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지음, 함규진 옮김 / 와이즈베리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난 몇 년만큼 능력주의가 사회를 지배하는 담론으로 떠오른 적이 있을까 싶다. 우리는 "부모를 잘 두는 것도 능력"이라는 얘기도 들었고, 대학입학을 위해 서류를 위조하는 것이 영화 속 얘기만은 아니라는 것도 목도했다. 그 때마다 한국 사회는 능력주의의 논쟁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리고 이 책은 능력주의에 대한 책이다. 저자는 미국사회를 휩쓸었던 입시부정 사건을 언급하며 운을 뗀다. 부유한 학부모들이 서류위조, 지원자 바꿔치기 등 범죄를 서슴지 않았던 입시 에이전트에게 자녀들의 입시를 일임했던 사건이다. 이런 사건들만 보더라도 성공이라는 단 열매가 오롯이 순수한 노력의 댓가라곤 할 수 없다. 그리고 부잣집에서는 자녀 교육에 더 많은 투자를 할 수 있으니, 입시는 애초에 출발선이 다른 경쟁이다. 그러니 입시에서 성공을 거뒀다고 해서, 승자가 좋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는 할 수 없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 반론이 가능할 것이다. 서류위조는 극히 일부의 사례이고 범죄가 아니냐. 범죄야 당연히 단죄하는 것이 맞고, 출발선이 다른 것이야 공교육을 강화해서 모두에게 교육의 기회를 평등하게 부여해서 해결할 일 아니냐. 그리고 어쨌거나 많은 노력을 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몫이 주어지게 하는 것이 공정한 사회 아니냐.
저자는 이렇게 반박한다. 능력이라는 이름의 성공은 재능과 노력이 불가분적으로 결합된 결과다. 재능이야 말로 우연적으로 획득하는 것이 아니냐. 거기에다가 이 사회가 그 재능을 높이 사는 거 자체도 우연적으로 결정된 것 아니냐. 그리고 노력만 한다고 성공할 수 있냐. 죽도록 노력한다고 누구나 마이클 조던 될 수 있는 거 아니다. 또 노력할 수 있는 끈기 같은 것도 우연적으로 획득한, 일종의 재능 아니냐.
여기서 저자는 한 걸음을 더 나아간다. 능력주의는 승자로 하여금 성공을 자신의 능력 덕으로 돌리게 하고, 타인의 패배를 '그들이 못난 탓'이라고 생각하게 한다는 것. 그리고 패자도 자신의 패배를 자신이 못난 탓이라고 생각하며 자책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승자도 배려를 잊게 되고, 패자에게 연대감을 갖기 어렵게 된다. 사회는 공공선을 추구할 동력을 잃게 되고, 불평등은 치유되지 않고 정당화된다.
나는 마이클 센델의 주장에 전반적으로 동의하지만, 일부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다. 마이클 센델은 재능의 우연성을 강조하여 노력의 중요성을 의도적으로 숨기고 있다. 노력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반대측과 똑같은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또 우리가 노력에 보상을 하고 싶어도, 노력은 객관적으로 평가를 할 수 없으니 다소 오류가 있더라도 상관관계가 높은 성공이라는 지표에 보상을 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그리고 무작위처럼 능력주의를 빗겨난 체계로 보상체계를 설계할 경우 '노력할 유인' 자체가 없어진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든다. 어쨌거나 우리 대한민국은 대단한 자원이나 넓은 땅덩어리도 없이 사람들의 노력만으로 부를 일궈낸 나라이니까...
하지만 난 능력주의가 사람들을 지나치게 이기적으로 만든다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특히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은 과거처럼 효율 만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빈부격차, 기후변화... 이런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시민사회의 연대성, "측은지심"이 필요한데, 지금 우리는 극도로 분열되어 서로를 증오하는 사회가 됐다. 그리고 연대성을 상실한 이 사회에 기저에, 마이클 센델이 주장하는 것처럼 능력주의가 놓여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는 건 나에게 무척 힘든 일이었다. 우리 집은 양가가 다 농부집안이다. 전씨 집안에서 유일하게 SKY 대학에 진학해서 변호사까지 될때까지, 얼마나 많은 벽에 부딪혔는지. 외고입시, 대학입시, 대학원 입시... 돌뿌리를 밟고 비틀댈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전씨집안의 우둔한 머리가 나를 끌어내리는 것 같다는 의심을 피할 수가 없었다. 당연히 부모찬스 같은 것도 1도 없었고 공부만 죽도록 해야 했다. 그렇게 변호사가 됐는데 이런 내 성공이 우연이라며 손가락질을 받아야 한다니... 마이클 샌델을 하버드 생들이 싫어하는 것도 너무 당연하다. 그래서 책을 읽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이 능력주의 시대를 사는 우리가 꼭 한 번 읽어봐야 하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읽기 싫어도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