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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고화질] 마왕성에서 잘 자요 22 마왕성에서 잘 자요 22
쿠마노마타 카기지 지음, 정은서 옮김 / 대원씨아이/DCW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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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어요 ㅋㅋ 이 소재로 22권까디 갈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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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지음, 함규진 옮김 / 와이즈베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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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만큼 능력주의가 사회를 지배하는 담론으로 떠오른 적이 있을까 싶다. 우리는 "부모를 잘 두는 것도 능력"이라는 얘기도 들었고, 대학입학을 위해 서류를 위조하는 것이 영화 속 얘기만은 아니라는 것도 목도했다. 그 때마다 한국 사회는 능력주의의 논쟁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리고 이 책은 능력주의에 대한 책이다. 저자는 미국사회를 휩쓸었던 입시부정 사건을 언급하며 운을 뗀다. 부유한 학부모들이 서류위조, 지원자 바꿔치기 등 범죄를 서슴지 않았던 입시 에이전트에게 자녀들의 입시를 일임했던 사건이다. 이런 사건들만 보더라도 성공이라는 단 열매가 오롯이 순수한 노력의 댓가라곤 할 수 없다. 그리고 부잣집에서는 자녀 교육에 더 많은 투자를 할 수 있으니, 입시는 애초에 출발선이 다른 경쟁이다. 그러니 입시에서 성공을 거뒀다고 해서, 승자가 좋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는 할 수 없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 반론이 가능할 것이다. 서류위조는 극히 일부의 사례이고 범죄가 아니냐. 범죄야 당연히 단죄하는 것이 맞고, 출발선이 다른 것이야 공교육을 강화해서 모두에게 교육의 기회를 평등하게 부여해서 해결할 일 아니냐. 그리고 어쨌거나 많은 노력을 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몫이 주어지게 하는 것이 공정한 사회 아니냐.
저자는 이렇게 반박한다. 능력이라는 이름의 성공은 재능과 노력이 불가분적으로 결합된 결과다. 재능이야 말로 우연적으로 획득하는 것이 아니냐. 거기에다가 이 사회가 그 재능을 높이 사는 거 자체도 우연적으로 결정된 것 아니냐. 그리고 노력만 한다고 성공할 수 있냐. 죽도록 노력한다고 누구나 마이클 조던 될 수 있는 거 아니다. 또 노력할 수 있는 끈기 같은 것도 우연적으로 획득한, 일종의 재능 아니냐.
여기서 저자는 한 걸음을 더 나아간다. 능력주의는 승자로 하여금 성공을 자신의 능력 덕으로 돌리게 하고, 타인의 패배를 '그들이 못난 탓'이라고 생각하게 한다는 것. 그리고 패자도 자신의 패배를 자신이 못난 탓이라고 생각하며 자책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승자도 배려를 잊게 되고, 패자에게 연대감을 갖기 어렵게 된다. 사회는 공공선을 추구할 동력을 잃게 되고, 불평등은 치유되지 않고 정당화된다.
나는 마이클 센델의 주장에 전반적으로 동의하지만, 일부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다. 마이클 센델은 재능의 우연성을 강조하여 노력의 중요성을 의도적으로 숨기고 있다. 노력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반대측과 똑같은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또 우리가 노력에 보상을 하고 싶어도, 노력은 객관적으로 평가를 할 수 없으니 다소 오류가 있더라도 상관관계가 높은 성공이라는 지표에 보상을 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그리고 무작위처럼 능력주의를 빗겨난 체계로 보상체계를 설계할 경우 '노력할 유인' 자체가 없어진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든다. 어쨌거나 우리 대한민국은 대단한 자원이나 넓은 땅덩어리도 없이 사람들의 노력만으로 부를 일궈낸 나라이니까...
