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죽음을 정면으로 대면할 준비가 잘 되어있지 않다. 현대사회는 죽음을 꽁꽁 숨긴다. 장례식장과 납골당, 무덤을 도시 외곽으로 밀어내고 의도적으로 망각한다. '향수, 모피, 속옷, 보석, 죽음에게 내어 줄 자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가 뿜어내는 호화로운 거만함의 표상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세계의 이면에 죽음이 숨겨져 있었다. 개인 병원, 종합 병원, 그리고 닫힌 병실이 간직하고 있는 침울한 비밀 속에 죽음이 깃들어 있었다. 그것이 내가 아는 유일한 진실이었다.(같은 책, 111쪽)' 내 주변 사람들도, 나 자신도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생각하며 삶을 이어간다. 그렇게 방심한 우리 앞을 죽음이 예고 없이 막아선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 지하철을 기다리다, 친구와 함께 길을 걷다 눈앞에 등장한 죽음 앞에서 우리는 속절없이 당황한다.
보부아르도 병든 어머니의 무력한 육체를 정면으로 직시하고 충격을 받는다. 5주 전만 해도 건강해 보였던 어머니가 집에서 넘어지는 사고를 당하고, 식사를 잘 못하는 것을 본 의사의 제안으로 방사선 검사를 하다 말기 암에 걸린 것을 발견한다. 길어야 하루이틀이라는 의사의 말에 충격받은 보부아르와 여동생은 엄마에게 복막염이라 둘러대고 개복수술을 감행해 4주의 시간을 얻는다. 엄마와 함께하는 생애 마지막 시간, 그 속에서 보부아르는 그저 엄마였던 그녀 안에서 '프랑수아즈 드 보부아르'라는 유일무이한 존재를 새롭게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