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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명
김숨 지음 / 현대문학 / 2016년 8월
평점 :
"그럼, 너 혼자 왔냐?"
혼자만 살아 돌아왔다는 죄책감에 그녀는 보리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혼자만 살아 돌아온 게 죄가 되나? 살아 돌아온 곳이 지옥이어도?
「한 명」中 17p.
책의 몇 페이지를 채 넘기지 못하고 책을 덮어버렸다. 너무도 말이 되지 않고 믿기 힘든 이야기 였기에, 사실이 아닌 소설 속 허구의 이야기였음 하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아픈 이야기.. 여전히 진행중인 그 이야기.. 바로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 속에서는 언젠가 그렇게 될지도 모를, 위안부 피해자가 단 한 명뿐이라는 시점에서 할머니들의 실제 증언들을 재구성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남은 생존자는 단 한 명, 그리고 자신이 위안부였음을 밝히지 않고 살아온 다른 한 명의 위안부 할머니가 마지막 생존자를 만나기 위해서 버스에 오르면서 자신의 존재를 밝히고자 용기를 내는 여정의 이야기다.
그녀 또한 일본군 위안부였지만 세상 사람들이 그녀의 존재를 까맣게 모르는 것은, 그녀가 위안부 신고를 하지 않아서다.
그녀는 자신처럼 위안부 신고를 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가, 어딘가에 또 있으리란 생각이 든다. 창피스러워서, 너무 부끄러워서.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한 명」中 31p.
아무런 이유없이 부모,형제와 생이별을 한 어린 소녀들. 다슬기를 잡다가, 돈벌러 공장으로 가자는 말에.. 이유도 참 여러가지였다. 그리고.. '군인들이 데리고 잔다'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어렸던 그 소녀들에게 가해진 정말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 너무나도 끔찍한 역사.. 위안부의 존재는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요즘들어 뉴스에 많이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이기에 익히 알고 있다고 생각될지도 모를 위안부라는 슬픈 이야기. 하지만 실상은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참담하고 아프고 고통스럽고..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다. 자신들이 큰죄를 지은것도 아닌데, 자신이 원해서 그렇게 된 것도 아닌데.. 평생 수치심을 안고 숨기며 끔찍한 삶을 살아왔다. 개나 고양이 보다도 못한 그런 삶 말이다. 어떠한 말로도 돈으로도 보상할 수 없을 것이다. 차라리 위안부로 끌려가기 전의 삶으로 되돌려주면 모를까.
순덕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그녀가 물었다.
"네 이름이 뭐더라?"
"그러게, 내 이름이 뭐더라...... 사람으로 태어나 고양이, 개만도 못하게 살아서 이름도 기억을 제대로 못하나 보네......"
「한 명」中 98p.
평화의 소녀상. 혹은 위안부 소녀상이라고 불리는 동상이 있다. 단발머리에 두손을 꼭 쥔 채 맨발로 앉아있는 어린 소녀.. 바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모습을 형성화 한 동상으로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고, 그들의 명예와 인권회복을 위해 만든 조각상이라고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위안부 피해자들 만큼 이 소녀상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툭하면 철거해야 한다고 .. 일본정부는 10억 엔을 제시하며 그 대가로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양측 입장에서는 서로 민감할 수 밖에 없는 역사적 문제이기도 하다.
언젠가는 소설 속 설정처럼 진짜 한 명 만 남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아무도 남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면 잊혀질지도 모를 아픈 역사. .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침묵과 무관심 하기보다는 더 관심을 가져서 잊혀지지 않게.. 감추고 숨겨야 할 역사가 아닌 그들을 위로하고 또 남은 이들또한 더이상 상처받지 않게 지켜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좋은 데 가는 줄 알고 간 곳에서 애순의 몸은 낙서장이 되었다. 일본 군인들은 바늘과 먹물로 애순의 배에, 불두덩에, 혀에 문신을 새겼다. 그곳에서 소녀들의 몸은 소녀들의 몸이 아니었다.
그녀는 평택 조카가 원망스럽지만 원망하고 싶지 않다. 세상 그누구도 원망하거나 증오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용서할 수 없다.
그 한마디를 들으면 용서가 되려나?
신도 대신해줄 수 없는 그 한마디를.
「한 명」中 24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