하지만 난 능력주의가 사람들을 지나치게 이기적으로 만든다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특히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은 과거처럼 효율 만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빈부격차, 기후변화... 이런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시민사회의 연대성, "측은지심"이 필요한데, 지금 우리는 극도로 분열되어 서로를 증오하는 사회가 됐다. 그리고 연대성을 상실한 이 사회에 기저에, 마이클 센델이 주장하는 것처럼 능력주의가 놓여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는 건 나에게 무척 힘든 일이었다. 우리 집은 양가가 다 농부집안이다. 전씨 집안에서 유일하게 SKY 대학에 진학해서 변호사까지 될때까지, 얼마나 많은 벽에 부딪혔는지. 외고입시, 대학입시, 대학원 입시... 돌뿌리를 밟고 비틀댈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전씨집안의 우둔한 머리가 나를 끌어내리는 것 같다는 의심을 피할 수가 없었다. 당연히 부모찬스 같은 것도 1도 없었고 공부만 죽도록 해야 했다. 그렇게 변호사가 됐는데 이런 내 성공이 우연이라며 손가락질을 받아야 한다니... 마이클 샌델을 하버드 생들이 싫어하는 것도 너무 당연하다. 그래서 책을 읽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이 능력주의 시대를 사는 우리가 꼭 한 번 읽어봐야 하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읽기 싫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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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법에게 미래를 묻다 - 로봇 기술 활용에 앞서 알아야 할 법 제도 이야기 SPIKE 총서 1
정상조 지음 / 사회평론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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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은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변호사들에게는 생소한 기술일 것이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기는 광경도 봤고, 언젠가 AI가 판사를 대체하고, 변호사는 쓸모없는 자격증이 된다는 얘기는 들었다. 하지만 아직 그런 기술이 상용화되기까지는 멀었다고 생각하다보니 당장 닥친 내 눈앞의 현실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최근 변호사 광고를 위한 플랫폼인줄만 알았던 "로톡"의 속내를 알고나니 변호사인 내 마음도 복잡해졌다. "로톡"은 일종의 변호사 알선서비스인데, 사람들이 로톡에 분쟁과 관련된 고민을 올리면, 변호사가 이에 대해 법률상담을 해주고 수임으로 연결시키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그런데 로톡이 이 법률상담 내용을 저장하고 있으며, 향후에는 AI에 학습시켜 사람들의 질문에 즉각적으로 변호사와 같은 답변을 하도록 시스템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로톡이 변호사의 서면이나, 법관의 판결문까지 학습한다면, 나중엔 서면도 AI 변호사가 쓰는 세상이 올 지도 모른다. 사실 내가 법인에서 일할 때도, 집행정지나 전형적인 형사사건의 경우에는 과거 서면을 꺼내서 의뢰인 사정에 맞게 복사, 붙여넣기를 해서 서면을 작성한 적도 많았다. 로톡이 더 많은 변호사들의 서면들을 학습해 서면을 쓰게 되면, 그 때도 진짜 변호사인 내가 작성한 서면이 그래도 AI보다는 훌륭하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지난 몇 년간 세상이 참 많이도 변했다. 옛날엔 음식점에 가면 카운터를 제일 먼저 갔는데, 이제는 입구에 서있는 키오스크로 간다. 음식점에서 5명이 일하면 1명은 카운터 직원이었는데 이들이 다 사라졌으니, 20%의 인력감축이 있었던 셈이다. 아니면, 지금은 5명이 주방에서 일하면서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집중하며, 전보다 여유롭게 일하게 된 것일까? 


"인공지능, 법에게 미래를 묻다" 이 책은 나에게 이런 궁금증을 떠올리게 했다. 기계가 인간보다 더 일을 잘하게 되면 인간은 어떻게 될까..? 과거에는 그래도 창의적인 일은 인간이 하고, 기계는 단순히 보조적인 업무를 하는데 그친다고 생각해서 기계에 대한 우월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인공지능이 베토벤 10번 교향곡을 작곡하고, 렘브란트의 그림을 그리는 세상이다. 오히려 인공지능의 학습에 인간의 데이터 가공이 필요해서, 개발도상국의 저임금 노동자를 고용해 단순작업인 데이터 라벨링을 한다니 오히려 이제는 창의적인 인공지능의 노동에 단순작업을 하는 인간이 종속된다고 봄이 옳을 것 같다. 데이터 라벨링 작업 자체도 누구나 대체할 수 있는 단순작업인데다가, 이 데이터가 집적된 결과는 이들 임시직 저임금 노동자들을 착취하는데 사용된다니, 데이터 식민주의라는 암울한 세상이 벌써 도래한 느낌이다.


그렇다고 해서 규제로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을 틀어막는다고 해서 "인간적인 세상"을 지킬 수 있단 말인가. 저자는 아니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결국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야 말기" 때문이며, 인공지능의 발전은 바로 "결국 일어날 일"이기 때문이다. 개화기에 우리나라는 오고가는 이양선에 맞서 항구의 문을 굳게 걸어잠그고 변화에 저항한 결과, 식민지가 되고야 말았다. 인공지능 기술 발전도 그와 같다. 우리가 문을 굳게 걸어잠근다고, 다른 나라들까지도 인공지능의 개발을 멈추는 것이 아니다. 변화에 맞설 수 없다면, 우리는 변화에 순응해서 이익을 누리는 나라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이 인공지능의 세계에서 어떻게 인간의 가치를 지켜낼 수 있을까? 인공지능의 고삐를 잡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인공지능은 자연스럽게 자본의 논리에 종속되어 빈부격차를 늘리고 인간을 소외시킬 수 밖에 없다. 바로 여기서 '법'의 고민이 존재한다. 이 고삐풀린 말에 굴레를 씌우고 편리한 기술이 인간을 위해 일하게 하는 것. 그것이 법의 역할이고 법이 해야 할 고민이다. 그 세상은 어쩌면 로봇이 벌어다 준 돈으로 인간이 편하게 생활하는 세상일 수도 있고(마치 로마시대에 노동은 노예만 하고 시민들은 철학과 향락만을 누렸듯이), 네 명이 할 일을 다섯 명이 하면서 하루 여덟 시간이 아닌 하루 다섯 시간만 일하는 세상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 세상은 노동자들은 저임금 잡일을 하고, 프라이버시를 침해당하며, 데이터 가공기계의 부품으로 전락하고, 부자들만 로봇으로 인한 편리함을 누리는 그런 세상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느낀 것은 아직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이었다. 인공지능의 발전이 목전에 가까운 지금, 인간의 가치를 더욱 마음 깊이 새기는 것, 그리고 기술이 자유롭게 발전될 수 있도록 하면서, 동시에 그 기술의 발전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공하게 하는 것. 그것이 인공지능의 시대를 사는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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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 요리사 - 혁명의 시대, 계몽의 감자
황종욱 지음 / 따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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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수많은 요리책이 있다. 비단 책뿐인가. 유튜브에는 요리 콘텐츠들이 넘쳐나고, 요리사들이 대중의 사랑을 받는 연예인이 된 지 오래다. 하지만 요리책의 기능적인 측면, 그러니까 어디 이 페이지에 나와 있는 음식을 똑같이 만들어보자-는 측면에 초점이 맞춰진 나머지, 요리라는 행위가 강박적인 복제의 장이 되어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당장 나부터 유튜브 요리 채널을 보면서, 프레임 한 프레임에 일시 정지를 걸어놓고 왜 내 요리가 저 요리와 같아지지 않는지 고민하지 않던가.

