.
대한민국. 매년 발표되는 세계 부패지수에서도 순위권에서 한참이나 내려가야 확인 가능하고 학연, 지연,
뇌물 따위의 말들이절대 사어(死語)가 되지 않을 나라, 그 대한민국 국민들이 가장 착각하고 있는 것이 바로
나라의 주인이 자신들일거라 생각하는것인데 <허수아비춤>은 정치, 사회, 언론계까지 장악한 기업인들의
입을 통해 그것이 왜 착각이고 허상인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허수아비춤>에서 일광그룹을 위해 온갖 술수를 부리는 자들의 면면을 보자면 사회 지식층에서도 선두를
진두지휘할 인물들로 채워져있다. 하지만 그들이 돈이라는 신을 모시기 위해 하는 일들을 보자면 시정잡배들
보다 나을 것이 없다. 돈에 팔려 여기저기 거처를 옮기는 노예들처럼 머릿 속에 손익계산서를 이리저리
굴려가며 회사를 옮겨다니고 자신보다 강한 자에게 썩은 고기라도 얻어내려 머리를 조아리는 하이에나들처럼
굽신거린다.
물론 이 소설 속에도 국민들을 대변해 정의를 구현해 줄 정의의 사도들이 등장하기는 한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인정하긴 싫지만) 정의를 실현하기에 기업을 중심으로 연결된 끈들이 너무 많고도 견고한 반면
정의를 지지하는 지지대는 솜방망이만큼이나 미약한 것이 현실인 것이다.
요즘처럼 언론이 언론의 제구실을 다 하지 못하고 역할을 회피하는 때에 조정래 작가의 <허수아비춤>은
어쩌면 고마운 작품이다. 어떤 시사고발 기사보다 더 가치있는 조정래 식의 풍자는 더 큰 효과를 발하므로.
그 옛날 학자들이 무지 몽매한 백성들을 깨우치게 하고 열린 사고를 하게 이끌었듯이 조정래 작가 또한
작가의 직분을 까먹지 않고 생각하지 않는 사는 사람들에게 생각이라는 걸 하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