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
강보라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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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보라 작가의 첫 단편집의 제목은 불가해하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뱀'과 '양배추'가 나란히 있어야 할 이유가 뭐지? 단편소설이 이런 것이다. 평소에 둘이 나란히 있으리라 생각해 본 적 없는 것들이 한 장면에 모인 순간 발생하는 힘, 감정, 느낌. 보통은 '불편함'이라 표현할 감정을 구현하는 예술적 장르.


-82쪽, 오래전에 호경이 내게 준 그것을 나는 베란다에 서서 한참 들여다보았다. 새하얀 캄보자꽃과 원숭이, 노을에 물든 논밭 같은 상투적인 그림들을 제쳐두고 그애가 굳이 골라 내게 선물한 것. 아무런 맥락이 느껴지지 않는, 텅 빈, 이해 불가능한 어떤 것.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 강조는 인용자)


강보라의 소설 속에서 '이해 불가능한 어떤 것'은 다른 작가의 단편들보다 유독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주인공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인물 옆을 맴돌며 그들이 주는 불편함을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티니안에서>의 민지와 수혜의 관계, <신시어리 유어스>에서 인생의 롤러코스터를 타는 문규씨를 바라보는 '나'의 묘한 시선, 곧 떠날 동네라고 되뇌면서도 이웃집 여자를 훔쳐보는 일에 집착하는 <직사각형의 찬미>의 새댁, 소설은 불안감을 품고 유려하게 흔들리며 달려가다 쾅! 하고 폭발...하지는 않고 어떤 풍경으로 독자를 데리고 간다.


-219쪽, 얼음이 얼지도 녹지도 않는 이상적인 온도에 다다른 기분. 완전한 고체도 완전한 액체도 아닌 무언가의 표면을 손끝으로 만진 듯한.... (빙점을 만지다)


-169쪽, 어린 은화는 배우로서 그 비참함을 잘 간직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것만큼은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그녀 자신만의 것이었으므로. 작고 파란 불씨 하나가 그녀의 정원 안에서 고요히 타올랐다. (바우어의 정원, 25년 젊은작가상 수상작)


그 풍경은 고체도 액체도 아닌 '무언가'이고, 크고 강렬한 불이 아닌 '작고 파란 불씨 하나'이다. 그곳에서 주인공은 무엇인가를 깨닫는다. 그게 무엇인지 그들은 우리에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들의 깨달음은 '그 자신만의 것'이니까.


소설을 왜 읽어야 하는지 소설을 읽는 순간에도 계속해서 생각한다. 책을 덮고 밖에 나가 타인과의 대화에 끼어들었을 때, 어떤 모임에 참여했을 때, 무슨 장소에 당도했을 때, 문득 조금 전 읽었던 소설의 어떤 부분이 떠오르고 우리는 깨닫는다. '그게 이거구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맥락에서 벗어난, 이해 불가능한 어떤 것을 깨닫는 순간. 앞으로 이런 순간을 나는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이라 이름붙여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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