모두가 잊고 있는 것 같다. 먼 옛날부터 요리의 본질은 상상력이었다는 것을. ‘계량’이라는 현대의 개념이 생기기 전까지는, 요리는 선조들로부터 전해 들은 대략의 원재료에 만든 이의 상상력을 덧붙여 매 순간 적당하게 창조되는 것이었다. 같아질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같게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증이 설 곳도 없었다. 반짝이는 식탁을 위한 매 순간의 행위예술, 그것이 요리의 본질이었다.

이 책은 19세기에 쓰인 감자 요리책이다. 계량이 없던 시대에 쓰인 요리책은 현대의 우리에게는 답답함으로 다가온다. 꼭 전화기로 전해 듣는 엄마의 레시피같다. 엄마의 맛의 비결은 늘 ‘적당히’로 귀결되곤 했다. 하지만 요리책에 계량, 즉 복제에 대한 강박감이 사라지자 내가 이 공백을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이 공백을 채우면 내가 만든 이 요리가 백종원 ‘OOO’가 아닌 오롯이 나만의 요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겼다. 요리 사진 한 장 없는 요리책인데도 ‘생버터를 조금 섞으면 맛이 더욱 오묘해진다’라는 서술에 군침이 돈다. 맞다. 화려한 사진과 칼 같은 계량이 요리책의 본질은 아니었다. 인간은 돌도끼와 모닥불만 있던 때부터 요리를 해왔으며, 기실 요리를 하는 법은 누가 가르쳐줘서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실 ‘용기’였다. 안 써본 재료로 안 해본 요리를 해볼 용기, 그리고 이 요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요리이기 때문에 영 망할 위험은 없을 것이라는 약간의 안심, 왠지 맛있을 것 같아 요리를 해보고 싶다는 충동. 이 책은 우리가 잊고 있던 이런‘요리책의 본질’들을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조금 다른 얘기인데, 이 책은 감자 요리책 주제에 ‘공화국’을 들먹이며 ‘공화국 요리사’를 자처하고 있다. 왜 감자 요리책에 이런 거창한 제목이 붙었을까? 프랑스 혁명 무렵의 시대상을 들여다보면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필자는 역사 전문가가 아닌고로 나무위키 ‘감자’항목의 도움을 얻었다). 프랑스 혁명을 전후해서 극심한 가뭄, 홍수, 혹한이 프랑스를 휩쓸어 기근이 발생했다(1785년~1789년). 심지어 이 시기 즈음에는 이동 중이던 여행자 일행이 마을 주민들에게 먹혔다는 등의 식인에 대한 기록까지 나타난다고 한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기근으로 사람이 죽어가는 와중에도 최고의 구황작물인 감자를 가축에게만 먹이고 있었다. 시체를 땅에 묻듯 묻어야 난다는 이유로 감자가 악마의 작물이라는 미신이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반 채소인 줄 알고 독성이 있는 이파리와 줄기를 먹은 농민들이 쓰러지는 일들도 생겼다. 그래서 이 책의 출판인은 감자를 ‘자연이 인간에게 준 가장 소중한 선물’로 명명하여 감자에 대한 미신을 배격하면서도, ‘모든 연령대의 시민들에게, 이 조그만 책을 통해 감자를 경제적일 뿐 아니라 다채로운 방식으로 요리함으로써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여러 방법을 소개하고자’ 공화국 요리사를 자처하게 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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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리커버 특별판, 양장)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까치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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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소설. 난 내 돈 주고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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