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듀로이 재킷과 청바지, 그리고 가족 스캔들
데이비드 세다리스 지음, 박중서 옮김 / 시공사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지금까지 읽었던 책 중에 "..가족 스캔들"처럼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던 책이 있었는지 한참 생각해봤는데
역시나 없다. 이 작품을 읽기 전에도 뭐 딱히 내용을 예상해보거나 사전정보를 수집한 건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런 작품일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이 작품을 몇 줄로 간단히 요약하기엔 소소한 (그러나 약간은
기괴하고 어처구니 없는 사건들의 연속이라서) 좀 힘들기도 하고 그렇다고 해서 큰 주제 의식을 품고 있는
것 같지도 않으니 그냥 주인공 데이비드 세다리스라는 인물에 대해 논하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을 대충
설명할 수 있을 것도 같기도 하다.

일단 데이비드는 게이에 강박증(무슨 일이든지 시간 맞춰 해야지 안그러면 정서 불안에 빠진다)과 편집증
환자에 게다가 지나치게 소심하기까지하고 어떨 때는 과대 망상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게다가 굉장히
수다스럽기도 해서 평론가들이 우디 앨런을 닮았다고 했는데 내가 보기엔 우디 앨런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거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자신의 일대기만 그려놔도 충분히 특이할만 하지만 거기에다가 데이비드를 능가할 만큼 독특한
성격을 가진 가족들의 활약까지 더해진다. 세다리스 가 사람들 중 가장인 아버지는 굉장한 허풍쟁이에 그
허풍이 어린 아이들에게도 예외없이 이어진다. 또 어머니는 아침부터 술을 마시며 차와 함께 마시면 취하지
않는다는 이상한 논리를 편다. 그런가하면 큰 누나는 사람보다 동물을 더 상위로 치고 남동생 폴은 입만
열면 육두문자가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면 드러내기 꺼려할 대한 이러한 점들을 작가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사실 그런
성격과 성향의 사람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겠는가.. 난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면서도 배꼽 빠지게 웃기게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그 유머라는 게 모든 평범한 사람들이 공감할만큼 대중적이진 않기 때문에 첨엔
'..뭐야.. 뭐 이런 사람이.. 혹시 변태아닐까?'.. 혹은 '이것도 글이라고 써놨나?'.. 등등 온갖 비난들이 내
머릿 속을 채웠지만 계속 읽다보니 내가 또 언제 이런 작가를 만나겠어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건 아마 그 이상한 얘기들과 사람들에 내가 서서히 물들었거나 아니면 사실은 그렇게 기괴한 이야기가
아니라서 그런 건 아닐까..

몇몇 사람들 중에 소설은 모름지기 이러이러해야 한다라는 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시간도 공간도
뒤죽박죽인데다가 또 중간에 어느 부분에 가서는 자신의 말도 안되는 망상만으로 몇 페이지를 할애하는 이
작품이 낯설고 탐탁치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지 편견없이 바라볼 수 있는 자신 (혹은 안목)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한 마디로 요약하기 무지하게 애매한 작품을 좋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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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둑 1
마커스 주삭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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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전혀 없었던 상태에서 이 작품을 읽기 전 <안네의 일기>와 어깨를 나란히
할만하다는 평가에 대해 의아해 했었다. 사실 책을 펼쳐들고도 초반에 등장하는 죽음의 신의 자기 소개서와
안네 프랑크는 전혀 연결이 되지 않았다.

첫 장에서부터 당신은 죽을 것이라는 당연하지만 누구에게나 섬뜩할 만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사신은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면서 온 인류와 연관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하지만 사신이 등장하는 건 독자들을 겁주기
위한 방편이 아니라 자신과 세 번 마주쳤던 (영혼의 상태가 아닌) 한 소녀의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서다.


