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동주
안소영 지음 / 창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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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한 번쯤은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하게 된다. 물론 그 깊이와 농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만들어진’ 세계다.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들이 별로 없어 보인다. 이미 사회에는 거대한 부조리가 펼쳐져 있고, 나는 무력하다. 이때 사람들의 선택이 갈린다. 몇몇은 거대한 사회악과 맞서 싸우겠다고 혁명가가 되어 자신의 삶을 깨뜨릴 것이다. 다수는 아무 생각 없이 되는대로 삶을 살 것이고. 또 몇몇은 일단 ‘지금, 여기’의 삶을 가꾸면서 기회를 노릴 것이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나’뿐임을 유념하면서 말이다.


  윤동주는 그런 쪽이었다. 먼저 자기 자신을 맑게 유지하고자 했다. 그 엄혹한 야만의 시대에, 꿈을 꿀 수조차 없고 내 삶이 어떻게 떠내려가게 될지 알 수 없던 시대에 말이다. 비록 독립군이 되어 일제에 맞서지는 못하지만. 버티고 버티다 창씨개명도 하는 무력한 존재이지만, 맑은 정신 하나만큼은 넘겨주지 않겠다는 각오였다. 1941년에 지은 ‘눈감고 간다’라는 시를 보면 윤동주의 결심이 보인다. 눈을 감은 채 애써 세상의 부조리에 눈을 감고 가지만, 그래도 씨를 뿌리며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고자 한다. 그러다 돌부리에 걸리면, 예컨대 이러한 삶조차 허용되지 않는 시기가 오면 눈을 바짝 뜨고 결투하고자 했던 것 같다.


눈 감고 간다


태양을 사모하는 아이들아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밤이 어두웠는데

눈 감고 가거라.


가진 바 씨앗을

뿌리면서 가거라


발부리에 돌이 채이거든

감았던 눈을 와짝 떠라.


_1941. 5. 31.


  하지만 그 청아함의 끝은 비극이었다. 사실 그것은 예정된 결말이었다. 엄혹한 시대에 그런 낭만은 애초에 허용되지 않는 것이었다. 가정과 안락함을 다 버리고 혁명가의 길을 걷지 않는 이상, 삶의 조건들을 유지하면서 ‘고아한 정신’을 유지하기란 힘든 일이었다. 차라리 생각하지 않고 사는 것이 더 편했을 것이다. 그저 시대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살아갔다면 괴로움이나 없었으련만. 한 개인이, 의식 있는 젊은이가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힘든 시대였다. 다 내어주고 마음하나만 지키고 살려고 했건만. 그것마저 허용되지 않았다. 사실 윤동주는 가장 귀하고 어려운 것을 놓지 않고 버텼던 것이다.


  소설은 여운이 깊게 남는다. 윤동주의 삶 자체가 주는 힘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할지 다시 고민하게 만든다. 발레리의 말대로 ‘용기 내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 시인 동주는 주어진 삶 안에서 양심을 지키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비록 독립투사의 범접할 수 없는 투지는 아니지만, 한 청년이 보여줄 수 있는 순박하고 고결한 투쟁이었다. 용기를 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또 얼마나 그것을 지키는 것이 어려운가. 오늘 아침에 세운 결심하나 지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이러니 오늘도 바람에 스치울 수밖에 없다.

p.75
식민지 조선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인들조차 전쟁 준비에 생활을 위협받고 있었다. 이러한 때 일개 젊은이가, 더구나 식민의 땅에서 태어나 노예와 다를 바 없는 처지로 앞날을 그려 보고 계획해 보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무사히 공부를 마치고 세상에 나아가, 가족을 거느리고 살아갈 꿈을 꾸어도 되는 걸까. 어느 순간 자신들의 삶이 거대한 삽으로 송두리째 떠져, 다른 곳으로 휙 던져지거나 파묻히는 것은 아닐까. 불현 듯 떠오르는 불길함에 다들 몸서리쳤다.

p.127
동주는 결심했다. 잘못된 전쟁을 지지하고 동포들의 고달픈 삶을 외면하는 것이 문학의 길이라면, 가지 않으리라. 감투와 명성을 탐하고 궤변으로 자신의 행동을 미화하는 자들이 문인이라면, 되지 않으리라. 하나의 시어를 찾기 위해 수없이 버리고 취하는 연마의 과정이 저렇게 쓰이는 것이라면, 더 이상 쓰지 않으리라.

