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인간
성석제 지음 / 창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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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초순이 되면 자전거를 타고 한강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이 꽤나 많이 등장한다. 그들 중에는 만에 하나쯤, 그러니까 0.01퍼센트의 확률로 대단히 드물긴 하지만 투명인간도 있다. 나부터 그러니까.

「투명인간」中 6p.

​한 남자가 한강 다리 마포대교 위에 서있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 '김만수'다. 머리가 이상하리만큼 크고 가느다란 팔다리를 달고 허약하게 태어나서 말도 더디고 매사 느려터진.. 좋은 말로는 마냥 착하고 순박한 인물이다. 주인공 만수를 중심으로 그의 형제자매와 아버지, 어머니 등 3대에 걸친 한 집안의 내력을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각각 일인칭의 시점 '나'의 이야기로 일제 강점기 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큰 사건들을 배경으로 그린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한편의 인생파노라마 라고 할 수 있다. 산골에서 태어나 도시락을 못싸온다는 이유로 회초리를 맞을만큼 가난하게 살다 부모의 손에 이끌려 도시로 나오게 된 순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쉴틈없이 살아온 그는 파란만장한 일대기. 만수를 기점으로 정말 많은 이들이 등장하여 격동의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시작하여 투명인간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을 작가 성석제만의 입담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나는 오래도록 신용불량자였고 그때 은행이나 장사하는 사람들이 나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경제적으로는 투명인간이었다. 사실 돈 모아서 부자 될 게 아니고 남들한테 자랑할 게 아니면 돈 많이 필요 없다. 투명인간이 되면 어차피 보이지 않는데 사람들에게 옷 자랑, 돈 자랑, 피부 좋다 자랑할 일이 뭐 있는가. 기본적인 생활만 해결되면 끝이다. 나는 시간이 나는 대로 여전히 사회생활을 하고 댓가를 번다. 다른 식구들도 마찬가지다. 그게 편하고 사람 사는 노릇을 하고 산다는 기분을 안겨준다.

「투명인간」中 363p.

가진것도 없고 잘난것도 없는 주인공 만수는 하루 스무시간 가까이 일하고 잠은 10년동안 하루 5시간 이상 자본 날이 손꼽을 정도에 억척스럽게 일을 하고, 미련스러울 만큼 헌신적으로 가족만을 생각하고 희생하고 지키고 열심히 일해왔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가족들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그 누구도 만수의 고단스러운 삶을 알아주지 않는다. 어쩌면 작가는 주인공 만수를 통해서 이 시대 40~50대의 가장들의 보편적인 모습을 담고자 했던건 아닌가 싶다. 많은 풍파를 겪고 힘들게 살아왔지만, 더이상은 주목 받는 삶이다라고 하기보다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시대의 우리 아버지들 말이다. ​물에 물탄듯 술에 술탄듯 흘러가는대로 늘 희생적이고 순종적이었고 늘 웃었던 만수는 왜 한번도 그 무시에도 반항 한번 하지 못했을까. 한번쯤은 '왜'라는 의문을 던지고, 한번쯤은 이의를 제기하고 또 한번쯤은 분노를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참으로 답답하면서도 안타까울 따름이다.

 

죽는 건 절대 쉽지 않아요. 사는 게 오히려 쉬워요. 나는 포기 한 적이 없어요.

「투명인간」中 369p.

​어릴 적 한번쯤은 꿈꿔봤을 법한 투명한 사람 투명인간. 다른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내맘대로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고 참 좋을 것만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투명인간은 단지 몸만 보이지 않는 사람을 뜻하는 건 아닌것 같다. 누군가에게 보이지 않는 사람.  간혹 회사나 가정에서 '투명인간 취급한다'라고 종종 말할 때 있다. 존재는 하고 있지만 존재감이 없고, 외모나 능력에서도 주목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 즉 물질 만능주의 사회에서 상실된 인간 혹은 소외된 인간. 이 모두가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이지 않을까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만 보고 걸어가고 있는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주변은 보지도 않고 다 이시대의 투명인간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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