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우 - 한비자와 진시황
양선희 지음 / 나남출판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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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낙 흥미로운 시대의 매력적인 인물에 대한 이야기라 재미있게 읽었다.  영정과 한비, 그리고 이사. 이 세 사람의 관계는 무척이나 흥미롭고,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 인물들의 말투가 약간 어색하고, 고증이 충분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생각보다 재미있고 짜임새 있는 글이었다. 오히려 기대치 않게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주었다. 책의 완성도에는 방해가 되었지만, 각 장의 끄트머리에 붙은 한비가 남긴 글의 단편들은 '법가'라는 카테고리로만 정리해두던 한비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기회도 되었다. 


  작가는 사드 배치를 둘러싼 한중 간의 갈등을 보면서 이 책을 구상했다고 한다. 하지만 한비와 영정을 통해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명확하게 와닿지는 않았다. 진과 같은 초강대국, 그리고 그 진나라에 인접한 약소국 한나라를 중-한 관계로 본 것일까? 6국 병합이라는 큰 목표를 위해서 존경하는 사부 한비도 죽일 수 있는 냉혹함이 중국의 전략인걸까. 무능한 군주와 어설픈 외교, 분열로 가득한 한나라의 국풍을 우리의 모습으로 생각한 걸까. 쉽사리 동의는 되지 않는다. 오히려 글머리에 '사드 배치를 둘러싼 한중 간의 갈등' 등등의 언급은 하지 않는 것이 나았다. 


  이사와 한비의 대립도 흥미롭다. '소의'로 점철된 이사의 야욕은 한나라의 백성을 살리려는 '대의'를 따라 운명을 받아들이는 한비와 극명하게 비교된다. 문제는 이사가 초나라의 촌부로 가난하고 어렵게 살았기 때문에 작은 이익을 탐하게 되었고, 한비는 한나라 왕실의 공자로 자라 꾸미지 않아도 드러나는 품격을 갖추게 되었다는 설정이다. 한비를 죽음으로 몰고가는 요가라는 인물 또한 태생이 미천하여 물욕이 지나친 범죄자로 그려진다. 마치 태생이 모든 것을 결정짓는다는 것처럼 느껴져 불편했다. 과연 우리의 품격이 그렇게 간단하게 결정되는 것일까.


  몰입하여 재미있게 읽은 책이었지만, 다소 아쉬움이 남는 부분은 그런 점들이었다. 하지만 단편으로만 알 수 있는 인물들에 살을 붙이고, 색깔을 입히는 작업들은 언제나 흥미롭다. 그리고 언제나 울림을 준다. 사람의 이야기는 매번 실망시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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