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당근마켓 - 우리는 그렇게 만날 수도 있다 아무튼 시리즈 59
이훤 지음 / 위고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당근으로 물건을 사고 파는 지인이 있다. 괜찮은 가격에 좋은 물건을 얻을 때도 있고, 진상을 만나 물건을 팔기도 전에 진이 빠지는 모습도 보았다. 후자의 인상이 너무도 강렬한 나머지 당근을 해본 적은 없다. 앱은 깔았지만 쉽사리 손이 가지 않았다. 그나마 당근에 들어가서 한 일도 살 물건을 찾는 게 아니라 정보를 찾기 위해서였다. 유용한 정보를 얻은 뒤로 방치해둔 앱을 켜보았다. 책에 언급되었던 메뉴도 보이고, 예전에 스치듯 보았던 판매글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사실도 발견했다. 사기가 늘었으니 조심하라는 글과 어느 산 정상에 올랐다는 후기가 같은 화면에 공존했다. 운동장에 전교생이 모여서 펼쳤던 벼룩시장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필요한 물건은 언제든 생기게 마련이니 조만간 나도 당근 해볼까?

물건은 그런 힘이 있다. 유효기간 있는 처방약처럼 즉각적인 위안을 주는. - P12

활자와 이미지로 빼곡한 SNS에서, 중고 거래의 장에서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 그 이름일 동안 당신은 얼마큼 당신인가. - P59

사진도 여느 물건과 마찬가지로 시간의 소실성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한데, 사진 또한 어딘가 보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화된 사진도 파일로 저장되는 물리적인 공간을 차지하기에, 사진 또한 이곳저곳을 전전하다가 자연스럽게 잊히고 바래고 지워진다. 그것을 간직해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들 또한 천천히 사라진다. - P66

"너희가 왜 당근 하는지 알겠어. 나도 가끔 여기서 살 것 같아. 근데 지난번에 다솔이가 말했잖아, 패션도 언어라고. 패션은 내가 유창해지고 싶은 언어는 아닌 것 같아." - P77

30여 년 동안 컵과 화병을 계속해서 찾고 들이고 아꼈을 모습이 그려졌다. 그렇게 들인 아름답고 소중한 것을 혼자 움켜쥐지 않고 놓아주기로 선택한 건 좋음이 내 반경에만 머물지 않고 여러 사람에게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이었겠다. - P10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무튼, 싸이월드 - 내가 그의 이름을 지어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일촌이 되었다 아무튼 시리즈 42
박선희 지음 / 제철소 / 202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추억이 깃든 것들은 세월이 흘러도 묘한 여운을 남긴다. 사진이 그렇고 노래가 그렇다. 그 두 가지 모두 있는 싸이월드도 당연히 그렇다. 매일이 그냥 힘겨운 수험생 시절 재밌는 글이 보이면 무조건 스크랩해서 친구들과 함께 ㅋㅋㅋㅋ를 남발하며 웃곤 했는데. 내가 팔로우하는 대상은 적을 수록 좋지만, 나를 팔로우하는 사람은 많을수록 좋은 지금의 SNS 흐름과는 확실히 뭐가 달라도 달랐던 시대를 살았다.

완전히 잊고 살았던 싸이월드라는 세계를 다시 떠올릴 수 있어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친구들과 함께 웃었던 순간을 되새길 수 있어서 좋았다.

각별하지만 남세스럽고 애틋하지만 오글대는 그것. 어딘가에 안전하게 간직하고 싶지만 ‘굳이’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지는 않은 그것. 항상 그 자리에 있어주기를 바라지만 ‘딱히’ 자주 들여다보고 싶지는 않은 그것. 그래도 절대로 사라지지만은 않으면 좋겠는 그것. - P14

싸이월드 일촌은 혈육과 구분되는 감성의 촌수였다. 일종의 ‘정서적 친족 관계’였다. - P51

싸이월드와 MSN 메신저가 페이스북으로, 카카오톡으로, 인스타그램으로 바뀌었을 뿐 관계의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여전히 동일하다. 차단하고 끊어내고 싶은 사람들, 안 보고 싶은 사람들이 여전히 주변에 득실대고 있다. - P68

