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고 고른 말 - 카피라이터·만화가·시인 홍인혜의 언어생활
홍인혜 지음 / 미디어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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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언어는 고작 자모음 몇 개의 조합인 주제에, 목청을 울리는 찰나의 진동인 주제에 우리 영혼의 각도를 바꾼다.

최근 이전에 쓴 일기를 다시 읽다 내가 '싫어한다'는 말을 자주 쓴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랐다. 코로나 싫어, 마스크 싫어, 원고 거절당하는 거 싫어, 아들이 떼쓰는 거 싫어, 아들의 떼도 받아주지 못하는 내 무능력이 싫어...2년 간의 팬데믹 상황에서 집에 갇힌 나는 세상 모든 것을 싫어하며 나 자신까지 싫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혐오 표현이 일상화되고 사람들은 자기 자신과 다른 것을 배척하면서 서서히 고립된다.

말은 중요하다. 나는 네가 아니기에 완벽하게 너를 알 수 없지만 말이 있다면 이해를 향해 노력할 수 있다. 칭찬의 말이 너의 영혼을 밝히고 말의 변화가 생각의 변화를 유도한다. 나이가 들어가는 내 몸은 헌 몸이 아니라 '정든 몸'이고(29p, 헌 몸과 정든 몸), 도둑고양이는 '이웃고양이'로 새롭게 불리며 가까운 이웃이 되며(266p, 도둑에서 이웃으로), 등단한 친구를 '시인'이라 부르며 자랑스럽게 웃는다(108p, 나는 너의 시인). 카피라이터이자 만화가, 시인으로 활동하는 그녀는 언어애호가이자 '창작노동자'이다. 누구보다 언어에 예민하고, 말의 맛을 음미하며, 단어를 가지고 즐겁게 놀 줄 아는 사람.

언어애호가의 언어생활을 즐겁게 따라가다 가장 마음에 들어왔던 말은 '아꼬와'였다. 아꼽다는 제주 방언으로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의미로, 작가가 첫 조카를 처음 본 순간 떠올린 말이다. 아꼬와, 아꼬와, 아까워, 네가 닳아 없어질까 아까워, 신생아실에 누워 있는 팔뚝만 한 크기의 내 아이, 겨우 3kg의 생명이 나와 같은 심장을 가지고 숨을 쉬고 있다는 생각에 함부로 안기도 조심스러웠던 그때의 감정을 이 단어가 정확히 관통했다.

우리는 한때 오름이처럼 '아꼬운'사람이었다. 너무 여리고 귀해서 시선에도 닳아 없어질까 아까운 존재였다. 인간이 인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경이의 산증인이었다. 그저 그 있음만으로 파장을 일으키는 황홀이었다. 가끔 세상살이에 지쳐 아무도 나를 아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면 이 마음을 떠올려야겠다. 분명 누군가는 어린 나를 바라보며 "아꼬와, 아꼬와"했을 테니까. 같은 책, 107쪽


아이를 보며 '아꼬와, 아꼬와' 외친다거나, '나래바'같이 내 집에 나만의 이름을 붙인다거나, 취미 비용을 교육비라 명명하며 스스로를 양육한다는 선언으로 보듬어 안기 같은 언어 생활은 부정적이기 쉬운 자아를 변화시킨다. 언어를 갈고 닦고 말을 고르고 고르며 나 자신을 갈고 닦고 새롭게 고른다. '나는 좋아해'라는 말로 나의 취향을 긍정한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져서 집 꾸미는 일이 좋아, 마스크 덕에 외출 준비가 간편해져서 좋아, 우는 아이를 달래 좋아하는 과자를 먹으며 웃는 얼굴을 들여다보는 게 좋아, 아이를 돌보고 글을 쓰는 내 '투잡'이 좋아, 이 책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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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 컬렉션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 기념판) - 전11권 - 가난한 사람들 + 죄와 벌 + 백치 + 악령 +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석영중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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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자마자 감격해서 탄성 예상보다 훨씬 더 고급지고 읽기 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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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로드
조너선 프랜즌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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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로드crossroads, 교차로, 십자로, 갈림길, 기로, 중대한 삶의 국면, 갈림길에서 어떤 길로 갈 것인가 선택하는 순간 결정되는 운명. 조너선 프랜즌의 [크로스로드]에서 이 이름은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뉴프로스펙트 마을의 교회에 소속된 청소년부를 지칭한다. 