리젤 메밍거는 2차 대전이 한창 진행중일 때 독일의 작은 도시 몰힝에 있는 한스와 로자의 집으로 입양된다.
동생과 함께 오기로 되어있었지만 동생은 몰힝으로 오기전 이미 죽음의 신과 조우해버리고 결국 리젤 홀로
남겨진다. 남동생을 눈이 내린 차가운 땅에 묻고 돌아오던 날 리젤은 우연히 땅에 떨어진 책 한 권을 발견하고
그 책을 가슴에 품고 한스와 로자의 집으로 온다. 이렇게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했던 리젤은 이후 한스에게
글을 배우고 책을 좀 더 읽고 싶어하는 욕망을 키워나간다. 그리고 그 욕망이 결국엔 리젤에게 책도둑이라는
별명을 선사한다.

사실 두 권의 책을 몇 줄로 요약하는 일은 어렵기도 하고 한편으로 책의 재미를 한 단계 떨어뜨리는 일처럼도
보이지만 <책도둑>의 대충 줄거리.. 아니 시작은 이렇다. 하지만 이 책은 '소녀가 책을 훔친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책을 훔치고 그 책이 소녀에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냐.'가 훨씬 중요하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 소설의 배경은 2차 세계 대전의 독일인데 75년생인 작가의 글치고는.. 또 그보다 더 어린
내가 읽기에도 지나치게 현실감있고 더불어 마치 내가 1940년대 공습 경보가 울리고 폭탄이 떨어지는 독일
몰힝에 있는 듯한 현장감, 전쟁과 죽음을 바라보는 깊이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전쟁을 배경으로 하면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사람이 죽음의 신이라니.. 기발하면서도 어찌보면 너무 비극적인
설정이 아닐 수 없었다. 특히 사신마저 지긋지긋해하고 감당하기 힘든 전쟁으로 인해 탄생하는 죽음들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전쟁이 얼마나 가치없고 무의미한가를 재확인 시켜 주고 있다.


이 작품을 과연 몇 마디 찬사로 축약해서 표현할 수 잇을지.. 아니 내가 과연 그럴만한 역량을 지니고 있는지부터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었지만 이 책을 읽기 위해 몇 번이나 도서관을 헛걸음해야했던 수고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단 생각에는 변함이 없을 만큼 만족스러운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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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척 하고 성경 말씀대로 살아본 1년 - 하
A.J.제이콥스 지음, 이수정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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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나는 어떠한 종교도 따르지 않는다.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필사적으로 (여러 형태라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의문스러운 점은 왜 항상 역사 속에서 일어났던 비교적 규모가 큰
전쟁의 뿌리에는 늘 종교 갈등이 있는지, 신을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는 자에게 가난 또한 왜 그렇게
악착같이 따르는지가 의문스러울 뿐이다.


정말 신이 있다면 왜 아무 죄가 없는 아프리카의 아이들이 변변한 치료 한 번 받아 보지 못하고 죽게
하는지.., 왜 신의 이름을 이용해서 제 뱃속만 채우는 이들에게 시원하게 벼락 한 번을 선물해주지 않는지
궁금했다.

이렇게 나는 종교를 믿지도 않으면서 종교란.. 그리고 신이란 언제나 우리가 필요할 때 도움을 주어야하지
않나하는 생각을 막연히 그리고 당연히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느님이 계시긴 할테지만 내 눈으로 본 적도 없고 또 하느님의 존재의 필요성을 그다지 느끼지 못했던 저자
A.J. 제이콥스는 용감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무모하다 해야할 지 모를 프로젝트를 기어이 시작하고야 만다.
유대인으로 태어나서는 성경 말씀대로 살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는 구약 성경을 시작으로 해서 중요 계율
들을 정리해서 그대로 지키려 애쓰는데 대부분의 말씀은 '문자 그대로'를 기본 지키기로 하면서도 조금 난감한
문제들은 '문자 안에 숨은 의미'를 파악해서 행동으로 옮긴다.

