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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꿔야 할까보다. 쓰기 버튼을 누르고 새 카테고리 만들기 버튼까지 눌렀지만 적당한 게 떠오르지 않는다. 친구들이 몰래 몰래 나한테 얻어다 쓰고 했던 네이밍 센스는 먼 일이 된 것이 자명하고. 조금 비슷한 처지다. 날 카테고리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일단 세상에 발을 붙인 이상, 아무 것도 없다는 건 거짓말일테지만. 실제 온도랑 체감 온도랑은 항상 다르잖어. 


한달 전에는 같이 일하던 동료들을 만났다. 나는 1년이나 지난 것 같아요. 만나서 인사를 나누고 저 한마디를 했다. 내가 일은 그만둔지 고작 3개월이 지나있었는데. 위세를 떨치는 고기집 구석에서 1차를 마치고 일어설 때 다시 한 번 저 소리를 했다. 나는 1년이나 지난 것 같아요.  


한창 뜨거워져 있던 7월에 떠나 8월 한달은 다른 동네로 놀러갔다. 최신 스마트폰 지도를 보면서도 나는 새 동네에서 헤맸다. 귀가에는 항상 누군가의 음성지원을 받거나 눈치보이는 에스코트를 받으며 목적지에 당도할 수 있었다. 해야할 것이 있었지만, 반나절의 절반은 헌책방에서 나머지 절반은 커피숍에서. 다른 반나절은 잠을 자거나 사촌들과 축구를 보거나 야구를 보거나 배달음식을 먹었다. 여름은 해마다 더 더워지는데 미적지근해지는 건 나뿐이었다.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 곧잘 나는 내 누더기들 냄새를 맡아본다. 솜씨 좋게 그 누더기들을 지금 입고 있는 것에 덧댈 수 있음 좋을텐데. 갈수록 난 그 누더기들만 좋아하고, 언카테고라이즈드하고, 시간 같은 건 뭐지 하는 생각만 한다. 내일이 되면 고작 지나간 오늘을 생각하면서 1년이나 지난 것 같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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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섞어 쓰는 말들이 편해졌다. 갓 귀국한 네 살짜리처럼 애플+사과의 애과, 같은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놀랍게도, 새해 처음의 달부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버렸다. 심지어 태백으로 떠나는 보딩 계획까지 세웠다. 내일의 해야할 일 같은 것은 멀리 있고, 눈 앞의 삼천씨씨를 몇 통 비우는 것에 합심했다. 마음을 합쳐서 흡사해지니 恰이라는 한자가 나온다는 것을 읊조리기도 했다. 며칠 전 떠난 여행에서 섶섬의 풍경과 행원리 풍력발전기를 기어이 보자고 동행인을 졸랐다. 부인할 수 없다, 예전 누군가와 가기로 했던 곳에 대한 미련. 그런 마음 드는 거 정도야 어떠냐, 정도의 마음이 드는 것에 만족했다. 한 해를 보내는 것에, 새 해를 맞이하는 것에. 많은 해를 기록없이 붕 떠있다. 올해는 리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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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반지하에서 살지 않는다.  이제는 더부살이, 지키지도 않는 통금이 있고. 평생동안 간 횟수를 합친 것보다 훨씬 많은 횟수로 병원 방문이 있었다. 내장은 썩을대로 썩었다. 이 기간은 무엇이었던가. 이렇게 집중될 수 있나. 그녀는 글을 썼고, 그는 취직을 했고, 그는 사진을 찍었고, 그녀는 가게를 열었고, 그녀는 병을 앓았고, 그와 그녀의 소식은 알 길이 없다. 다시 떠난 이들은 없나, 떠나서 돌아오지 않은 이들만 있다. 그와 그녀와 그들이 그러는동안, 그 기간은 무엇이었던가. 읽는다, 허영은 멈출 길이 없다. 내 것인 적 한 번도 없었던 것들, 차곡히 쌓여라. 그리고 말해야 한다. 그만하겠습니다, 혹은 안녕히계세요, 혹은 감사했습니다, 혹은 이제 그만 (텔레토비의 율동을 곁들일 것). 덥다, 그래도 참는 건, 여름만 지나면 일년이 다 지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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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로 태평하게 보냈던 06년의 여름, 
  그리고, 마지막 여름.
  피토할 듯한 기세로 기침을 하며,
  지나간 계절들 생각. 말캉말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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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장실의 위력이란 얼마나 대단한가.

 기본 배출의 욕구를 적절히 충족시켜주는 화장실이란 말이다.
 물론 배출 활동이 원활하지 못한 이 ㅡ 나 포함 ㅡ 들에겐 
 스트레스의 장이 되기도 한다. 
 어느 날, 나오지 않는 것들을 얼래며 변기에 앉아 박민규의 단편 '야쿠르트 아줌마'를 
 보고 있었다. 한참 용쓰고 앉아 있는데 보이는 문구. 
 "전 내세울게 없어서 그런지 내보낼 것도 없나봐요."
 캬-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내가 접한 변비에 관한한 최고의 자조적 언사였다.
 그 후 원활한 장 활동을 고대하며 화장실을 들락할 때마다 반성의 기미를
 코딱지씩 내비치며 내 똥똥한 배를 문지른다. 