교회의 부목사로 재직 중인 러스 힐데브란트는 이 크로스로드에서 3년 전 큰 모욕을 당했고 아내인 매리언과 냉담한 상태. 큰아들 클렘은 아버지의 뜻에 반해 대학을 그만두고 베트남전쟁에 참전하려 하고, 딸 베키와 셋째 페리는 아버지가 쫓겨나다시피한 크로스로드에 가입하고, 각자 연애와 마약 문제로 혼란스러운 상태.


크로스로드는 어떤 곳인가? 아니, 1970년대 미국 중서부 지역의 교회란 어떤 장소인가? 한 번도 종교적인 경험을 해 본 적 없는 무신론자의 눈에 대림절(성탄절 전야)과 부활절이 중요한 명절이고 신과 예수와 신앙에 대해 거리낌없이 토론하는 세계는 낯설다. 소설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매리언과 베키의 '신과의 만남' 묘사조차 과장되게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그렇다고 이 소설이 처음부터 끝까지 종교적이기만 한 작품은 아니다. 일반적인 독자의 눈에 [크로스로드]는 거대한 감정 가족 드라마다.


베키는 안전이라는 말이 수동적 공격성이라는 말과 마찬가지로 크로스로드의 금기 단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안전하다'란 '위험을 감수하다'의 반대말이었다. 그리고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그 어떤 개인적 성장도 일어날 수 없었다.

"넌 감정을 숨길 필요가 없어."

- 조너선 프랜즌 [크로스로드]


크로스로드에서 아이들은 다양한 활동을 통해 스스로의 감정을 토로하며 솔직하게 다가간다. 부목사 러스가 크로스로드에서 배척당한 가장 큰 이유가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종교적인 위선으로 기도를 집전하다 아이들의 반발을 산 것이다. 가장 어린 넷째 저드슨을 제외한 세 아이들, 클렘과 베키, 페리는 각자 크로스로드에 가입하여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며 자신의 솔직한 감정과 대면한다. 그 사이에 매리언은 가족 몰래 정신과 상담을 받고 그녀 역시 오랜 기간 억누르고 있던 적나라한 감정과 마주친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네 감정에 솔직하라'가 아닐까? 네 이웃을 사랑하라, 네 원수마저도 사랑하라, 솔직하라는 말은 내 감정에 휩쓸리지 말고 감정을 '대면하라'는 뜻이다. 스스로의 감정을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순간의 감정에 따라가기만 하면 교차로에서 달려오는 자동차를 보지 못한다. 러스의 경우에 그 자동차는 프렌시스 코트렐이라는 과부였고, 페리는 대마초와 코카인이라는 마약에 치여 쓰러진다. 감정에 거리를 두고 제대로 보게 될 때, 매리언과 베키의 경우처럼 신을 보게 된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에 차 가고자 하는 길을 선택하고 뒤돌아보지 않는다.


가족의 모든 감정이 한데 모여 교차한 봄 수련회, 러스가 간통을 저지르는 그 순간 그의 아들은 약에 취해 방화를 저지른다. 매리언은 러스를 용서하고 부부는 가장 크게 추락한 아들을 보듬기 위해 다른 아이들에게 상처를 준다. 위기의 끝에 힐데브란트 가족은 다시 뭉치고, 흩어진다. 베키는 대학을 포기하고 아이를 낳고 자신의 가족을 이루고 부모를 용서하지 않는다. 클렘은 부모와 베키 사이에서 갈등하지만 베키의 선택을 존중한다는 암시(그 역시 가족을 떠난다는)로 소설은 끝맺는다.


