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법에게 미래를 묻다 - 로봇 기술 활용에 앞서 알아야 할 법 제도 이야기 SPIKE 총서 1
정상조 지음 / 사회평론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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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은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변호사들에게는 생소한 기술일 것이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기는 광경도 봤고, 언젠가 AI가 판사를 대체하고, 변호사는 쓸모없는 자격증이 된다는 얘기는 들었다. 하지만 아직 그런 기술이 상용화되기까지는 멀었다고 생각하다보니 당장 닥친 내 눈앞의 현실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최근 변호사 광고를 위한 플랫폼인줄만 알았던 "로톡"의 속내를 알고나니 변호사인 내 마음도 복잡해졌다. "로톡"은 일종의 변호사 알선서비스인데, 사람들이 로톡에 분쟁과 관련된 고민을 올리면, 변호사가 이에 대해 법률상담을 해주고 수임으로 연결시키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그런데 로톡이 이 법률상담 내용을 저장하고 있으며, 향후에는 AI에 학습시켜 사람들의 질문에 즉각적으로 변호사와 같은 답변을 하도록 시스템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로톡이 변호사의 서면이나, 법관의 판결문까지 학습한다면, 나중엔 서면도 AI 변호사가 쓰는 세상이 올 지도 모른다. 사실 내가 법인에서 일할 때도, 집행정지나 전형적인 형사사건의 경우에는 과거 서면을 꺼내서 의뢰인 사정에 맞게 복사, 붙여넣기를 해서 서면을 작성한 적도 많았다. 로톡이 더 많은 변호사들의 서면들을 학습해 서면을 쓰게 되면, 그 때도 진짜 변호사인 내가 작성한 서면이 그래도 AI보다는 훌륭하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지난 몇 년간 세상이 참 많이도 변했다. 옛날엔 음식점에 가면 카운터를 제일 먼저 갔는데, 이제는 입구에 서있는 키오스크로 간다. 음식점에서 5명이 일하면 1명은 카운터 직원이었는데 이들이 다 사라졌으니, 20%의 인력감축이 있었던 셈이다. 아니면, 지금은 5명이 주방에서 일하면서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집중하며, 전보다 여유롭게 일하게 된 것일까? 


"인공지능, 법에게 미래를 묻다" 이 책은 나에게 이런 궁금증을 떠올리게 했다. 기계가 인간보다 더 일을 잘하게 되면 인간은 어떻게 될까..? 과거에는 그래도 창의적인 일은 인간이 하고, 기계는 단순히 보조적인 업무를 하는데 그친다고 생각해서 기계에 대한 우월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인공지능이 베토벤 10번 교향곡을 작곡하고, 렘브란트의 그림을 그리는 세상이다. 오히려 인공지능의 학습에 인간의 데이터 가공이 필요해서, 개발도상국의 저임금 노동자를 고용해 단순작업인 데이터 라벨링을 한다니 오히려 이제는 창의적인 인공지능의 노동에 단순작업을 하는 인간이 종속된다고 봄이 옳을 것 같다. 데이터 라벨링 작업 자체도 누구나 대체할 수 있는 단순작업인데다가, 이 데이터가 집적된 결과는 이들 임시직 저임금 노동자들을 착취하는데 사용된다니, 데이터 식민주의라는 암울한 세상이 벌써 도래한 느낌이다.


그렇다고 해서 규제로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을 틀어막는다고 해서 "인간적인 세상"을 지킬 수 있단 말인가. 저자는 아니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결국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야 말기" 때문이며, 인공지능의 발전은 바로 "결국 일어날 일"이기 때문이다. 개화기에 우리나라는 오고가는 이양선에 맞서 항구의 문을 굳게 걸어잠그고 변화에 저항한 결과, 식민지가 되고야 말았다. 인공지능 기술 발전도 그와 같다. 우리가 문을 굳게 걸어잠근다고, 다른 나라들까지도 인공지능의 개발을 멈추는 것이 아니다. 변화에 맞설 수 없다면, 우리는 변화에 순응해서 이익을 누리는 나라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이 인공지능의 세계에서 어떻게 인간의 가치를 지켜낼 수 있을까? 인공지능의 고삐를 잡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인공지능은 자연스럽게 자본의 논리에 종속되어 빈부격차를 늘리고 인간을 소외시킬 수 밖에 없다. 바로 여기서 '법'의 고민이 존재한다. 이 고삐풀린 말에 굴레를 씌우고 편리한 기술이 인간을 위해 일하게 하는 것. 그것이 법의 역할이고 법이 해야 할 고민이다. 그 세상은 어쩌면 로봇이 벌어다 준 돈으로 인간이 편하게 생활하는 세상일 수도 있고(마치 로마시대에 노동은 노예만 하고 시민들은 철학과 향락만을 누렸듯이), 네 명이 할 일을 다섯 명이 하면서 하루 여덟 시간이 아닌 하루 다섯 시간만 일하는 세상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 세상은 노동자들은 저임금 잡일을 하고, 프라이버시를 침해당하며, 데이터 가공기계의 부품으로 전락하고, 부자들만 로봇으로 인한 편리함을 누리는 그런 세상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느낀 것은 아직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이었다. 인공지능의 발전이 목전에 가까운 지금, 인간의 가치를 더욱 마음 깊이 새기는 것, 그리고 기술이 자유롭게 발전될 수 있도록 하면서, 동시에 그 기술의 발전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공하게 하는 것. 그것이 인공지능의 시대를 사는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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