 목욕을 하고 나면 언제나 좋다. 뽀송뽀송의 기가 내 알몸을 통해서 뿜어져나오며
 나릇나근나른함이 온 몸으로 뻗어나간다. 그렇다, 진정 그러하다.
 단, 난 목욕을 시작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 
 하지만 Lush 등의 입욕제품이 판 치고 난 뒤부터 내 목욕 시작 생활이 증진 되었다.
 butterball이나 tistytosty를 욕조 안으로 던져놓고 그것들이 지 한 몸 희생해서 
 거품을 일으키는 것을 보는 걸 즐기게 되었고, 던진 김에 그냥 물 빼기는 아까워서
 몸까지 담그게 되는 것이다. 어으 좋다 혹은 시원하다 를 내뱉으며 몸담그고 몇 분 있다가는
 욕조 밖으로 손을 휘휘 내저어 널부러져 있는 책들 중 한 권을 집어 들어 읽기 시작한다.
 욕조에서 마음에 드는 구절을 만났을 때 귀퉁이 접기 혹은 밑줄 긋기는 욕조 밖에서보다 더 용이하다.
 언젠가 욕조 안에서 골라든 책은 피츠제럴드 단편선이었는데, '컷글라스 그릇'의 한 구절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마음에 드는 구절을 만났을 때 습관처럼 나는 책을 가슴으로 안았고
 그 구절의 페이지는 순식간에 물기를 빨아들였다. 욕조 밖으로 나와 좋은 냄새가 베인
 울퉁불퉁한 페이지를 보며 깨닫는다. 아, 이 부분이 참으로 좋았던게로군. 연필도 귀퉁이접기도
 필요없다. 그져 책을 안고 울퉁불퉁한 페이지를 만난다.

 시간이 없어서 책을 읽지 못한다는 핑계는 내가 곧잘 써먹는 것이다. 9월 학기가 시작하고
 각 과목의 리딩은 정신없이 밀려있다. 그런 상황에 교과서를 제쳐두고 다른 책을 읽는다는 건
 왠지 책임감이 없어보인다! 그리고, 나는 정말 바쁘다. 일본어 공부 (일본 드라마를 다운받고 
 열혈히 시청하기) 도 해야하고, 영어문화권 연구 (프로젝트 런어웨이와 그레이즈 아나토미는
 놓칠 수 없다) 도 해야하기 때문이다. 이런 '바쁜' 상황에서 화장실에서 읽는 책은 정말 효과적
 이다. 두가지 일 ㅡ 배출 활동 + 독서 ㅡ 을 동시에 한다는 기분이 들어 나는야 멀티플레이어 야호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각잡고[...]하는 독서가 아니라서 책임감을 상실한 양심불편한 행동
 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 것이다. 요근래에는 하루키의 '먼 북소리'를 슬렁슬렁 읽고 있는데
 볼일도 제쳐두고 한참 읽고 있다보니 변기통의 물이 에게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화장실은
 진정 근심을 덜어놓는 해우소다. 단, 주객전도된 화장실의 독서는 배출 장애라는 역효과도 있다. 

 나의 집중력이 발휘되는 때는 그렇게 흔하지 않다. 그 흔하지 않는 집중력이 발휘되는 장소는 
 90프로가 화장실 안이다. 기본적으로 산만한 나에게 큰 문제가 있겠지만, 화장실 외는 집중하기가
 어려운 환경이다. 책상엔 인터넷되는 노트북이 있고, 고개를 돌리면 나의 스윗 퀸사이즈베드가
 있다. 거실에는 티브이와
씨디와 책들이 널브러져 있다. 학교는 기본적으로 밥먹으러 가거나,
 친구들을 만나러, 운동하러 혹은 옥상에 낮잠자러 자는 곳이다.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말합니다,
 암쏘리 마마앤파파) 하지만 화장실에 앉는 순간은 쌀 일말곤 집중할 것이 없는 것이다. 나는
 그 일에 집중할 힘을 이백프로 끓여올려 간간히 화장실에서 공부를 하곤 한다. 하지만 역시나
 주객전도된 화장실에서의 공부는 배출 장애를 불러일으킨다.
 

 

 빨간 러그 한 장 깔린 화장실, 노란 전등불 아래 발에 채이는 책들을 빤히 보다가 나왔다.
 겨우 책 몇 권을 읽은 9월이 지났고, 두둑한 후드를 입고 서늘한 공기를 들이마실
 10월이 왔다. 과제와 시험들이 쏟아지고, 읽고 싶은/읽어야 할 책들도 쌓여간다. 
 화장실에서 진정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는 짓도 꽤나 할 만하다. 
 지금보다 좀 더 어렸을 때는 담력을 쌓는다고 불을 꺼놓고 화장실에 가만히 앉아 있기도 했다.
 그때부터 화장실의 효력을 믿기 시작했을까? (= 그때부터 변비가 시작되었을까?) 
 노란 전등불 아래, 오롯이 오직 나만 있는 시간. 요것에 맛들어져서, 내 변비는 쉽사리
 없어질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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