그럴 때마다 궁금했다. 수습 주제에 최신곡을 컬러링으로 설정해둘 그 여유가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했던 것처럼, 야간 보고 자기 차례를 앞두고 동기의 풀 죽은 목소리에 먼저 반응하는 그 세심함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 P80

"이렇게 긴 회사 생활 끝에 남은 게 ‘사내 메신저의 달인’이라니, 결국은 호러인 건가?" - P82

포기하지 않는 것이 ‘진짜 용기’라고 우겼지만, 실은 상처와 아픔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성장해갈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내가 머물렀던 한 시절, 그 관계, 그 감정의 문을 닫고 또 다른 곳으로 넘어가도 괜찮으리란 확신이 없었다. 그렇게 하는 방법을 도통 알지 못했다. - P96

밈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의 그 기묘한 느낌을 기억한다.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를 처음 봤을 때의 어리둥절함이 떠올랐다. 분명히 보고는 있는데 뭔지는 모르겠는 느낌. 마치 용어계의 다다이즘 같았다. 어감도 이상하고, 글자 모양도 이상하고, 의미도 모르겠고, 그 단어의 모든 것이 하나의 전위예술처럼 느껴졌다. - P1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무튼, 클래식 - 그 속의 작은 길들을 천천히 걸으면서 내가 겪은 순간들을 꽤 소중히 여겨왔다 아무튼 시리즈 40
김호경 지음 / 코난북스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외한에게는 낯설게 느껴지는 점이 많았지만 예체능이라는 공통의 관심사가 있어서 끝까지 볼 수 있었다. 기회가 닿아 감상했던 바이올린 공연, 감상문을 내기 위해 어렵게 구해서 듣던 베토벤 9번 교향곡을 듣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소리를 언어로 표현하고자 고군분투했는데, 전문 기자도 같은 어려움을 겪는다니 내적 친밀감이 느껴졌다. 낯선 이름과 곡명이 아직은 글자로 보일 뿐이지만 빈 칸을 하나씩 채워가듯 차근차근 듣다보면 언젠가는 절로 음악을 떠올리며 파생된 이미지를 연상시킬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좋아하는 마음이란 그 마음의 주인까지도 미처 다 알지 못하는 까닭이 뒤섞여 어떤 장면처럼 남는 듯하다. - P12

반면 클래식 음악을 공부한다는 건 작품의 내적 원천을 발견하고 그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작업이다. 음, 화성, 박자를 하나하나 고려하면서 어떻게 청각적·정신적 구조물을 세울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행위다. 당시의 나는 그 일에서 도무지 어떤 의미를 발견하기가 어려웠다. - P52

고독은 공포하는 순간 고유성을 잃는다. 이제는 누구도 고독하기가 참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가려진 고독의 틈에서 예술의 언어가 피어나고 종이 위에는 시가 쓰인다. - P59

한 손에는 맑고 깨끗한 정신, 다른 한 손에는 세상 속 고통, 절망을 똑같이 나눠 들고, 스스로를 망치지 않을 만큼 노력하면서 군중의 무관심이나 비판에 상처받지 않을 만큼 단단한 정신력을 다져야만 잘할 수 있는 일이다. 너무 어려운 거 아닌가! - P89

어떤 글은 너무 쉽게 쓰이고 어떤 글은 너무 어렵게 쓰인다. 이렇게까지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은데 너무 많은 사람이 반복하고 있는 것처럼 들리는 이야기가 있다. 이렇게까지 나 혼자 괴로워할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놀랍도록 아무도 듣지 않고 있는 것 같은 이야기도 있다. - P96

