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주는 레시피
공지영 지음, 이장미 그림 / 한겨레출판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명심해라, 이제 너도 어른이라는 것을. 어른이라는 것은 바로 어린 시절 그토록 부모에게 받고자 했던 그것을 스스로에게 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것이 애정이든 배려든 혹은 음식이든.

사랑한다. 이 불공평하고 힘겨운 인생에서 그래도 우리가 이 불공평과 힘겨움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을 감사하며. 오늘도 좋은 밤.

 

「딸에게 주는 레시피」中 30p.

 

얼마전 TV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해외의 한국인들에게 따뜻한 밥상을 배달하는 내용을 방송했었다. 40시간이 넘는 비행시간 후 사연의 주인공 어머니가 직접 전수한 요리비법으로 전달된 요리. 머나 먼 이국땅에서 맛보던 어머니의 사랑이 담긴 음식의 맛을 본 주인공이나 그 방송을 보던 시청자나 모두의 코끝을 찡하게 했었다. 비록 타국땅에서 다른이의 손을 빌어 먹게 된 음식이지만, 그 요리에 담긴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은 그 맛 그대로였지 않았나 싶다.

 

아직까지 늘 엄마의 따뜻한 밥상을 먹고 있는 행운의 나이지만, 나중에 나에게도 언젠가 엄마의 손맛이 그리워지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가 요즘들어 엄마가 가끔 나에게 이런저런 요리 레시피를 알려주시곤 하는데, 사실 아직은 철이 덜 든 탓도 있겠지만 그래도 조금 더 엄마의 손맛을, 손길을 느끼고 싶다.

 

가을이 깊어간다. 엄마에게 얼마나 많은 날들이 남아 있을지, 네게 얼마나 많은 날들이 남아 있을지 우리는 사실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알 수 있지. 이 순간이 다시는 오지 않는다는 거. 이 순간을 우물우물 보내면 인생이 그렇게 허망하게 흘러갈 것이라는 거.

 

「딸에게 주는 레시피」中 75p.

 

어쩌면 엄마들의 마음은 다 같은걸까?! 아직까지는 엄마들 입장에서 품안에 어린 자식이라고 느꼈질 테지만... 어느새 훌쩍 커버린.. 그래서 이제는 힘들때나 위로가 필요할 때 손을 내밀어 도와주기보다는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알려줘야 할때라는 걸... 그러한 엄마들의 마음을 공지영이 한권의 책 속에 담았다. 지금껏 자라오면서 느꼈던 힘이 되는 엄마의 이야기들을 엄마표 음식에 담아, 늘 기억할 수 있도록 전하고 있다.  

 

사실 그녀가 알려주는 요리 레시피들은 요리라고 부르기엔 너무나도 단순하다. 10분 정도면 해먹을 수 있는 너무도 쉬운 요리들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단순해 보이는 이 요리 레시피들에도 엄마의 깊은 뜻이 담겨져 있다. 엄마표 요리들이 생각났을 땐 그만큼 힘들었다거나 위로가 필요했다는 날일텐데, 수많은 다른 요리책들이 전해주는 그런 멋진 요리들을 해먹기엔 준비하는 것도 또 요리를 하는 것도 너무 지치고 힘들것이다. 그럴 때 아주 간단하게 엄마의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그런 레시피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덜어내지 않으면 아무것도 채워내지 못한다. 엄마가 저번에도 이야기했지만 손에 가득 든 은을 버려야 금을 얻을 수 있고 금을 버려야 다이아몬드를 얻는다. 삶은 우리에게 온갖 좋은 것을 주려고 손을 내미는데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손이 없을지도 몰라.

 

「딸에게 주는 레시피」中 231p.

 

다른 책들과 달리 훌륭한 기교를 부리고 맛깔나게 쓰지 않아도 평범하면서도 소소한 이야기들이 더 와닿을 수 있었던 것은 책 속에 담긴 레시피 하나하나에 엄마의 마음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작가 공지영보다 엄마 공지영으로 다가와서 더 친근했던 것 같기도 하고, 또 우리 엄마가 딸인 나에게 해주는 이야기이기도 하기에 더 진심으로 다가왔다.

 

요리 재료들을 하나하나 진열하고 오븐을 예열하고 셋팅해야하는 유명한 요리법들이 아니더라도 맛있는 요리를 먹을 수 있는 나의 엄마만의 엄마표 레시피! 가끔 위로가, 힘이 필요할 때 마다 꺼내놓고 엄마표 음식을 만들게 된다면 그때마다 인생의 선배로, 그리고 나의 엄마로서 나에게 들려주고팠던, 또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들도 함께 그 요리와 함께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위녕, 엄마가 말해준 먹거리는 네 "영혼의 집"인 육체의 원소야. 집을 사랑하는 사람이 집 안에 독극물이나 해로운 것을 들이지 않듯이 네 영혼의 집인 육체에도 좋은 것만을 주어야 한다. 사실 어쩔 수 없이 해로운 것을 먹을 때에는 그것이 없을 때를 생각하며 감사해야 한다. 이것이 엄마가 네게 주고 싶은 모든 것이야. 지금, 여기, 너 자신 그리고 사랑하며 감사하기.

 

「딸에게 주는 레시피」中 30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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