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박물관
오가와 요코 지음,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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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찾는 건 그 육체가 틀림없이 존재했다는 증거를 가장 생생하고 충실하게 기억하는 물건이야. 그게 없으면 살아온 세월이 송두리째 무너져 버리는 그 무엇, 죽음의 완결을 영원히 저지할 수 있는 그 무엇이지. 추억 같은 감상적인 감정과는 관계없어. 물론 금전적인 가치 따윈 논외고.

박물관 기사는 한 노파에 의해 무엇을 전시하는 박물관인지도 모를 박물관 설립 의뢰를 받고 특별할 것 없는 마을을 찾는다. 의뢰한 노파의 심각한 변덕과 그녀가 23년에 걸쳐 연구했다는 달력 때문에 박물관 설립 준비는 계속해서 제자리 걸음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달력에서 노파가 원하는 날이 되었고, 박물관 기사는 전시품들이 있는 그녀의 수장고에 들어서게 된다. 그곳에는 금니, 장갑 등 제각각 자기 주장이 강한 물건들이 널려있었다. 이 물건들은 모두 마을 사람들의 유품으로 그들이 죽은 뒤 노파가 훔쳐낸 것들이었다. 노파가 기사에게 의뢰한 박물관에는 바로 이 훔친 죽은이들의 유품들을 전시하고 보존하는 것이었다.

노파는 이제 자신을 대신하여 박물관 기사에게 마을 사람들의 유품을 챙기도록 했고, 오지않길 바랬던 마을의 사망자가 발생하게 된다. 마을에서 귀 축소 불법 시술을 해온 109세의 전직 외과의사의 메스를 시작으로 굶어죽은 화가가 마지막으로 짜마신 물감 등 폭발사고로 긴박했던 순간에도 그는 박물관에 전시할 유품들을 훔치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50년 넘게 살인사건이 일어나지 않은 평화로운 마을에서 기사가 온 이후 여성들을 살해하고 유두를 훔쳐 달아나는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나고, 마침내 박물관도 '침묵 박물관'이라는 명패를 달고 관람객을 기다리게 된다.

박물관도 마찬가지잖아? 단순한 진열 창고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 얼마 전까지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박물관 기사인 자네 입장에서 보면 박물관은 복잡하고 심오한 공간이지. 박물관은 박물관만의 세계가 있어.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입구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걸로 만족해. 정말로 세계 깊숙이까지 발을 들일 수 있는 사람은 드물지.

'침묵 박물관'에 수집되어 전시된 물품들은 모두 죽은이들의 유품들로 그 유품 자체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지만, 생전 주인이 살아온 삶에 대한 압축이라 할 수 있다. 박물관에 전시될 유품이라고 하면 뭔가 대단한 일을 하고 죽은 사람들의 물품일 것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이 침묵 박물관에서는 평범한 사람들이라도 그들의 삶과 죽음에는 나름의 의미가 있다라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죽음이란게 영원한 침묵이 아니고, 그 누구도 그냥 잊혀지는 존재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었나 싶다.

쉽게 익히는 책과 함께 죽은이들의 유품을 전시한다는 박물관이라는 소재와 이름도 없이 단지 '노파' '소녀' '박물관 기사'등 역할로만 불리는 주인공들의 설정은 흥미로웠다. 하지만 노파와 그녀의 딸 소녀와의 관계라든지, 계속해서 형에게 편지를 쓰지만 답장이 오지 않는다던지 수수께끼와 같은 소재들은 계속해서 던져 읽는 독자로 하여금 궁금증은 한껏 불러일으키고, 거기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없기에 더 미스터리한 느낌이 들었다. 생과 죽음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었고, 나는 죽어서 남겨진 사람들에게 하나의 유품으로 기억된다면 어떤게 남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 출판사로부터 서평단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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