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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ㅣ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2년 3월
평점 :
주머니 가게 ‘미이마야’에 있는 ‘흑백의 방’에서 오가는 기이한 이야기를 모아 놓은 이야기입니다. 다른 단편집에는 다양한 장르가 나와 있지만, <흑백>은 나오는 이야기들이 음습하고 칙칙한, 인간의 어둠을 다룬 이야기라서 조금 묵중한 느낌이었습니다.
형제의 비극을 다룬 ‘만주사화’, 저택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괴담을 이야기 하고 있는 ‘흉가’, 주인공인 오치카가 안고 있는 죄책감을 낱낱히 드러낸 ‘사련’, 배덕한 사랑과 그로인한 일가의 멸망을 풀어 놓은 ‘마경’, 괴담의 당사자들이 영혼에 지워진 짐을 덜고 앞으로 걸어 나가게 되는 치유의 장인 ‘이에나리’. 이렇게 다섯 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흉가’는 준비운동 단계라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흉가’부터는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어 버리는 괴담이 진행되고 ‘사련’에선 안타까운 사연이, ‘마경’에서는 뭐라 말해야 좋을지 알 수 없게 만드는 슬픈 이야기가, ‘이에나리’에서는 모험극에 비견되는 치유의 과정이 보여져서 단조로웠다가 점차 웅장해지는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감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강줄기가 바다에서 모이듯 개별적인 이야기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진다는 구조는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도 몇 번 보았지만, <흑백>에 사용한 구조는 느낌이 좀 달랐습니다. 어둠에 묻혀 있던 연결고리를 드러낸다기보단, 먹물이 번지듯이 이야기들이 번져서 하나로 이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인간의 이기, 후회, 탐욕 등 시커먼 마음에서 태어난 떳떳하지 못한 감정들을 괴담의 형식으로 풀어내고 있지만 그렇게 쌓인 괴담들이 대단원에서 치유된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장소에서 기이한 이야기를 공유한다는 설정은 <사고루 기담>에도 있지만, 공중에 붕 떠서 흩어지고 마는 향기같았던 <사고루 기담>에는 확실한 치유의 과정이 없다는 점이 <흑백>과 다른점 같습니다.
원제는 ‘무섭다, 두렵다’는 의미의 괴담에 가까운 단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판의 제목인 <흑백>이 좀 더 운치있고 책 내용을 멋스럽게 살리고 있었습니다. 역자후기를 보면 이어지는 후속편이 있다고 하는데, 출간되면 꼭 읽어보고 싶습니다.
유부녀는 이를 검게 물들인다는 점이 서술된 책이 몇 권 있는데요, 드라마에서는 미관상 표현을 안 하는 것 같지만 야마오카 소하치가 쓴 ‘도쿠가와 이에야스’에선 유부녀는 이를 검게 물들인다는 관습이 좀 더 자세히 나옵니다. 이마에서 정수리까지 머리를 미는 사무라이 헤어스타일도이 만주족의 변발만큼이나 멋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해서, 책 중에서 아무리 심각하게 나와도 헤어 스타일만 생각하면 웃음이 나왔습니다. 우리 조상님들은 예부터 미적 감각도 뛰어났다는 사실이 새삼 뿌듯하고 자랑스러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