p.139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을 사랑하였는데도 친해지지 않거든 그 인(仁)을 돌이켜 보고, 사람을 다스렸는데도 다스려지지 않거든 그 지혜를 돌이켜 보고, 사람에게 예를 표했는데도 답하지 않거든 그 공경을 돌이켜 보아라. 행하고도 얻지 못하는 게 있거든 모두 자기를 돌이켜 보며 찾아야 하리니. 그 몸이 바르면 천하는 그에 돌아올 것이다. 『시경』에 이르기를 ‘길이길이 천명을 지켜 스스로 많은 복을 구하리라.’하였느니라."(『맹자』「이루편」)

p.234
조선에서도 벗들이 가끔 동주에게 놀랄 때가 있었다. 먼저 나서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일이 잘못되어 가는 것을 끝까지 그대로 두고 보지는 않았다. 유순해 보이는 동주가 정색을 하고 나서면 상대는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럴 때 동주에게는, 고집스럽기도 하면서 어딘가 서늘하고 고고한 기운이 어려 있었다. 이지마 대좌조차 당장은 입을 닫게 하는, 동주가 지닌 힘이었다.

p.245
시도 꾸준히 썼다. 동주의 사색과 감성, 마르지 않고 우러나오는 시상을 표현하는 데 우리말만 한 도구가 없었다. 마음속에 담아 놓은 생각과 입에서 맴돌기만 하는 표현이 하나의 시어를 만나 떠오를 때는, 가슴이 찌르르해지고 눈물이 핑 돌 만큼 좋았다. 전쟁과 죽음과 파괴로만 달려가는 이 삭막하고도 불안한 시대에, 무언가 움터 오는 게 있다는 사실이 벅차기도 했다. 돌담이나 아스팔트 바닥을 비집고 솟아 나온, 연둣빛 고운 생명 같은 시였다.

p.253
연전에 있을 때도 느낀 것이지만, 말과 글이 다르고 지내는 곳이 달라도, 사람들이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비슷하다는 점이다. 자신이 놓인 시대와 사회의 제약 속에서도, 사람들은 삶이 던져 주는 질문을 붙들고 열심히 해답을 찾으며 살아간다. 어떻게 살 것인가, 행복이란 무엇인가, 더불어 행복한 삶을 어떻게 누릴 것인가……. 자신의 삶에서 다 풀지 못하면 다른 사람에게, 혹은 다음 세대에게 넘겨준다. 이 세상에 사유하는 인간이 스러지지 않고 남아있는 한, 그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시대를 이어 가며, 좀 더 많은 사람들을 거쳐 가며, 더욱 깊어지고 풍부해질 것이다. 남의 것을 빼앗고, 남의 나라도 빼앗고, 사람이 사람을 차별하고 모욕하는, 심지어 다른 사람의 자유와 생명마저 빼앗아 버리는 야만의 시대라 해도…….

p.269
아예 이러한 처지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지내야 했을까. 공부방 바깥의 세상을 모르는 이들처럼 고등 문관 시험 준비나 열심히 해야 했을까. 희욱의 모범생 선배들처럼 조선어를 못하는 것에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웃는 얼굴로 일본 말을 주고받아야 했을까. 식민지 체제를 엄연한 ‘사실’로 인정하는 선배 지식인들처럼, 생각도 일본어로 하고 글도 일본어로 쓰며 살아야 했을까. 그들은 조선 청년들도 일본인과 똑같이 전쟁터에 나가, 진정한 내선일체를 이루어 내자며 독려하고 다닌다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렇게 지내지는 못할 것 같았다. 앞장서 떨치고 나서지는 못하겠지만, 마음속으로라도 잘못된 것에 저항하며, 때로 마음 맞는 벗들과 생각을 나누며 지냈으리라. 그렇다면 지금의 시간은 자신의 삶에서 예정되어 있던 것인가.

p.297
만 이십칠 년 이 개월이 채 못되는 삶. 동주가 태어날 때부터 조국은 남의 나라 식민지였다. 아무런 근심 없이 한번 싱그럽게 웃어 보지도 못했고, 어떤 일을 마음껏 좋아해 본 적도 없었다. 누군가를 연모하는 것도 주저되었다. 길 가다 순사나 헌병을 만나면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멀찌감치 돌아서서 책잡힐 게 없는지 머리에서 발끝까지 혼자 점검해 보곤 했다. 손들어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 보지 못했고, 온전히 속 터놓고 의논할 사람도, 기대고 의지할 하늘도 없었다.

p.328
발레리, 폴 앙브루아즈
파리가 점령되었을 때는 나치스 독일에 저항하여 "용기를 내어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머지않아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한 자신의 말을 실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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