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편안한 죽음 을유세계문학전집 111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강초롱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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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초겨울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나와 직접적으로 가까운 이의 부고는 처음이었다. 출산을 두 달 앞둔 나는 무거운 몸을 끌고 KTX를 탔다. 같은 해 추석에 찾아뵌 게 마지막 만남이 되어버렸다. 절을 올린 뒤 내가 임신한 걸 알리자 할아버지는 환하게 웃으셨다. 내가 품은 생명이 잠시나마 할아버지께 가닿은 순간이었다.


영정사진 속 할아버지께 두 번의 절을 올리고 상주인 아버지를 보는데 깜짝 놀랐다. 아빠 얼굴에 이렇게 주름이 많았나? 아빠도,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모두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나이가 드셨구나, 언제나 그 자리에 영원히 계실 것 같았던 할아버지가 떠나셨다. 죽음과의 거리가 이렇게 가까운 건 처음이었고 그 가까움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충격을 받았다.


언제나 엄마를 살아있는 존재로 여겨 왔던 나는 언젠가, 그것도 얼마 안 가서 곧 엄마가 죽는 걸 보게 되리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진지하게 해 본 적이 없었다. 내게 있어서 엄마의 죽음은 탄생과 마찬가지로 신화적인 시간의 차원에 속한 것이었다.

시몬 드 보부아르, [아주 편안한 죽음], 26쪽


우리는 죽음을 정면으로 대면할 준비가 잘 되어있지 않다. 현대사회는 죽음을 꽁꽁 숨긴다. 장례식장과 납골당, 무덤을 도시 외곽으로 밀어내고 의도적으로 망각한다. '향수, 모피, 속옷, 보석, 죽음에게 내어 줄 자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가 뿜어내는 호화로운 거만함의 표상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세계의 이면에 죽음이 숨겨져 있었다. 개인 병원, 종합 병원, 그리고 닫힌 병실이 간직하고 있는 침울한 비밀 속에 죽음이 깃들어 있었다. 그것이 내가 아는 유일한 진실이었다.(같은 책, 111쪽)' 내 주변 사람들도, 나 자신도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생각하며 삶을 이어간다. 그렇게 방심한 우리 앞을 죽음이 예고 없이 막아선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 지하철을 기다리다, 친구와 함께 길을 걷다 눈앞에 등장한 죽음 앞에서 우리는 속절없이 당황한다.


보부아르도 병든 어머니의 무력한 육체를 정면으로 직시하고 충격을 받는다. 5주 전만 해도 건강해 보였던 어머니가 집에서 넘어지는 사고를 당하고, 식사를 잘 못하는 것을 본 의사의 제안으로 방사선 검사를 하다 말기 암에 걸린 것을 발견한다. 길어야 하루이틀이라는 의사의 말에 충격받은 보부아르와 여동생은 엄마에게 복막염이라 둘러대고 개복수술을 감행해 4주의 시간을 얻는다. 엄마와 함께하는 생애 마지막 시간, 그 속에서 보부아르는 그저 엄마였던 그녀 안에서 '프랑수아즈 드 보부아르'라는 유일무이한 존재를 새롭게 발견한다.


프랑수아즈 드 보부아르

이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자신의 이름으로 불린 적이 거의 없는, 잊힌 여인에 불과했던 엄마가 한 명의 주체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었다.

같은 책, 146쪽


'있을 때 잘 해'라는 말을 쉽게 한다. 충고는 쉽고 실행은 어렵다. 돌아가시기 전에 좀 더 자주 할아버지를 찾아 뵐 걸, 후회는 쉽고 이미 늦었다. 장례식장과 멀지 않은 요양병원에 계신 할머니를 찾아뵈었다. 몇 년 전부터 정신이 흐릿한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걸 모르셨다. 부푼 내 배를 쓸어내리며 할아버지와 같은 환한 미소로 웃으셨다. 그날 장례식장에서 아버지와 친척 어른들에게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처음 만나 결혼하게 된 이야기를 자세히 듣게 되었다. 서울과 장흥과 제주도를 오가는 이야기 속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새로운 주인공으로 호명되었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 두 달 뒤에 할머니는 '밥 해 줘야지'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가셨다.


자연스러운 죽음은 없다. 인간에게 닥친 일 가운데 그 무엇도 자연스러운 것은 없다. 지금 이 순간 인간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 이는 그 자체로 세상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하지만 각자에게 자신의 죽음은 하나의 사고다. 심지어 자신이 죽으리라는 걸 알고 이를 사실로 받아들인다 할지라도, 인간에게 죽음은 하나의 부당한 폭력에 해당한다.

같은 책, 153쪽


큰 병 없이 노환으로 돌아가신 나의 조부모님께 호상이라는 말을 쓰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두 분의 죽음은 여전히 충격이고 나를 보고 웃으시던 마지막 미소를 반복해서 되새긴다. 죽음에 지나치게 매몰되는 건 좋지 않다. 그렇다고 너무 가볍게 취급하는 태도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차피 인간은 다 죽어'같은 말은 죽음이 코앞에 닥친 엄마를 돌보는 보부아르에게 전혀 쓸모가 없다. 나의 진짜 생활은 엄마 곁에서 이루어지고 있었고 엄마를 지키는 것, 그것만이 내 유일한 목표였다.(같은 책, 103쪽) 작가는 자신의 어머니가 본능적으로 가까이 다가온 죽음을 인지하고, 억누르며 살아 온 자기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을 상세히 묘사한다. 빠르게 무너져가는 육체와 극심한 고통과 그럼에도 반짝이는 순간들, 연장된 4주 간의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엄마를 돌본 뒤 한 권의 책으로 애도하는 과정.


함께 한 시간이 있었기에 작가는 엄마의 죽음에 '아주 편안한 죽음'이라는 제목을 달 수 있었다. 엄마의 죽음이,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죽음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건 아니지만, 좋은 죽음 따위는 없지만, 최소한 편안한 죽음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사실 엄마는 비교적 편안히 죽음을 맞이하셨다.

같은 책, 137쪽


타인의 애도의 과정을 따라가며 슬쩍 나의 슬픔을 얹는다. 가장 가까운 이를 잃은 상실감을 달래기 위한 애도의 글쓰기, 인간의 죽음이 운명인 이상 절대 끊기지 않을 슬픔의 형상화 작업.


*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언제나 엄마를 살아있는 존재로 여겨 왔던 나는 언젠가, 그것도 얼마 안 가서 곧 엄마가 죽는 걸 보게 되리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진지하게 해 본 적이 없었다. 내게 있어서 엄마의 죽음은 탄생과 마찬가지로 신화적인 시간의 차원에 속한 것이었다.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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