감정에 뼈대가 있다면 조너선 프랜즌의 소설은 골수까지 침범해 분석하는 철두철미함과 세심함을 보여 준다. 각자의 감정에 휩쓸리는 등장인물 한 명 한 명 모두에게 쉽게 몰입하게 되고,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게 한다. 간통을 저지른 러스나 저지를 뻔한 매리언을 욕하기는 쉽다. 가족이라는 운명을 받아들이는 여성 인물들의 선택에 실망할 수도 있다. 소설은 그런 인간들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이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보여줄 뿐이다. 인간이란 감정의 동물이고, 가장 큰 감정은 사랑이며, 사랑이 있기에 질투심, 이기심, 외로움, 분노, 슬픔 등의 감정들이 따라오는 것이고, 우리는 그런 사랑의 감정을 안다. 너의.....를 사랑하라. 사랑은 안전하지 않지만,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성장도 없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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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편안한 죽음 을유세계문학전집 111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강초롱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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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초겨울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나와 직접적으로 가까운 이의 부고는 처음이었다. 출산을 두 달 앞둔 나는 무거운 몸을 끌고 KTX를 탔다. 같은 해 추석에 찾아뵌 게 마지막 만남이 되어버렸다. 절을 올린 뒤 내가 임신한 걸 알리자 할아버지는 환하게 웃으셨다. 내가 품은 생명이 잠시나마 할아버지께 가닿은 순간이었다.


영정사진 속 할아버지께 두 번의 절을 올리고 상주인 아버지를 보는데 깜짝 놀랐다. 아빠 얼굴에 이렇게 주름이 많았나? 아빠도,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모두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나이가 드셨구나, 언제나 그 자리에 영원히 계실 것 같았던 할아버지가 떠나셨다. 죽음과의 거리가 이렇게 가까운 건 처음이었고 그 가까움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충격을 받았다.


언제나 엄마를 살아있는 존재로 여겨 왔던 나는 언젠가, 그것도 얼마 안 가서 곧 엄마가 죽는 걸 보게 되리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진지하게 해 본 적이 없었다. 내게 있어서 엄마의 죽음은 탄생과 마찬가지로 신화적인 시간의 차원에 속한 것이었다.

시몬 드 보부아르, [아주 편안한 죽음], 26쪽


우리는 죽음을 정면으로 대면할 준비가 잘 되어있지 않다. 현대사회는 죽음을 꽁꽁 숨긴다. 장례식장과 납골당, 무덤을 도시 외곽으로 밀어내고 의도적으로 망각한다. '향수, 모피, 속옷, 보석, 죽음에게 내어 줄 자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가 뿜어내는 호화로운 거만함의 표상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세계의 이면에 죽음이 숨겨져 있었다. 개인 병원, 종합 병원, 그리고 닫힌 병실이 간직하고 있는 침울한 비밀 속에 죽음이 깃들어 있었다. 그것이 내가 아는 유일한 진실이었다.(같은 책, 111쪽)' 내 주변 사람들도, 나 자신도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생각하며 삶을 이어간다. 그렇게 방심한 우리 앞을 죽음이 예고 없이 막아선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 지하철을 기다리다, 친구와 함께 길을 걷다 눈앞에 등장한 죽음 앞에서 우리는 속절없이 당황한다.


보부아르도 병든 어머니의 무력한 육체를 정면으로 직시하고 충격을 받는다. 5주 전만 해도 건강해 보였던 어머니가 집에서 넘어지는 사고를 당하고, 식사를 잘 못하는 것을 본 의사의 제안으로 방사선 검사를 하다 말기 암에 걸린 것을 발견한다. 길어야 하루이틀이라는 의사의 말에 충격받은 보부아르와 여동생은 엄마에게 복막염이라 둘러대고 개복수술을 감행해 4주의 시간을 얻는다. 엄마와 함께하는 생애 마지막 시간, 그 속에서 보부아르는 그저 엄마였던 그녀 안에서 '프랑수아즈 드 보부아르'라는 유일무이한 존재를 새롭게 발견한다.


