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와 우연의 역사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휴머니스트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근래에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유쾌하고 흥미진진한 책이었다. 정말 '우연'히 발견하여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고 읽기 시작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광기'를 넘치게 만들어서 순식간에 다 읽고야 말았다. 이 책을 통해서 그동안 잘 몰랐던 저자 슈테판 츠바이크를 발견하는 동시에 그가 썼던 책들에 대한 관심도 증가했다.

이 책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광기'에 넘치게 만드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먼저 저자는 흥미와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건들을 잘 골라서 극적으로 구성했다. 죽을 듯하면서도 살아나고, 포기할 듯하면서도 성공하고, 정상에 선듯 했는데 바닥으로 추락하는 역사의 드라마같은 순간들을 잘 포착해서 빠르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읽는 이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다. 또한, 작가 특유의 어휘와 뛰어난 문장력을 유감 없이 발휘해서 스토리 중심의 드라마가 아닌 그 이상의 문학적 작품으로 읽히게 했다. 정말 이 책을 읽으면서 너무 멋있고 아름다워서 빨갛게 줄을 긋고 싶게 하는 부분이 한 두 곳이 아니었다. 또한, 저자가 꼽은 운명의 순간들은 우리가 쉽게 알고 있는 사건들이 아닌 것도 많아서 호기심을 자극하게 했다.

물론, 이 책의 모든 것이 다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저자가 서양인이다보니 '세계사의 별과 같은 순간들'을 꼽았다고 하지만 그 것은 '유럽대륙의 역사의 별과 같은 순간'이지 아시아나 아프리카 등 기타 지역의 사람들이 보기에 그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순간일수도 있는 것이다. 특히 '발보아의 태평양 발견'이나 '헨델의 메시아'같은 경우에 물론 그 사건이 충분히 가치가 있긴 하지만 다른 지역의 동시대인이 볼 때 과연 그것이 그 사람들에게도 가치 있는 것일까 의문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의 시대정신의 영향도 있을 것이고 저자가 기타지역의 역사는 잘 몰랐을 수 있기때문에 아쉬운 부분이긴 하지만 결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한국사의 운명의 순간들과 같은 새로운 책을 쓸 수 있는 가능성도 있지 않나 싶다.

또 하나는 이 책이 너무 영웅을 중요시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의문이다. 저자는 역사는 평범하게 흐르던 시간 속에서 한 사람에게 운명이 주어질 때 그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우연하게 바뀌며, 이런 정적과 변동의 흐름을 반복한다고 보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운명'이 천재와 영웅을 원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영웅사관으로 치우쳐서 수많은 민초들이 역사에 미치는 힘을 무시하는 것 아닌가 하는 비판을 나오게 한다. 물론, 이 책이 영웅사관이나 운명사관으로 흐르는 것은 유의해야하지만 개인의 인생에서도 이후의 삶을 결정하는 중요한 순간이 있기 마련이고 그 선택이 잘됐냐 안됐냐에 따라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가 결정되며 성공하면 영웅이요, 실패하면 패배자가 될 수 있기때문에 그런 관점에서 이 책을 이해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왕후 장상의 씨가 따로 없듯 영웅과 천재의 씨가 따로 있지는 않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다소 읽기 힘든 번역이 간간이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을 때 같은 부분을 두 세번씩 읽어야 간신히 이해되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저자가 어떤 사건은 시로 표현하고, 어떤 사건은 희곡으로 표현하고 하는 등 자유로운 형식을 택했기 때문에 번역함에 있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 같은 것은 아무리 번역을 잘해도 현지인이 느끼는 것과 우리가 느끼는 것은 차이가 있지 않은가 말이다. 대체적으로 잘 읽히지만 불편한 부분도 있었다.

내가 이 책을 너무 재미있게 읽은 탓에 읽으면서 느낀 결점도 두루뭉술하게 끌어 안은 것도 같다. 워낙에 이 책을 재미있고 유익하게 읽은 때문이다. 이 다음에 읽을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이 기대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