그는 모든 사람이 기피하는 "여호와의 증인들"에 소속된 사람과 대화를 하고 오히려 여호와의 증인측 사람이
먼저 자리를 뜨도록 만드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하고 자녀를 엄하게 다스리라는 가르침에 따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들에게서 등을 보이기도 하며, 십계명 중 "거짓을 말하지 말라"는 계명을 지키고자 많은
사람들의 공공의 적이 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그냥 어차피 구약이든 신약이든 까마득히 오래전에 쓰여져 있으니 그 계율들을 그저 현재 상황들에
맞게끔 지켜나가면 안되나하는 생각이 들고 "음.. 저건 너무 융통성이 없네.."하고 탄식을 내뿜게 만드는 대목도
있었지만 저자는 초지일관.. 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더 계율을 잘 지키기 위해 속임수도 쓰지 않고 착실히
행했다.

무엇보다 그의 장점은 그렇게 자신이 시작한 일에 대해 책임을 지고 열심히 공부하고 배움에 있어 상대가 누구든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사실 약속 중에 가장 지키기 힘든 게 자기 자신과의 약속일텐데 (뭐..그쯤 안지키면
어때?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테니까) 저자는 일년이라는 (정확히 387일) 결코 짧지 않은 시간동안 종교의 빛과
그림자, 모순과 한계까지 겪으면서도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 한 걸음씩이라도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저자는 수많은 종류의 성경과 같은 신의 이름 아래에 무수히 많은 종파들과도 교류하며 보다 영적인 삶을 깨닫고자
했지만 사실 종교적 깨달음도 깨달음이지만 그가 자신의 인생을 보다 넉넉한 시선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안목을 가지게 된 것이 더 큰 수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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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척 하고 성경 말씀대로 살아본 1년 - 상
A.J.제이콥스 지음, 이수정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그 책 재밌나? 진짜 재미없어 보이는데.."

나, - "완전 재밌는데.."

 

그렇다. 성경 말씀대로 일년을 살았다는 남자의 얘기가 생각보다 재밌다. 아니 "생각보다" 보다는
"아주" 재밌다.

나는 성경 말씀대로라고 하길래 당연히 뭔가 진지하고 그러면서도 고리타분해서 지루할꺼라고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이 프로젝트 시작하기 전 브리태니커 백과 사전을 A부터 Z까지 읽고는 한권으로 요약했다는
저자의 이력을 보고는 이 사람은 뭔가 이슈가 될 만한 행동을 좋아하고 튀는 걸 좋아하는 사람같다는
편견이 생긴터라 그렇지 않아도 별 관심도 없는 성경을 읽고 분석해서 그 성경의 가르침대로 1년을
살았다는 저자의 이야기가 그렇게 썩 구미가 당기질 않았다.

하지만 일단 책을 펼쳐들고 저자가 솔직하게 써내려간 서문을 보고는 마음을 완전히 빼앗겨버렸다.
이 사람은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서 혹은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서 성경 말씀을 공부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또 나아가서는 자신의 어린 아들에게
자신이 갖고 있는 (잘못 알고 있을 지도 모를) 종교에 대한 무지를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소망에서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그는 성경 말씀대로 살기 위해 개역 개정판 성경(Holly Bible)을 시작으로, 구어체 성경부터 장중한 문체의
성경, 10대 소녀용 잡지같은 성경, ‘바보와 멍청이를 위한 성경’, ‘대홍수 때도 읽을 수 있도록 방수처리 된
성경’이나 ‘힙합마니아를 위한 성경’ 등 각계 친구들이 보내준 성경들과 함께 성경 주해서 대여섯 권까지
쌓으면 허리에 찰 정도로 많은 성경을 모아 성경에 적힌 계율, 지침, 조언, 금언 하나하나를 파워북에
기입했다.

뿐만 아니라 영적 자문위원단이라는 성경적 모험의 멘토들도 구해 놓고는 자신의 영적인 1년 간의 삶을
착실하게도 준비한다.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 드디어 1년의 첫날부터 그는 자신이 정리해 놓은 규율들을
자신도 모르게 어기게 되진 않을까하는 걱정에 오히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사실 말이
1년이고 성경이지 그 얼마나 방대하고 기나긴 고난인지 성경 공부를 체계적으로 해본적도 없는 나도
어렴풋이 느끼겠는데 주위 사람들에게 "1년동안 성경 말씀대로 살꺼야!" 선언해버린 저자의 부담감은
오죽했을까..