프랑수아즈 드 보부아르

이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자신의 이름으로 불린 적이 거의 없는, 잊힌 여인에 불과했던 엄마가 한 명의 주체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었다.

같은 책, 146쪽


'있을 때 잘 해'라는 말을 쉽게 한다. 충고는 쉽고 실행은 어렵다. 돌아가시기 전에 좀 더 자주 할아버지를 찾아 뵐 걸, 후회는 쉽고 이미 늦었다. 장례식장과 멀지 않은 요양병원에 계신 할머니를 찾아뵈었다. 몇 년 전부터 정신이 흐릿한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걸 모르셨다. 부푼 내 배를 쓸어내리며 할아버지와 같은 환한 미소로 웃으셨다. 그날 장례식장에서 아버지와 친척 어른들에게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처음 만나 결혼하게 된 이야기를 자세히 듣게 되었다. 서울과 장흥과 제주도를 오가는 이야기 속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새로운 주인공으로 호명되었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 두 달 뒤에 할머니는 '밥 해 줘야지'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가셨다.


자연스러운 죽음은 없다. 인간에게 닥친 일 가운데 그 무엇도 자연스러운 것은 없다. 지금 이 순간 인간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 이는 그 자체로 세상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하지만 각자에게 자신의 죽음은 하나의 사고다. 심지어 자신이 죽으리라는 걸 알고 이를 사실로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인간에게 죽음은 하나의 부당한 폭력에 해당한다.

같은 책, 153쪽


큰 병 없이 노환으로 돌아가신 나의 조부모님께 호상이라는 말을 쓰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두 분의 죽음은 여전히 충격이고 나를 보고 웃으시던 마지막 미소를 반복해서 되새긴다. 죽음에 지나치게 매몰되는 건 좋지 않다. 그렇다고 너무 가볍게 취급하는 태도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차피 인간은 다 죽어'같은 말은 죽음이 코앞에 닥친 엄마를 돌보는 보부아르에게 전혀 쓸모가 없다. 나의 진짜 생활은 엄마 곁에서 이루어지고 있었고 엄마를 지키는 것, 그것만이 내 유일한 목표였다.(같은 책, 103쪽) 작가는 자신의 어머니가 본능적으로 가까이 다가온 죽음을 인지하고, 억누르며 살아 온 자기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을 상세히 묘사한다. 빠르게 무너져가는 육체와 극심한 고통과 그럼에도 반짝이는 순간들, 연장된 4주 간의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엄마를 돌본 뒤 한 권의 책으로 애도하는 과정.


함께 한 시간이 있었기에 작가는 엄마의 죽음에 '아주 편안한 죽음'이라는 제목을 달 수 있었다. 엄마의 죽음이,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죽음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건 아니지만, 좋은 죽음 따위는 없지만, 최소한 편안한 죽음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사실 엄마는 비교적 편안히 죽음을 맞이하셨다.

같은 책, 137쪽


타인의 애도의 과정을 따라가며 슬쩍 나의 슬픔을 얹는다. 가장 가까운 이를 잃은 상실감을 달래기 위한 애도의 글쓰기, 인간의 죽음이 운명인 이상 절대 끊기지 않을 슬픔의 형상화 작업.


*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언제나 엄마를 살아있는 존재로 여겨 왔던 나는 언젠가, 그것도 얼마 안 가서 곧 엄마가 죽는 걸 보게 되리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진지하게 해 본 적이 없었다. 내게 있어서 엄마의 죽음은 탄생과 마찬가지로 신화적인 시간의 차원에 속한 것이었다.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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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 단편소설 전집 - 기획 29주년 기념 특별 한정판 버지니아 울프 전집 10
버지니아 울프 지음, 한국 버지니아 울프 학회 외 옮김 / 솔출판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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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조이스, 마르셀 프루스트와는 또 다른 의식의 흐름 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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