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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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국을 떠났느냐. 두 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이 싫어서'지.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무턱대고 욕하진 말아 줘. 내가 태어난 나라라도 싫어할 수는 있는 거잖아. 그게 뭐 그렇게 잘못됐어? 내가 지금 "한국 사람들을 죽이자. 대사관에 불을 지르자."고 선동하는 게 아니잖아? 무슨 불매운동을 벌이자는 것도 아니고, 하다못해 태극기 한 장 태우지 않아. 미국이 싫다는 미국 사람이나 일본이 부끄럽다는 일본 사람한테는 '개념 있다'며 고개 끄덜일 사람 꽤 되지 않나?

 

「한국이 싫어서」中 10~11p.

 

요즘 젊은이들이 흔히들 하는 말 중 하나인 다포세대.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했다고 3포세대. 더 나아가 인간관계 그리고 내집 도 포기했다 하여 5포세대까지.. 아직 앞날이 창창한 이들이 벌써부터 모든 걸 포기하고 살아간다니 참 웃지 못할 현실이다. 전체 실업율에 청년실업은 두배가 넘는다고 한다. 불황에 청년 10명 중에 1명 꼴로 실업자라는 말이다. 물론 취업에 성공 한다해도 최저임금에 정당한 대우도 받지 못하고 쳇바퀴 도는 듯한 생활에 하루하루가 전혀 즐겁지 않은 현실을 보낸다. 그럴때마다 드는 생각들..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 누구든 한번쯤은 생각해 봤을 법한... 그래서 책 제목이 더 눈에 확 띄었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이 싫어서...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건데, 내가 뭘 하겠다고 나서건 그게 성공할지 성공 안 할지는 몰라. 지금 내가 의대 가서 성형외과 의사 되면, 로스쿨 가서 변호사 되면, 본전 뽑을 수 있을까? 아닐걸? 10년 뒤, 20년 뒤에 어떤 직업이 뜰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러니까 앞으로 전망 얘기하는 건 무의미한 거고, 내가 뭘 하고 싶으냐가 정말 주용한 거지. 돈이 안벌려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좀 덜 억울할 거 아냐. 지명이가 그렇게 자기 진로를 선택한 거지. 그런데 난 내가 뭘 하고 싶은지를 몰랐어.

 

「한국이 싫어서」中 151~152p.

 

도발적인 제목의 이 책은 주인공 계나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소설로 마치 친구에게 수다를 떠는 듯한 느낌의 친숙한 말투와 이야기들도 읽으면서 너무도 현실적인 이야기들에 많이 공감할 수 있었다. 특별히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고 지극히 현실에서 만날 수 있는 이야기다. 낮은 시급에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직장, 출퇴근 시간마다 마주쳐야하는 지옥철.. 등 한국이 본인과 잘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그동안 모아두었던 돈으로 호주로 이민을 떠나게 되는 계나가 부모님의 반대, 공항에서의 남자친구와의 이별, 호주에서의 불안정한 미래까지.. 모든 걸 무릅쓰고 타지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녀가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다.

 

나와 비슷한 나이의 주인공 계나. 부모 잘 만나 금수저 물고 태어난 부잣집 자식이 아닌 평범한, 대한민국에서 흔하디 흔한 20대 후반의 흑수저로 태어나 가진게 너무도 없는 20대 후반의 여자다. 서울에서 출퇴근을 해보지 못해서 겪어보진 못했지만, 지옥철이라 불리는 지하철 2호선을 타고 매일 울면서 출퇴근하고, 재미도 없는, 적성에도 잘 맞지 않는 일을 꾸역꾸역 하고 있는.. 그러다 이민을 가고 싶다고 결심을 하게 되었다. 가족들의 반대에 쉽지 않은 선택이긴 하지만 그 용기는 정말 부럽기도 하다.

 

어떤 사람들은 일부러라도 남을 불행하게 만들려고 해. 가게에서 진상 떠는 거, 며느리 괴롭히는 거, 부하 직원 못살게 구는 거, 그게 다 이 맥락 아닐까? 아주 사람 취급을 안 해 주잖아.

난 그렇게 살지 못해. 그렇게 살고 싶지도 않고.

정말 우스운 게, 사실 젊은 애들이 호주로 오려는 이유가 바로 그 사람대접 받으려고 그러는 거야. 접시를 닦으며 살아도 호주가 좋다 이거지. 사람대접을 받으니까.

 

「한국이 싫어서」中 186p.

 

어쩌면 너무나도 현실적인 이야기였기에 소설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나 역시도 한국이 싫다. 그래서 떠나고 싶다~라는 생각을 두어번 해봤던 것 같다. 물론 떠난다고 해서 무조건 달콤한 생활이 기다리고 있고, 현실의 문제들이 다 해결되는 건 아닐 것이라고 생각된다. 외국인으로서 타국에서 살아남는 다는건 대한민국에서 살아남는 거 만큼 힘든 일이지 않을까? 어쩌면 이곳에서보다는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계나 역시 어려움을 겪으면서 결국엔 호주에서 살아남는다. 앞으로 열릴 미래가 무조건 밝은 빛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원하는 걸 얻은 셈이다. 한편으론 그렇게 떠날 수 있는 용기가 부럽기는 하지만.. 가끔씩 한국이 싫어질 때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한국에 있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두 이곳에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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