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요일의 기록 - 10년차 카피라이터가 붙잡은 삶의 순간들
김민철 지음 / 북라이프 / 2015년 7월
평점 :
품절


책에 대해 여러 시절을 살아 온 지금, 나는 더 이상 책을 정갈하게 보는 것에 관심이 없다. 줄을 긋고, 생각을 메모하며 책을 못살게 굴고 싶다. 그렇게 못살게 굴어도 나는 그 책에 대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그 책을 읽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해야 할지도 모를 수준이니까.

 

「모든 요일의 기록」中 32p.

 

요즘들어 자꾸만 깜빡깜빡한다. 어제 일도 기억이 잘 안나는데... 심지어는 검색창을 띄워놓고 '나 뭐 검색할려고 했지?'하면서 멍~하게 있던 적도 있다. 그래서 책을 읽고 나서는 서평을 남기려고 하고, 맛있는 곳이나 여행을 다녀온 이후엔 꼭 짧은 글이나 블로그에 써서 기록으로 꼭 남길려고 한다. 하지만.. 남긴 글들을 다시 접했을 땐, 내가 그랬어?! 이 책이 그런 내용이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있긴 하지만.. 

 

어쩌면 내 상황과 비슷한 제목때문에 더 이 책이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같은 구절을 수백 번 읽어도 고스란히 잊어버리는 특별한 능력을 갖춘 10년차 카피라이터 김민철 작가.. 흔히들 생각하길.. 남자라 생각하기 쉬운 이름이지만 사실은 여자!!!라는 사실ㅋ어쨌든 평범한 일상일 수도 있는 그녀가 읽고, 보고, 듣고, 느낀 경험들을 머리가 아닌 기록으로 써내려간 한권의 책이다.

 

여행은 감각을 왜곡한다. 귀뿐만 아니라 눈과 입과 모든 감각을 왜곡한다. 그리고 우리는 기꺼이 그 왜곡에 열광한다. 그 왜곡을 찾아 더 새로운 곳으로, 누구도 못 가본 곳으로, 나만 알고 싶은 곳으로 끊임없이 떠난다. 그렇게 떠난 그곳에선 골목마다 프리마돈나가 노래를 한다. 이름 모를 클럽마다 라디오헤드가 연주를 한다. 나뭇잎까지도 사각사각 잊지 못할 소리를 들려준다. 햇빛은 또 어떻고, 들어본 적 없는 음악들로 세상이 넘쳐난다.

그 왜곡의 음악을 듣기 위해 오늘도 여행 계획을 세운다. 그 미세한 음악까지 놓치지 않을 정도로 귀가 열린, 마음이 열린 나를 만나기 위해 오늘도 어쩔 수 없이 여행을 꿈꾼다.

 

「모든 요일의 기록」中 130~131p.

 

처음 책을 읽을 땐, 평범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쓸수 있는 그런 평범한 일상들의 기록들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저자의 화려한 이력?들을 알고 나면 이 평범한 기록들이 있기에 그녀가 카피라이터로써 인상적인 아이디어들을 쓸 수 있지 않았나 싶다. 화려한 이력이라고 한다면야 '여덟단어', '책은 도끼다'라는 책으로 인문학에 대한 접근을 좀 더 쉽게 했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광고인이  박웅현 씨와 11년동안 함께 일하는 동료라는 사실과 우리도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네이버의 '세상의 모든 지식', e 편한세상의 '진심이 짓는다' 와 같이 유명한 광고문구들을 모두 그녀가 썼다는 점이다.

 

카피라이터라고 한다면 뭔가 창조적이고 반짝반짝한 아이디어들이 샘솟는 사람들이 하는 매력적인 직업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작가 본인은 스스로를 평범하다고 말한다. 특히 '기억'과 관련된 머리는 평균 이하임이 틀림없다고 스스로를 평가한다. 그렇다면 그 유명한 광고 문구들은 어떻게 나온 아이디어일까? 기억의 순간들을 글로 남겼다고 해서 모든게 다 기억되는 건 아닐텐데 말이다. 어쩌면 책이나 음악등을 통해서 그 감정을 배웠고 기억은 나지 않겠지만 그때의 어떤 감정이나 그 기억들은 몸 어딘가에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60살의 나를 모른다.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렇기에 그 모든 세월을 통과한 노인들을 볼 때면 늘 뛰어가서 사진을 찍는 걸지도 모른다. 그들 각각의 시간을 사진으로 찍으며 막연하게 나의 사간을 상상해보는 걸지도 모른다. 60이 되었을 때 나의 색깔, 그 상상만으로도 마음은 이미 핑크빛으로 두근거린다.

 

「모든 요일의 기록」中 190p.

 

10년차 카피라이터가 쓴 글이라고 해서 엄청 재미난 글들을 상상했었다. 하지만 막상 책을 펼쳐들고 덮을 때까지 재밌었다 라거나 웃겼다, 감동적이었다 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뭐 딱히 대단한 의미가 있는 글도 아니었으니까.. 단지 이 책이 어떤 면에서는 공감적이었다라고 할 수는 있을 것 같다. 무언가 경험해본다~라고 해서 그 경험들이 오롯이 내것이 되는 것도 아닐테고, 기록한다~라고 해서 모든 기록들을 다 기억할 수는 없다. 하지만 경험을 할때, 또 기억을 할때 뭐든 열심히 배우려하고 최선을 다하면 언젠간 그게 밑바탕이 되어 온다라는 걸 작가가 말할려고 했던 건 이런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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