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의 열쇠
타티아나 드 로즈네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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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릴 적 부터 '일기'를 써왔다. 쓸 때는 조금 귀찮아도 지난 일기를 다시 살펴보면 유치한 이야기에 웃음이 절로 나기도 하지만, 잊고 지냈던 기억들이 떠올라 감회가 새로울 때가 많다. 또 지난날의 잘못된 점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반성하는 기회를 가질 수 도 있기에 꾸준히 쓸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이렇게 하루하루 적어놓은 나의 지난 날들이 바로 나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기억력은 한계라는 게 있기에 무엇이든 기록하고 남겨두지 않으면 잊어버리게 된다. 또 그 역사를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면 후대에 사람들은 올바른 시각을 가질 수도 없을 뿐더러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 하게 된다. 이처럼 역사란 무척 중요한 일이고 그러하기에 역사 공부가 중요하다는 생각 든다.

 

소녀는 아버지를 찾아갔다. 유대인으로 태어난 게 무슨 죄예요? 사람들이 왜 유대인을 싫어해요? 아버지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당황한 듯 미소를 지으며 소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조심스럽게 말했다. "우리가 자기들하고 다르다고 생각하거든. 그래서 무서워하는 거란다." 그런데 뭐가 다르다는 거지? 소녀는 생각했다. 뭐가 그렇게 다르다는 걸까?

 

<사라의 열쇠>는 잊혀지고 있는 역사인 2차 대전 중 일어났던 '벨디브 사건'을 소재로 등장인물은 허구이지만 그 이야기의 배경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을 담고 있다. 1942년 7월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들로 인해 유대인들이 하나 둘 씩 체포되기 시작한다. 10살 소녀 사라는 경찰들의 눈을 피해 동생 미셸을 벽장 속에 숨기고 곧 돌아와 꺼내주겠다는 약속을 남긴 채, 부모님과 함께 수용소로 강제 이송되었다. 사라는 수용소에 갇혀 지내는 내내 오직 벽장 속에 갇혀 있는 동생을 구해야겠다는 생각 뿐이었고, 결국 수용소 탈출을 시도한다. 그리고 60년이 지난 2009년, 프랑스의 어느 신문사의 기자 줄리아는 1942년 프랑스 유대인 집단 체포사건에 대해 취재 하던 중, 자신과 묘하게 얽힌 사라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가슴 아픈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가스파르 뒤포르는 나의 집요한 태도에 놀라워했다. 왜, 무엇 때문에 그녀를 찾는 거요?....나는 우리도 기억하고 있고, 우리도 잊지 않고 있다는 말을 그녀에게 전하고 싶어서라고 대답했다. 그는 웃으며 '우리'가 누구를 말하는 거냐고 물었다. 기자 양반의 시댁과 프랑스 국민들인가? 아뇨, 제가요, 제가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서요.....미안하다니 뭐가, 하고 그가 응수했다.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했다. "모르고 지내서 미안하다고요. 마흔다섯이나 먹을 때까지 모르고 지내서 미안하다고요."

 

사라의 열쇠는 과거의 사라와 현재의 줄리아를 교차하며 이야기하고 있다. 어쩌면 미국인이기에 프랑스인들조차 외면하는 불편한 진실과 굳이 마주할 필요가 없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늘 우리는 역사 속에 살아가고 있듯이, 과거는 단지 과거일 뿐이다가 아니라 현재도 미래에도 끊임없이 영항을 미친다는 것을 말해주고자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벨디브 사건' 그 역사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역사의 비극이 개인의 삶에도 전달된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도, 읽고 나서도 한동안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꼈다. 특히 사라가 수용소 탈출에 성공하여 미셸을 만나러 갔을 때 정말 엉엉 소리내어 울 정도로 가슴이 아팠다. 불편한 혹은 치욕적인 과거라 할지라도 그 역사 속에 희생된 이들을 위해서라도 또, 과거의 잘못된 일들을 다시 후대에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잊지 말고 기억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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