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 이 둥근 가슴이 있는 한 난 괜찮아. 아직 괜찮은 거야. 그런데 왜 자꾸만 가슴이 여위는 거지. 이젠 더이상 둥글지도 않아. 왜지. 왜 나는 이렇게 말라가는 거지. 무엇을 찌르려고 이렇게 날카로워지는 거지.

 

「채식주의자」_ 채식주의자 中 43p.

 

노벨문학상, 프랑스 콩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불리는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분 2016년 수상이자 한국인 최초 맨부커상 수상작가라는 타이틀로 요즘 서점가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요즘 너도나도 읽어보겠다고 난리난, 그래서 9년전 출판된 책임에도 불구하고 베스트셀러 순위 1위에 오르고, 독서율을 급 높이는 효과를 톡톡히 하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뭐 그리 대단한 상인가 하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200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터키의 오르한 파묵, 현대 중국문단의 대표작가라고 꼽히는 옌롄커 등 주요 후보작가들을 제치고 수상을 했으니 어찌 대단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한강 작가가 권위 있는 이 문학상을 받을 수 있었던 일등공신으로  데보라 스미스의 번역이 젤 큰 몫을 한 공도 컸을 것이고, 쟁쟁한 후보들을 제쳤다고 해서 오르한 파묵을, 옌롄커를 능가했다는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문학을 세계에 알린 자랑스러운 작가임엔 분명하다.

 

그는 숨을 죽인 채 그녀의 엉덩이를 보았다. 토실토실한 두개의 둔덕 위로 흔히 천사의 미소라고 불리는, 옴폭하게 찍힌 두 개의 보조개가 있었다. 반점은 과연 엄지손가락만한 크기로 왼쪽 엉덩이 윗부분에 찍혀 있었다. 어떻게 저런 것이 저곳에 남아 있는 것일까.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약간 멍이 든 듯도 한, 연한 초록빛의, 분명한 몽고반점이었다. 그것이 태고의 것, 진화 전의 것, 혹은 광합성의 흔적 같은 것을 연상시킨다는 것을, 뜻밖에도 성적인 느낌과는 무관하며 오히려 식물적인 무엇으로 느껴진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채식주의자」_ 몽고반점 中 101p.

 

채식주의자는 서로 다른 듯 보이는 세가지의 중편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국엔 하나로 묶여 있는 연작소설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각각의 이야기의 주인공은이 달라 서로 독립된 주제들이 펼쳐지는 듯 하지만, 알고보면 하나의 이야기라는 말이다. 연작소설이라는게 조금은 특이하긴 했지만, 같은 이야기를 화자가 다르게 다른시점에서 이야기하니 이해하기엔 좀 쉬웠던 것 같다.

어린 시절에 개에게 다리를 물린 트라우마 때문에 육식을 거부하고 스스로 나무가 되어간다고 믿는 영혜와 그런 아내를 이해할 수 없는 남편, 처제의 엉덩이에 남아있는 몽고반점을 욕망하는 영혜의 형부, 그리고 동생과 남편의 불륜을 보고도 어쩌지 못한 채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인혜가 각각 화자로 등장한다.

 

평범한 삶을 살던 여자가 꿈때문에 채식주의를 선언하게 되고, 그로 인해 겪게 되는 주변사람들과의 마찰이라고 하기엔 그리 단순한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냥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건강한 채식주의가 아닌 집착에 가까운 채식주의도 이해할 수 없었다. 어쩌면 단지 채식을 선호한다는 의미보단 사회를 거부하나고 해야할까? 그녀의 행동 뿐 아니라 그런 영혜로부터 도망가버린 남편도, 폭력과 강압적으로 육식을 강요하는 아버지도, 진정 예술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그 욕망뒤에 감춰진 추함이었을지도 모를 형부도 다들 이해가 되지 않을뿐이었다. 술술 읽히는 반면에 이해가 쉽지 않은... 문학적 소양이 부족한 탓인가...

 

나는 이제 동물이 아니야 언니.

중대한 비밀을 털어놓는 듯, 아무도 없는 병실을 살피며 영혜는 말했다.

밥 같은 거 안 먹어도 돼. 살 수 있어. 햇빛만 있으면.

그게 무슨 소리야. 네가 정말 나무라도 되었다고 생각하는 거야? 식물이 어떻게 말을 하니. 어떻게 생각을 해.

영혜는 눈을 빛냈다. 불가사의한 미소가 영혜의 얼굴을 환하게 밝혔다.

언니 말이 맞아...... 이제 곧, 말도 생각도 모두 사라질 거야. 금방이야.

 

「채식주의자」_ 나무 불꽃 中 187p.

 

예전에 채식주의자는 영화로도 개봉했었다고 한다. 삼류영화같기도 하다지만 원작을 그대로 옮겨놨다고 하는데 조만간 찾아서 꼭 챙겨봐야 할것 같다. 나무가 되려는 영혜, 예술이라는 욕망으로 처제를 탐하는 형부 그리고 그 둘을 바라봐야했던 인혜까지. .. 그들을 이해하기엔 어쩌며 원작보다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애매모호한 주제와 내용들을 이해하기엔 영상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니까..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과 취향이지만 한강의 책은 채식주의자보다는 읽기에는 조금, 아니 많이 불편했고, 정치적인 성향이 많이 반영된 소설이긴 하지만 '소년이 온다'가 더 좋았고 더 많이 이들이 읽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조금더 익숙한 역사기 때문이기도 하고 더 봐주고 알아줬으면 하는 역사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어찌되었든 난 이전부터 한강이라는 작가를 알고 그녀의 책들을 읽기 시작했지만, 맨부커상을 받고 떠들썩 해지기 전에는 그리 대중적인 작가도 아니었을 것이고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한국문학에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결과적으론 잘된 일이다. 두루두루.. 어렵기는 하지만 매력이 있는 작가 한강~!! 앞으로도 그녀의 작품들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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