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가 돌아왔다
김범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정말 60억이 있는 건가요?" 

 

"내가 네 할머니다." 어느날 갑자기, 그것도 광복 직전 염병에 걸려 죽었다던 할머니가 부활해서 돌아오셨다. 조그만 노파가, 깃털 달린 기괴한 밤색 벙거지 모자를 쓰고 동전만 한 은빛 반짝이가 잔뜩 달린 요상한 원피스 정장을 입은, 눈이 커다랗고 뺨이 발간, 매우 수상쩍어 보이는(10p.) 모습으로 말이다. 할머니를 본 할아버지는 평소 조선 시대 마지막 선비의 모습이 아닌, 대뜸 삿대질부터 시작해 이 더러운 잡년.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저속한 단어와 함께 할머니의 머리채를 흔들고, 전화를 받지 않는 아버지까지 그 누구도 할머니의 등장에 달가워 하는 사람이 없었다. 온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할머니는 자식을 버리고 간 죄는 딱히 할말이 없지만 잠시 머물고 가고 싶다는 말과 지난 67년 동안 돈을 조금 벌어 60억 정도의 유산을 물려줄 예정이라고 말을 한다. 그 순간 나는 나를 비롯하여 고모, 어머니, 동생의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게 된다. 날이 거듭될 수록 가족들은 실체를 본적 없는 할머니의 60억 유산설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된다.

 

"너희가 궁금한 건 내 재산이겠지." 할머니가 너무 노골적인 반격을 해서 고모도 어머니도 말문이 막혔다.

"아니다, 너희는 내 재산이 궁금할 뿐이다. 그래서 달자가 여기저기 안 알아본 곳이 없다...."

"난 너희에게 거짓말한 적 없다. 일본에서 택시 회사로 돈 번 것은 맞다. 거기서 미국으로 갔다.......함께 산 남자는 둘이 있다. 일본인 하나, 미국인 하나. 일본인과는 이별했고 미국인과는 사별했다. 자식은 없었다. 너희 둘이 다야. 달자야, 넌 이런 것은 전혀 궁금하지 않았지?"                        -84p.~85p.

 

어느날 갑자기 돌아가셨다던 할머니가 멀쩡히 살아서 돌아온다면??!! 누구나 반가워 하지 않을까.. 물론 '정끝순'여사님 처럼 일제시대 왜놈과 눈이 맞아 남편과 어린 자식들을 버리고 도망간 할머니가 돌아온다면 전혀 반가워하지 않고, 할아버지처럼 갖은 욕을 해대지 않을까..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 특히나 돈 앞에선 참으로 간사해지는 법이다.  지난 세월동안 모아둔 돈이 있고 그 돈을 꼭 핏줄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할머니의 말 한마디에 할아버지를 제외한, 고모와 어머니 그리고 별볼일 없는 백수로 살아가던 주인공의 머릿속은 누구보다 빠르게 회전하게 되니 말이다. 아마 작가는 돈이 최고로 우선시 되는 이 시대의 단면을 말하고자 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처음 시작부터 책은 유쾌하고 때론 황당하고 감동적이게.. 아무튼 책 한장한장을 휘릭~ 휘릭~ 넘겼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흡입력이 있었다. 할머니의 지난 세월 동안의 누명이 벗겨지고, 가족간의 갈등이 벗겨지는 모든 장면들을 재미있게 그리고 있다. 책을 읽을 수록 주인공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진짜 이 할머니가 60억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 일본에서 살았다면서 일본어 한마디도 제대로 못알아 듣는 할머니, 택시사업을 했다더니 또 햄버거 사업을 했다고 하고.. 계속해서 의문만 남기는.. 그 누구도 생각도 않았던 할머니의 등장과 60억 유산의 실체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다면, 또 깊어가는 가을 익살스러우면서 유쾌한 소설을 읽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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