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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틈새 ㅣ 사계절 1318 문고 152
이금이 지음 / 사계절 / 2026년 3월
평점 :

인생에는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과 목적지까지 가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음을 배웠다.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원하는 곳에 다다른다는 것도 함께.
일제강점기 러시아 사할린 탄광촌과 벌목장 등에 강제로 끌려간 한인 동포들이 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 후 냉전 상황 속에서 무관심으로 방치된 사할린 한인들 대부분 조국으로 송환되지 못하고 그곳에 넘겨져 고립되었다. 조국으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며 무국적자로 살아왔던 이들을 사할린 한인 1세대라 부른다. 하지만 일본은 이들을 책임지지 않았고, 소련 역시 자유로운 이동을 허용하지 않았기에 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생이별을 겪었다. 이로 인해 수만 명의 사할린 동포가 오랜 세월 타국에서 국적과 신분 문제 속에서 살아가야만 했다. 이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에도 사할린 동포 문제는 본격적으로 해결되지 못하다가, 80년대 후반부터 귀국지원이 시작되어 고령의 1세대 동포들이 영주 귀국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하지만 이미 많은 시간이 흘렀고, 상당수는 고향을 밟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고향이, 조국이 거기 있음을 새롭게 깨닫자 동시에 온갖 감정이 휘몰아쳤다. 반가움, 그리움, 회환, 서운함, 죄책감, 자랑스러움......
소설 <슬픔의 틈새> 속 단옥이네 이야기는 사할린 한인 1세대가 겪은 일이다.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화태 탄광으로 떠난 아버지를 만나러 온 가족이 고향 다래울을 떠나 남사할린으로 향했다. 그 길이 영영 돌아오지 못할 길이라는 것을 모른채 말이다. 힘든 여정에 도착한 화태에서 아버지와의 재회의 반가움도 잠시, 사할린 탄광에서 조선인 노동자들은 강제로 일했고, '저금'이라는 이름으로 임금은 빼앗겼다. 죽음과 부상의 공포에서도 가족은 함께라 행복했지만, '전환배치'라는 명령 하에 이중 징용을 하면서 또다시 가족들은 헤어질 수 밖에 없었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할린 남부가 러시아의 땅이었다가, 일본의 땅이었다 다시 소련의 땅이 되었고, 그 변화 속에서 조선인들은 일본인도, 소련인도, 조선인도 아닌 무국적자가 된다. 단옥이의 이름이 주단옥에서 야케모토 타마코로, 다시 주단옥으로, 그리고 올가 송이 되기까지 바뀐 이름들 만큼이나 굴곡진 인생을 살아 온 그녀였지만, 오로지 살아남기 위해 무너지지 않고 끝까지 살아냈다.
책을 읽으면서 읽고 나서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책이 있다. 특별한 사건이나 화려한 표현이 없었지만, 오히려 과장되지 않고 담담한 문체로 써내려 간 탓에 읽는데는 오래 걸렸고, 더욱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보통 슬픔은 빨리 극복해야 할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소설 속 주인공들은 슬픔을 억지로 지우기 보다는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 함께 안고 가야 할 감정으로 보여준다. 그러하기에 더 현실적으로 와닿았고, 오히려 더 공감이 갔다. 슬픈 역사 속에서 슬픔에 머물러 있지 않고 뜨겁고 당당하게 살아낸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80년 전 우리 선조들은 일제의 잔혹한 탄압에 맞서 싸워 마침내 대한민국의 이름을 되찾았다. 그 광복을 맞이하기 위해 치뤄진 숭고한 희생과 자유를 위한 투쟁의 의미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본 리뷰는 사계절출판사의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