하지만 저자는 자신이 서문에서 밝혔던 다짐들을 착실히 지키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 하루 하루를 착실히
기록한다. 그래서 책을 읽다보면 처음엔 혼자 하는 기도조차도 어색해하던 저자가 하루 10분씩 세번에
행하는 기도 시간을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는데까지 이르는 모습을 보면 왠지 그가 대견해 보이기도 하고
대단해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의 결심이 조금 흔들리거나 약해질 때마다 자신의 어린 아들을 떠올리며
(혹시 그아이가 나쁜 길로 빠지진 않을까 혼자 상상하는 부분은 정말 심하게 공감이 갔다) 다시 마음을
다잡는 장면에서는 마음이 찡하고 따뜻해졌다.

상권에서는 그의 준비 과정과 성경 말씀대로 살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자신의 불가지론적 입장을 고수하는
과도기적 입장을 고수하는 그의 모습이 펼쳐졌다면 점점 자신이 바라던 대로의 결과를 얻어가는 그의 남은
1년의 삶이 펼쳐질 하권이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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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어둠 - 우울증에 대한 회고
윌리엄 스타이런 지음, 임옥희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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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는 사람들이 그걸 경험하면서도 경감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에 인내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 사람들은 날마다 다양한 고통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자비롭게도
그런 고통에서 풀려나는 것이다.

....(중략) 그러다가 우리는 마침내 자연스런 보상으로서 궁극적인 고통의 유예 기간을 맛보게 된다.

 
그러나 우울증에는 이에 같은 구원에 대한 신념, 혹은 궁극적인 회복에 대한 신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고통은 가혹하다. 이처럼 가혹한 상황을 더욱 못 견디게 만드는 것은, 손쉬운 치유책이 가까운 장래에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스스로가 알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우울증이라는 병을 아예 질병으로도 취급하지 않거나 우울증에 걸린 사람을
환자로도 취급하지 않았다. 그러니 당연히 자살이라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 우울증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당사자가 아닌 이상 무관심했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나 역시도 우울증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만 있을 뿐 그 증상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조차도 부족했음을 깨달았다.

예전에 프리모 레비의 작품을 읽기전에 그가 아우슈비츠에서도 살아남고도 왜 말년에 자살을 택했나하고
의아했었고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그 또한 나역시 그의 우울증이 얼마나 그에게 치명적인 독이 되었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유명한 작가인 윌리엄 스타이런은 어느 날 자신이 오랜 세월동안 우울증이라는 늪에 빠져 있었음을 깨닫고
이 우울증이 어쩌면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의 우울증은 흔히들 알고
있는 증상들보다 심해서 그는 정신적 고통 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몸조차 자신의 의지대로 하기도 힘들만큼의
육체적 고통도 함께 찾아왔다.앞으로 살아갈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어지고 타인과의 평범한 대화조차도
불가능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해지자 그는 정신과 상담의를 찾아가 우울증을 치료하기로 마음 먹는다.


하지만 자신이 우울증에 걸리기 전엔 그도 자신의 지인들이 우울증으로 고통받고 그 결과 자살이라는 자기
살해의 한 방법으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별로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고 그다지 자살과 우울증을
연결지어 생각지도 않았다. 그러나 우울증의 증세가 심각해지자 그도 어느 순간 자신과 자기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할 지도 모르겠다고 자각하고 그때부터 별도움이 되지 않는 정신과 상담과 약물을 끊고 정신 병원에
입원하기로 결심한다.

이 글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이 책을 우울증을 앓고 있거나 혹은 앓지 않았다하더라도 우울증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울증에 대한 회고"이니만큼 저자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우울증과 그에 뒤따르는 고통들, 또 그것을 극복해내는 용기들, 또 그것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공식적으로 회고할 수 있는 용기 등이 모두 솔직하고도 담담하게 쓰여져 있어 자신은 경험도 하지 않고 보고와
통계에 의존한 여느 기록서들과는 천지 차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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