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옹 혹은 라이스에는 소금을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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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줄 알았다. 지금껏 우리 가족 이외의 다른 가족들이 어떻게 사는지, 상상도 안 해봤던 것이다.

 

「포옹 혹은 라이스에는 소금을」中 39p.

 

뭔가 굵은 주제가 아닌,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려내는 일본의 대표작가 에쿠니 가오리. 소설에서 부터 에세이까지 폭넓은 작품을 써냈고, 특히 감각적인 문체로 써내려가는 연애 소설은 독보적이라 할만큼 두터운 팬층을 가지고 있는 작가라 할 수 있다. 공백없이 꾸준히 작품활동을 하는지라 아직 읽지 않은 책들도 수두룩 하다. 사실 읽지 않았다고 하는게 더 맞는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단편집들을 읽었을 때 종종 독특하다~!! 하는 느낌을 넘어서서 특이하다? 이상하다?!라는 생각이 들때가 있어서 잘 읽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오랜만에 다시 읽게 된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이라 반갑기도 했고, 제목에서부터 풍기는 호기심에 책을 선택하게 된 것 같다.

 

그날 밤, 나는 욕조 안에서 난생처음 우리 집을 조금 걱정했다. 언니와 우즈키를. 우즈키에게는 아사미 씨라는 또 한 사람의 엄마가 있고, 언니에게는 기시베 씨라는 또 한사람의 아빠가 있다. 그것이 만약 흔한 일이 아니라면, 우즈키나 언니에게는 앞으로 뭔가 안 좋은 일, 곤란한 일이 생기진 않을까? 막연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포옹 혹은 라이스에는 소금을」中 52~53p.

 

3대에 걸친, 약 100년 동안이라는 긴 시간 동안의 평범한 대가족들의 이야기를 600페이지에 달하는 한권의 책 속에 담아놓았다. 지은 지 70년 가까이 되는 서양식 대저택에 살고 있는 언뜻 보면 평범하고 아주 행복해 보이는 야나기시마 일가는 겉으로 봤을 때는 아무 문제 없는 그런 흔한 대가족처럼 보인다. 할아버지와 러시아인 할머니에 이모와 외삼촌이 함께 살고 있고, 아이 넷 가운데 둘은 아버지 혹은 어머니가 다른... 그렇기에 가족 개개인의 사연을 들어보면 기구하면서도 아주 특이한 그런 가족의 일대기라고 할 수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른 형제들은 미화시키기는 했지만, 사실 엄밀히 말한다면 불륜으로 태어난 아이들이라 할 수 있고, 이 아이들은, 그 전 세대인 이모와 외삼촌 엄마도 포함해서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는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공부를 시킨다는 독특한 교육 방침 아래서 성장한다. 선을 보고 결혼 한 남자와 6개월만에 파경을 맞은 유리 이모,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외삼촌 기리노스케, 권위적인 할아버지까지.. 독특한 생활방식에 걸맞게 가친관 또한 독특한 각각의 구성원들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아가게 된다.

 

"소금도 같이 가져다주시는 거 잊지 마시고요." 내 말에 여느 때처럼 기리노스케는 웃었다.

"라이스에는 소금을." 암호를 중얼거린다. 그래서 나도 말했다.

"그래, 유리. 라이스에는 소금을!"

이건 우리 세 사람에게만 통하는 표현으로 굳이 번역하자면 '자유 만세!'다. 공기에 든 흰쌀밥은 그대로도 맛있어 보이는데 접시에 담긴 밥에는 왜 그런지 소금을 치고 싶어진다. 우리 셋 다 그렇다. 하지만 예의 없어 보이고 소금을 과잉 섭취하게 된다는 이유로 어릴 적에는 할 수 없었다. 따라서 '성인이 되어 다행이다, 자유 만세'라는 의미다.

 

「포옹 혹은 라이스에는 소금을」中 290~291p.

 

소설은 각 장이 바뀔 때마다 화자가 바껴서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시대와 장소를 바꿔가며 하고 또 그 속에서 자신의 삶 속에서 만날 수 있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80년대 였다가 2000년대로 또 70년대의 어느날로.. 독특한 구성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기에 처음에는 약간 혼란스럽기도 하고 누구의 이야기인가 하고선 막 유심히 읽었다가 뒤로 갈 수록 몇 줄만 읽으면 아~ 누구의 이야기구나 하고 알 수 있었다. 뭔가 특별할 것 같은 가족이야기 이지만 작가 특유의 담담함으로 그려냈기에 그리고 사실 처음엔 막 몰입?!까지는 아니더라도 술술 잘 읽히기에 열심히 읽었다면 후반부로 갈 수록 조금 지루해지는 느낌은 없지 않았다.

 

가족이라고 하면 늘 함께 생활하기에 서로를 다 아는 사이라고 쉽게 말하기 쉬운데, 이 책에서 느낀 가족들처럼 사실은 아주 가까이 있는 가족이라고 해도 또 평생을 함께 한다고 해도 서로를 알지 못하는 각자의 시간이 존재할 것이다. 책을 읽고 나서 나는 과연 우리 가족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고 또 내가 알고 있는 사실만으로 다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청 근사한 집이었어요, 그렇죠?" 다카오가 뭔가 작은 소리로 말을 걸어왔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언가 따뜻한 기분이 들고, 거기에 내 스스로 당황하고 있었다. 미혼인 채 아이를 낳는 데에는 적지 않은 각오가 필요했을 테고, 더구나 본부인이나 그 가족들에게 환영받았을 리 없다. 하지만 한곳에 모여 손을 흔들고 있던 그들은 행복한 대가족처럼 보였다.

 

「포옹 혹은 라이스에는 소금을」中 41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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