코플런드는 거슈윈의 부와 명성을, 거슈윈은 코플런드의 지적 우월성을 서로 의식했다는 기록을 여기저기서 찾을 수 있다. - P127

아무도 몰라주는 일을 하면서도 아무도 몰라주는 일을 하는 나를 알아봐주길 바라는 마음을 깊숙한 곳에 품었다. - P12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층 입원실의 갱스터 할머니 - 남몰래 난치병 10년 차, ‘빵먹다살찐떡’이 온몸으로 아프고 온몸으로 사랑한 날들
양유진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루프스를 앓고 있는 배우 겸 크리에이터 양유진의 에세이. 누구나 잔병을 앓은 적이 있고, 병세가 심각하지 않을 뿐 평생 지켜봐야 하는 건강 문제가 하나쯤은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이름만 들어보았을 뿐인 난치병 이야기에도 공감할 수 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난관을 맞닥뜨려 주저앉기도 하고 울기도 하지만 결국 용감하게 일상을 지켜나가는 저자의 모습을 본받고 싶다.

다수의 사람들 앞에서는 씩씩한 면모를 보이지만 작은 일에도 쉽게 상처받고 무너지는 연약한 점도 있다는 고백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제목이 강렬해서 고층 입원실의 독특한 캐릭터를 하나, 둘 소개할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눈에 띄는 제목이긴 하지만 에세이의 분위기와는 결이 다르게 느껴졌다.

살면서 해봐야 하는 실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실수는 내 인생의 자양분이 되는 경험이 아니라 죄책감과 후회만 남길 뿐이다. - P42

현실에 만족하며 지금에 집중하기란 이렇게나 쉽지 않다. - P67

‘잘 되면 땡큐, 안 되면 유감’이라는 마인드를 갖고 나니 여유가 생겼다. 어쩐지 그날따라 날씨도 화창하고 공기도 맑았다. 여유를 찾으니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 P95

참 아이러니하게도 잘하려고 하면 잘 안 된다. 잘하려고 하면 따라오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잘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 P96

어린 나이에 매일 붙어사는 학교라는 환경 속에서 친구를 사귀는 것과 열심히 굴러가며 자기 걸 챙겨야 하는 사회 속에서 친구를 사귀는 건 방법이나 들어가는 힘 자체가 다르다고 했다. - P188

내가 대학에 못 들어가면 어떡하냐는 엄마의 질문에 아빠는 대부분의 훌륭한 사람은 고등학교만 졸업했다고 대답했고, 배우로 성공하지 못하면 어쩌냐는 걱정에 요즘 유행하는 문장 ‘하지만 재밌었죠?’처럼 성공은 못해도 하는 일이 즐거우면 그만이라고 이야기했다. - P212

처음에는 크리에이터로 채널을 운영한다는 걸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않았었다. 엄마가 운영하는 학원 학생들이 나를 알아보고 엄마에게 말하면서 알게 되었다. 부모님은 나로 인해 둘째와 셋째가 조바심을 느끼지 않았으면 싶었던 것 같다. 동생들 앞에서는 첫째가 특이하고 이상한 거라고 이야기하며 별일 아닌 것처럼 말하곤 했다. 대신 내게 따로 잘하고 있다, 자랑스럽다 이야기해주었는데 가족 간의 균형을 생각하는 그런 모습을 보고 많은 것을 배웠다. - P2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무튼, 예능 - 많이 웃었지만, 그만큼 울고 싶었다 아무튼 시리즈 23
복길 지음 / 코난북스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주말을 예능과 함께 보냈던 때가 있었다. 아니,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모든 예능을 꿰고 텔레비전 앞을 사수하던 때가 있었다. 마치 전생처럼 가물가물해진 날들이다. 그때로 돌아가면 다시 텔레비전 리모컨부터 찾으려고 할까? 생각해봤는데 아닐 것 같다. ‘저 사람, 저렇게 말해 놓고 나중에 그런 사고를 쳤지.’,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세상이었다니. 하긴,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네.’하는 시큼씁쓸텁텁한 감상만 잔뜩 늘어놓게 될 테니까.

일찍 잠들기도, 밖에 나가 무언가를 하기도 애매모호한 시간을 웃음으로 보낼 수 있는 예능을 기대해보지만 아직은 요원하다.

