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길 1 - 노몬한의 조선인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한장의 사진이 있다. '노르망디의 코리안'이라 알려진 독일 군복을 입고 있는 동양인 바로 조선인. 2005년 방영된 SBS스페셜 <노르망디의 코리안>이란 프로그램에 등장하면서 당시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사진이기도 하다. 지쳐보여 모든 것을 체념해 버린듯한 무표정한 얼굴이 안쓰러워보이기까지 한 사진 한 장이 많은 의문을 자아낸다. 제2차 세계대전 최대 전투지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에 찍힌 사진이라고 하는데, 독일군과 연합군이 생사를 걸고 싸웠을 노르망디 전투에 동양인이 참전했다는 사실이 신기한데, 그가 조선인이라고 하니 더욱 더 호기심을 자극한다.

전쟁을 소재로 쓰여진 책이나 다큐, 영화들이 많이 있다. 전쟁의 아픔을 가지고 있고, 현재 분단된 국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더 와닿는 경우가 많다. 작가 이재익은 <아버지의 길>에서 '노르망디의 코리안' 이 한장의 사진에 전쟁의 아픔과 애틋한 부정의 이야기를 더해 진한 감동과 애잔함을 그리고 있다. 일제강점기.. 그 당시 수많은 조선인들이 겪어야 했을 전쟁의 슬픈 역사와 아픔들을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사회나 역사 교과서에서 익히 배워 잘 알고 있는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그때 그 심정을 모두 이해할 수 없고, 나와는 다른 세계의 일이다라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1930년대 독립운동을 위해 떠난 아내를 대신해 사랑하는 아들 건우와 하루하루 함께 지내고 있던 길수는, 중일전쟁을 앞두고 있던 그 전쟁의 바람막이가 필요했던 일본군에 의해 어린 아들을 홀로 남겨둔 채 전쟁에 차출되게 된다.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자꾸만 고향과 아들 건우에게서  멀어져 갈 수록 길수의 목표는 단 하나, 반드시 살아서 아들에게 돌아가는 것 그것 뿐이었다. 배고픔과 생리적인 고통..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것 하나 갖추지 못한채 수많은 조선인들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를 열차에 몸을 싣고 전쟁.. 그 죽음의 불구덩이 속으로 달려가게 된다. 누구를 위한 전쟁인지도 모를,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모두가 피해자가 되어버리는 전쟁.. 일본군으로 차출되어 전쟁에 참여했던 길수는 그냥 아들과 살고싶었던 평범한 조선인에서 일본군이 되고 소련군이 되고 독일군이 되고 또 연합군이 되어 고향과 아들 건우에게서 점점 멀어져갔다. 

 

언젠가 너에게 약조하였던 일을 기억한다. 볕이 참 좋았던 바닷가에서 모래성을 쌓으며 놀다가 그랬지. 큰 파도가 오면 아빠가 널 번쩍 들어줄 거라고. 그러니 겁내지 말라고.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 파도 앞에서 너를 지켜주기는커녕 내 한 몸조차 지키지 못한 못난 아비여서 미안하다. 이제 너는 강하고 의연해져야 한다. 슬픔과 절망이 너의 여린 육체와 정신을 회복 불가능하게 무너뜨리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 편지를 니가 언제쯤 볼지 모르겠구나. 과연 너의 손에 전해질까도 모르겠다. 그러나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노라. 아비의 미안한 마음과 그리운 마음이 전해지기를. 매일 매순간 너를 걱정하고 그리워한단다. 이제부터 너와 이야기를 나누도록 할게. 어쩌면 바람을 타고 마음이 전해질지도 모르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반드시 돌아간다. - 315p

 

참담한 역사 속에 희생된 이들은 다만 길수 부자 뿐만이 아닐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소녀들이 남자들의 하룻밤 성욕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버린 위안부 소녀 등등 말로는 차마 다 담을 수 없는 수많은 아픔들이 있다.  길고 긴 여정, 갖은 폭행과 모욕, 굶주림, 고된 삶 속에서 길수는 아들 건우를 위해 하루하루를 견뎠다. 목숨과도 바꿀 수 없이 소중한 아들의 생사를 알 수 없는 아버지의 애절한 독백이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피맺힌 절규가 귓가에 계속해서 맴도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강제규 감독의 <마이웨이>의 모티브 역시 '노르망디의 코리안' 사진 이라고 한다. 영화 개봉 당시엔 크게 흥행이 되지 않아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니 이 감동, 가슴 아픈 역사의 먹먹함을  다시 영화로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그 전쟁 때문에 고통받고 희생되어야 했던 이들에겐 무엇으로 보상해 주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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