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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만큼 거룩하라 - 더 나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는 법
찰스 피니 지음, 임종원 옮김 / 브니엘출판사 / 201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더 나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는 법
이 책은 의롭게 된 후에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대다수 그리스도인들은 칭의, 성화,
영화 라는 단어의 정확한 의미는 잘 모르지만 성경 공부를 비롯한 다양한 시간을 통해 여러 번 접해본 단어일 것이다. 책을 통해 성화가 무슨 의미인지 알아볼 수 있을 듯 하다.
저자인 ‘찰스 피니(Charles G. Finney, 1792-1875)’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더라도 교회를 꾸준히 출석하는 성도라면 설교 시간에 들어 본 이름일 것이다. ‘제2의 대각성운동’을 이끌었던 설교자인 찰스 피니는 끊임없이 기도와 말씀을
통한 성화의 과정을 강조 하였다.
찰스 피니의 신학은 흔히 존 웨슬리의 신학과 대비되기도 한다. 웨슬리가
하나님의 예비된 은혜를 떠나 인간의 의지로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견해를 주장하는 반면, 피니는
누구든지 전심으로 찾으면 더 높은 영적인 삶을 누리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찰스 피니는 따로 설교
원고를 준비하지도 않았다. 매일 새벽 일어나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그날 집회에 필요한 성경 말씀이 어떤
것인지를 하나님께 물었다. 필요한 성경 말씀을 받으면 계속 그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이 다만 자신의 입을 사용하시어 성령의 인도로 회중에게 말씀하실 것을 구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세 가지 중요한 교리, 즉 칭의, 성화, 영화에 관한 교리와 친숙해져야 한다. <칭의>는 어떤 사람이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일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이 되는 과정에서 맛보는 경험이다. <성화>란 의롭게 된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를 깊이 인식하면서 사랑에 기초한 거룩한 삶, 곧 우리를 사랑해서 구원해주신 거룩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뜻이다. <영화>는 의로워지고 성화된 사람들의 신체적인 죽음과
육신적인 부활이 포함된다.
나는 이미 구원을 받았으며(칭의),
나는 지금도 구원을 받는 중이며(성화), 나는
언젠가 완전한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영화)
성화의 단순하고 일차적인 의미는 하나님께 성별된 상태이다. 성화한다는
것은 거룩한 용도를 위해 따로 구별해놓은 것, 즉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어떤 것을 성별해두는 것이다. 그러기에 성화의 상태란 성별의 상태, 또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따로 떼어두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구약과 신약에서 훤히 드러나는 성화라는 용어에 관한 가르침이다.
온전한 성화란 우리의 영혼과 육신을 이루고 있는 본질에 어떤 변화가 일어난다는 의미가 아니다. 나님의 법은 이런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자연스러운 열정이나 충동처럼
타고난 성품을 이루는 체질적인 특징을 완전히 없앤다는 의미가 아니다. 자연스러운 애정이나 분노를 완전히
없앤다는 의미가 아니다. 건강하지 못할 정도로 마음을 흥분시킨다는 의미가 아니다. 몸과 마음의 모든 역량을 언제나 한결같이 온 힘을 다하여 쏟아부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항상 똑 같은 수준으로 감정, 의지작용, 또는 지적 노력을 요구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항상 하나님만이 직접적인
관심과 애정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단지 지속적인 마음의 평온한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죄나 죄인들을 향하여 아무런 거룩한 분노 없이 지속적으로 마음의 평정 상태를 유지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아무런 정의감도 없이 단지 연민으로 가득한 마음 상태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각자의 가치관, 환경, 관계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하거나 미워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 주변의 모든 관계에 대해 완벽한 지식을
구축한다는 의미도 아니다. 어떤 주체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게 무엇이든 어떤 주체에 대한 아무런 실수도 저지르지 않는다는 의미도 아니다. 서로 다른 이해 당사자들의 상대적인 가치를 정확하게 일일이 다 깨닫는 지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무지하지 않았더라면 마땅히 그렇게 할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여 모든 사람이 회심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앞으로
전혀 죄지을 가능성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경계심, 기도, 노력 따위가 이제 더는 필요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가 이제
더는 그리스도의 은혜에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성화된 영혼이라고 해서 어느 때든지 항상
자신의 감정과 행위가 완벽하게 옳다고 스스로 확신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진정으로
성화로 순순히 인정할 거라는 의미가 아니다. 순종을 확실하게 보장해주는 거룩한 습관을 형성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슬픔이나 정신적인 고통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다는 의미도 아니다.
온전한 성화란 하나님께 모든 역량을 현재 있는 모습 그대로 완전히 성별하는 것이다. 온전한 성화란 그런 역량 자체의 어떤 변화를 의미하기보다는 단지 그것을 원래 모습대로 올바로 사용한다는 뜻이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어떤 욕구나 감정을 완전히 죽인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일에 우리의 모든
존재를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 온전히 성별하는 것이다. 약속된 모든 것이 우리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인간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성화된 영혼은 일부러 죄를 짓지는 않을 것이다. 내주하시는 그리스도의
은혜와 능력에 가장 충실하고 완전하게 의지한다. 모든 알려진 하나님의 뜻에 우리 마음과 삶을 완전히
순응시킨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섬기려는 지극한 성향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임재가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깊이 있게 하나님과 친교를 나눈다는 뜻이다. 이미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알고 있는 것에 관한 지식을 얻기 위하여 시간의 부지런한 청지기가 되어, 그 일을 위해 자신을
성별시키는 것이다. 온갖 형태의 이기심을 완전히 없앤다는 의미 보다는 우리 이웃의 권리와 관심을 실제적으로
온 마음을 다해 인식한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필요하다면
사람을 선대하기 위하여 심지어 죽기까지 자기 자신을 부인하는 기꺼운 마음이다.
성화된 영혼은 어떤 다른 악을 저지르는 것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을 훨씬 더 크게 두려워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최고의 사랑이 의미하는 것이다. 만약
이 세상의 친구보다 하나님을 더 많이 사랑한다면 우리는 그 친구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을 더 크게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책의 앞부분에서 찰스 피니는 당시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하던 성화의 개념을 정의 해주기 위해 강론을 펼친다. 그렇기에 온전한 성화란 ~~~가 아니다. 와 온전환 성화란 ~~~이다. 를
지속적으로 반복함으로써 당시 청중과 독자들에게 성화의 잘못된 이미지를 지우는 것을 강조 하고 있다. 성화라는
단어는 마치 한 순간에 마법에 휩싸이는 것처럼 모든 것이 변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모습이 떠오르지만 그렇지 않다. 지속적으로 하나님과 예수님, 성령님을 의지하여 옛 자아와 끊임없이
싸우면서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대로 살고자 노력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거룩을 원하는 이들이 읽으면
좋을 책인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