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전부 나한테 해롭지? 왜 내가 원하는 것을 성취하려면 인내하고, 생각하고, 노력하고, 행동하고, 반성해야 하지? 어른이 되면 내가 직관적으로, 본능적으로 선택한 것들이 다 옳은 것이 되는 거 아닌가? - P25

이제 크게 바라는 건 없다. 진짜 성취감을 느껴보고 싶다. 거창한 말들에 속지 않고 매일 무언가가 쌓이고 걸러지는 ‘그저 그런 하루’가 필요하다/ - P27

가슴속 이야기들이 쌓이고 견딜 수 없어 곪은 상처가 터졌을 때는 여자가 죽고, 당하고, 슬퍼하다 원혼이 되는 것을 익숙하게 여기는 이 세상 곳곳에서 절규가 시작된 때였다. - P42

고민에 경중은 없지만, 그 고민을 풀어내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어야 한다. - P44

나는 결혼 여부 자체가 그리 중요하지 않을 만큼 다양한 삶의 형태를 존중하고, 그것이 사회의 흐름을 바꾸는 시대의 결혼 예능이 궁금하다. - P55

학습에 재능이 있거나 부족한 재능을 뒷받침해 줄 환경이 되는 극소수 아이들이 그 가치를 향해 조금씩 성취해가고 있을 때, 학교는 그들을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에게 순응이나 포기 외에는 어떤 가치도 가르칠 예정이 없었다. - P61

노후라는 건 전전긍긍하며 대비하는 것이 아니고 만들어가는 것이란 걸 많은 여자들의 삶을 통해서 배운다. - P69

예능 속 남성 출연자들을 보면서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감정적인 이야기라 할지라도 그것을 내뱉는 데 확신이 있는 모습이 부러웠다. - P74

2010년 대종상은 정말 사랑이 많은 영화제였다. 아무리 한 해에 좋은 영화가 많았다지만 정말 누구에게도 소외감을 주고 싶지 않아서 열 개의 작품을 최우수작품상 후보로 선정해버린 영화제! 그러면 열 개에도 들지 못한 작품들의 슬픔은 누가 책임지지 싶지만 그거는 내 알 바 아닌! 그런 막무가내 선택적 박애정신! - P80

‘우리가 이 웃음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아느냐’는 자기연민도 쉽게 내비친다. 그래서 나는 항상 그들에게 무안함과 거리감을 동시에 느낀다. 이 모든 상황이 지겨워서 사람들은 한국 코미디를 외면한다. - P92

연극 형태의 한국 오픈 코미디가 과거의 명성을 찾으려면 경쟁 상대가 된 대안 매체의 저속함에 억울함을 갖기보단 그것의 문제점을 통렬히 비판하면서 진짜 오락이 무엇인지 훌륭한 기준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 P94

역사를 말하고, 소외된 것을 듣고, 불의에 참지 않으며, 육체의 한계에 도전하는 모든 기회가 오로지 남성에게만 주어진 방송을 보면서 공감하고, 감동하고, 응원하는 일도 앞으로는 할 수 없다. - P100

그러나 나는 정말 리얼리티 예능에서만큼은 그 사람이 존중받고 있다는 연출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P117

중년 남성들의 친목 도모와 취미 계발, 잊고 살아온 꿈과 열정을 되찾는 경험 따위를 늘어져라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10대 여성 시청자인 나에게 무슨 재미가 있었겠나. - P137

불법 촬영물 유포와 소비 행태가 기상예보처럼 매일 매 시각 고발되고, 권력형 성범죄와 그에 대한 수사의 미진함이 지탄을 받는다. 지금까지는 중년 남성들의 섹스 토크 같은 것들이 ‘위트’ 정도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겠지만 이제는 아니다. ‘무서워서 뭔 말을 못하겠다’하면서도 결국 말을 해온 사람들은 정말 이제 닥쳐야 할 때가 왔다. - P167

나는 주변이 아닌 자기 앞길만을 챙기는 남성 예능인이 위대한 인물로 추앙되는 것을 저지할 것이다. 혐오스럽고 둔감함 발언에 지금보다 몇 배는 더 예민하게 반응할 것이다. 오직 남성 동료만을 챙기는 인물에게 더는 ‘하느님’이나 ‘국민 MC’ 따위의 찬사를 허용하진 않을 것이다. - P18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