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소설, 향
김이설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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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3년 동안 장래희망은 '없음' 인 하고 싶은게 없는 아이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여도 상관없는 그런 날들이었다. 똑똑하고 야무져 전교 상위권을 유지하는 동생과는 달리 무언가에 애쓰거나 노력해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하고 싶은게 없는 게 아니라 그동안 외면 해왔던 것이었다. 스물 일곱의 목전에서 동생이 무심히 물었고, 나는 가슴 속에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시'가 쓰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의 나는 활짝 핀 목련 외에는 좋은 점이 하나도 없는, 20년 동안 살아 온 스무 평의 조금 넘는 목련빌라에서 어른 넷에 아이 둘이 살고 있다. 평생 기운없이 살아 온 아버지와 무기력한 아버지를 대신해 온 어머니, 가정폭력을 피해 아이 둘과 함께 집으로 돌아 온 동생까지, 나는 3년 동안 시를 쓰지 못했다. 식구들을 대신해서 시작한 가사일은 언젠가부터 자연스럽게 나의 일이 되어 있었고,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조카들의 육아까지 고스란히 나의 몫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현실의 족쇄에 얽매여 지쳐만 가는 나에게 시인이라는 꿈은 멀어져만 갔다.

그러나 동생이 집으로 돌아온 이후부터, 그러니까 3년 전부터 나는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쓸 것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쓸 것들은 오히려 많아졌다. 그러나 쓸 시간이 없었고, 머릿속을 정리할 공간이 없었고, 나에게 집중할 틈이 없었다. 이제는 조용히, 고즈넉하게, 쓸쓸히, 오롯이, 동떨어져서, 가만히, 차분하게 같은 단어들을 누릴 수 없었다.

내 인생의 중심은 나!라고 흔히들 말하지만, 내 꿈만을 쫓아 나 자신만을 위해 살아간다는 건 현실에서 쉬운일이 아닌 사람들도 많다. 그 쉽지 않은 요소 중 한가지라 할 수 있는 가족이란 존재는 내 꿈을 지지해주는 발판이 되어주기도 혹은 족쇄가 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가족이라면 전자일 테지만, 소설의 주인공은 아마도 후자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은 굳은 일을 도맡아하고 있는 나의 힘들고 고됨을 가족 누군가로부터 알아주길 바랬던건 아닌데, 자신의 꿈도 버린채 동동거리며 애써왔건만 그 결과는 너무도 허무했다. 가족이란 굴레는 쉽게 벗어날 수도 버릴 수도 없기에 연애도 꿈도 그 어느것도 내마음과 같지 않은 현실이 너무도 답답해보였다.

시를 쓰지도 못하면서 시 쓰기를 꿈꿨다는 건 시의 그림자에 숨어 내 언어가 사라지는 줄도 몰랐다는 뜻이었다.

누구에게도 당연한 것이란건 없다. 장녀라는 이유로 가족들에게 당연히 희생해야만 하는 건 아닐 것이다. 물론 살아가면서 가족이 내 인생보다 우선이 되어야 하는 순간도 있을 것이고, 내것을 포기해야만 하는 순간도 분명히 올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숨막히는 현실 속에서 주인공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시에서 멀어지지 않으려 발버둥치는게 전부였다. 어쨌든 그녀는 자신의 꿈을 버리지는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찾아 온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더 늦기 전에 단 한순간만이라도 '나'라는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 집을 벗어나게 된다. 아마 그녀에게 가장 필요했던 건 용기가 아닐까 싶다. 가족이란 굴레를 벗어던졌다고 해서 그녀의 앞날이 화사하게 빛나는 꽃길이 된 것은 아닐 것이다. 단지 자신을 위해 스스로가 낸 큰 용기가 '시인'이라는 그녀의 꿈에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게 해주지 않을까..순탄치는 않을 것 같은 그녀의 앞날을 응원해본다.

필사 노트는 계속 늘어났다. 혼자 지내게 되었다고 곧바로 시가 써질 리 없었다. 그러나 나는 혼자 있는 동안 온전히 나에게 몰입할 수 있었다. 나는 마음만 먹으면 밤새 언어에 대해서, 시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었다. 이런 생활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으므로 하루하루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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