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의 위력이란 얼마나 대단한가.
기본 배출의 욕구를 적절히 충족시켜주는 화장실이란 말이다.
물론 배출 활동이 원활하지 못한 이 ㅡ 나 포함 ㅡ 들에겐
스트레스의 장이 되기도 한다.
어느 날, 나오지 않는 것들을 얼래며 변기에 앉아 박민규의 단편 '야쿠르트 아줌마'를
보고 있었다. 한참 용쓰고 앉아 있는데 보이는 문구.
"전 내세울게 없어서 그런지 내보낼 것도 없나봐요."
캬-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내가 접한 변비에 관한한 최고의 자조적 언사였다.
그 후 원활한 장 활동을 고대하며 화장실을 들락할 때마다 반성의 기미를
코딱지씩 내비치며 내 똥똥한 배를 문지른다.
목욕을 하고 나면 언제나 좋다. 뽀송뽀송의 기가 내 알몸을 통해서 뿜어져나오며
나릇나근나른함이 온 몸으로 뻗어나간다. 그렇다, 진정 그러하다.
단, 난 목욕을 시작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
하지만 Lush 등의 입욕제품이 판 치고 난 뒤부터 내 목욕 시작 생활이 증진 되었다.
butterball이나 tistytosty를 욕조 안으로 던져놓고 그것들이 지 한 몸 희생해서
거품을 일으키는 것을 보는 걸 즐기게 되었고, 던진 김에 그냥 물 빼기는 아까워서
몸까지 담그게 되는 것이다. 어으 좋다 혹은 시원하다 를 내뱉으며 몸담그고 몇 분 있다가는
욕조 밖으로 손을 휘휘 내저어 널부러져 있는 책들 중 한 권을 집어 들어 읽기 시작한다.
욕조에서 마음에 드는 구절을 만났을 때 귀퉁이 접기 혹은 밑줄 긋기는 욕조 밖에서보다 더 용이하다.
언젠가 욕조 안에서 골라든 책은 피츠제럴드 단편선이었는데, '컷글라스 그릇'의 한 구절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마음에 드는 구절을 만났을 때 습관처럼 나는 책을 가슴으로 안았고
그 구절의 페이지는 순식간에 물기를 빨아들였다. 욕조 밖으로 나와 좋은 냄새가 베인
울퉁불퉁한 페이지를 보며 깨닫는다. 아, 이 부분이 참으로 좋았던게로군. 연필도 귀퉁이접기도
필요없다. 그져 책을 안고 울퉁불퉁한 페이지를 만난다.
시간이 없어서 책을 읽지 못한다는 핑계는 내가 곧잘 써먹는 것이다. 9월 학기가 시작하고
각 과목의 리딩은 정신없이 밀려있다. 그런 상황에 교과서를 제쳐두고 다른 책을 읽는다는 건
왠지 책임감이 없어보인다! 그리고, 나는 정말 바쁘다. 일본어 공부 (일본 드라마를 다운받고
열혈히 시청하기) 도 해야하고, 영어문화권 연구 (프로젝트 런어웨이와 그레이즈 아나토미는
놓칠 수 없다) 도 해야하기 때문이다. 이런 '바쁜' 상황에서 화장실에서 읽는 책은 정말 효과적
이다. 두가지 일 ㅡ 배출 활동 + 독서 ㅡ 을 동시에 한다는 기분이 들어 나는야 멀티플레이어 야호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각잡고[...]하는 독서가 아니라서 책임감을 상실한 양심불편한 행동
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 것이다. 요근래에는 하루키의 '먼 북소리'를 슬렁슬렁 읽고 있는데
볼일도 제쳐두고 한참 읽고 있다보니 변기통의 물이 에게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화장실은
진정 근심을 덜어놓는 해우소다. 단, 주객전도된 화장실의 독서는 배출 장애라는 역효과도 있다.
나의 집중력이 발휘되는 때는 그렇게 흔하지 않다. 그 흔하지 않는 집중력이 발휘되는 장소는
90프로가 화장실 안이다. 기본적으로 산만한 나에게 큰 문제가 있겠지만, 화장실 외는 집중하기가
어려운 환경이다. 책상엔 인터넷되는 노트북이 있고, 고개를 돌리면 나의 스윗 퀸사이즈베드가
있다. 거실에는 티브이와 씨디와 책들이 널브러져 있다. 학교는 기본적으로 밥먹으러 가거나,
친구들을 만나러, 운동하러 혹은 옥상에 낮잠자러 자는 곳이다.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말합니다,
암쏘리 마마앤파파) 하지만 화장실에 앉는 순간은 쌀 일말곤 집중할 것이 없는 것이다. 나는
그 일에 집중할 힘을 이백프로 끓여올려 간간히 화장실에서 공부를 하곤 한다. 하지만 역시나
주객전도된 화장실에서의 공부는 배출 장애를 불러일으킨다.
빨간 러그 한 장 깔린 화장실, 노란 전등불 아래 발에 채이는 책들을 빤히 보다가 나왔다.
겨우 책 몇 권을 읽은 9월이 지났고, 두둑한 후드를 입고 서늘한 공기를 들이마실
10월이 왔다. 과제와 시험들이 쏟아지고, 읽고 싶은/읽어야 할 책들도 쌓여간다.
화장실에서 진정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는 짓도 꽤나 할 만하다.
지금보다 좀 더 어렸을 때는 담력을 쌓는다고 불을 꺼놓고 화장실에 가만히 앉아 있기도 했다.
그때부터 화장실의 효력을 믿기 시작했을까? (= 그때부터 변비가 시작되었을까?)
노란 전등불 아래, 오롯이 오직 나만 있는 시간. 요것에 맛들어져서, 내 변비는 쉽사리
없어질 것 같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