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와 박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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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에 한 권 씩 출판되는 작가들과는 달리 거의 공백기가 없이 작품을 써내는 일본 추리소설계의 거장 히가시노 게이고의 데뷔 35주년 기념작이 출판되었다. 그 누구보다 왕성한 작품활동과 다양한 소재, 기발한 반전을 가미한 그였기에 이번 책도 고민없이 바로 주문! 오자마자 읽기 시작했다. 언제나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들은 기대가 컸고, 이번 기념작 역시 기대만큼 재미있게 읽을 수는 있었는데 뭔가 진도가 더디게 나가는 감도 있었다. 한가지 너무 큰 아쉬움이었다면, 양장본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기념작이라 해서 사인이 들어간 것도 아닌데, 그저 단순히 작가 타이틀 때문인지 책값만 너~무 높아졌다는건 별로였다.

"전부 내가 했습니다. 그 모든 사건의 범인은 나예요."

"전부라니...... 그러면 혹시?"

네, 라고 구라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시라이시 씨를 살해했습니다. 그리고 하이타니 쇼조를 칼로 찔러 살해한 것도 나였어요."

도쿄의 해안 도로변에 불법으로 주차된 차량 안에서 칼에 찔려 숨진 한 남자의 시신이 발견된다. 남자는 시라이시 겐스케라는 변호사로, 형사 고다이는 나카마치와 팀이 되어 이 살인사건을 조사하게 된다. 주변인들은 한결같이 어떤 사건이든 성실하던 시라이시 변호사에게 원한을 품을 일은 없다고 말했다. 별다른 성과없던 고다이는 시라이시와 단 한번의 통화기록만 남아있던 구라키 다쓰로를 찾아 마이치현으로 향하게 된다.

돈과 관련된 법률 상담을 받으려고 시라이시와 전화 한 번 한 사이라고 말하는 구라키를 의심한 고다이는 그의 아들 가즈마를 만나 구라키가 도쿄에 올때마다 '아스나로'라는 식당을 자주 들렀음을 확인하게 된다. 딸과 함께 아스나로를 운영하는 아사바 요코의 식당을 찾은 고다이는 그녀의 억양으로 구라키와 같은 아이치현 사람임을 알아챈다. 그리고 33년 전, 요코의 남편이 한 금융업자를 살해한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잡혀가 유치장에서 스스로 목을 맸다는 사실을 듣게 되고, 고다이는 구라키, 식당 아스나로, 피해자 시라이시 겐스케 그리고 30여 년 전 사건 까지 복잡하게 얽혀있음을 알게되고 수사망을 좁히게 된다. 지금은 은퇴한 과거 '히가시오카자키역 앞 금융업자 살해사건'의 당시 관할서 경사의 사건 수첩을 통해 그 사건 당시 현장에 구라키가 있었음이 밝혀지고, 그 과정에서 구라키 다쓰로는 과거 사건의 진범임을 자백하고, 시라이시 변호사를 살해한 범인 역시 자신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정말 미궁에 빠지려는 사건을 해결한 것인가, 어쩌면 새로운 미궁에 빠져들고 있는 건 아닌가, 라는 것이었다. 그 불길한 예감이 전혀 사라지지 않는 것을 고다이는 깨달았다. 오히려 더 커져가고 있다.

과거 자신이 저지른 살인사건으로 한 남자가 억울함을 호소하며 자살을 했고, 그 남자의 아내와 어린 딸은 '살인자의 가족'이라고 비난을 받다가 아무도 몰래 동네를 떠나야했다. 구라키는 자기 때문에 죄 없는 한 가족이 불행해졌다는 사실에 수십 년간 죄책감에 시달렸고, 자신의 죄를 속죄할 방법으로 두 모녀에게 전 재산을 상속하고자 변호사를 찾았다. 사건의 전말을 알고 태도를 바꾼 변호사는 공소시효가 지나도 죗값을 치뤄야한다고 구라키를 몰아붙였고, 충동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게 되었다는 것임을 고백한다.

까마득한 옛날의 살인사건에서부터 시작된 모든 일들의 진실이 모두 밝혀졌고 순조롭게 마무리 되었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그 진상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이 있었다. 가해자 구라키의 아들 가즈마와 피해자 시라이시의 딸 미레이는 자신들이 알고 있던 아버지와는 너무도 모순된 진술들에 의문을 품게 되었고, 결국 스스로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고자 한다. 평범하던 삶을 살아오던 가즈마는 아버지의 자백으로 인해 가해자 아들이라는 이유로 인터넷에 신상이 공개되고 일상이 무너져 버리게 된다. 미레이 역시 아버지를 잃고 뒤바뀐 일상 속에서 고통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서로 상반된 입장이지만 묘한 동질감을 느끼며 감춰진 진실로 한발한발 다가서게 된다.

마침내 진실에 가 닿았다. 이제 더 이상 길을 헤맬 일은 없다. 어디에도 갈 필요가 없고, 애써 찾아내야 할 것도 없다. 그건 마치 성취감 같은 감정이어서 체념이 편안함으로 바뀌는 듯한 기묘한 감각을 맛보았다.

구라키는 용의자로 좁혀지자마자 너무도 쉽게 자신의 모든 죄를 자백했다. 경찰, 검찰 그리고 변호사들까지 그의 진술에 더이상의 의문을 품지 않았고, 사건은 그렇게 모두 종결되었다. 하지만 찝찝함을 떨치지 못한 담당 형사 고다이의 집념과 사건에 의문을 품은 이들이 없었더라면 진실은 그대로 뭍혔을 것이다. 공소시효의 문제점, 유족이라는 이유로 신상이 까발려지는 고통, 피해자가 동시에 또 누군가에게는 가해자가 될 수 있다라는 아이러니 한 상황까지 누구의 잘못이 더 크고 누가 더 잘못했다라는 판단을 감히 할 수 있을까. 복잡한 인간의 본성과 공소시효 만료라는 사회적인 문제까지 중간즈음 살짝 지루한 감이 없진 않았지만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 라며 엄지척!할 수 있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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